나정인 · 송재윤 · 안유선
9월 24일부터 11월 10일까지 동탄복합문화센터 아트스페이스와 아트스퀘어에서 화성시 중견작가들이 참여하는 기획전 <작가의 선물가게>가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개성 넘치는 작가들이 참여하는 단체전으로, 중견과 신진 2개 부문으로 나누어 선보인다. 이번에 만날 주인공은 나정인, 송재윤, 안유선 3인의 중견작가 들로 이들의 작업실을 재현한 ‘작가의 방’과 ‘특별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객들 에게 선물과 같은 특별한 경험을 전달한다는 계획이다.
글. 김민진 사진. 배호성
왼쪽부터 안유선 · 송재윤 · 나정인 작가
안유선 안녕하세요. 저는 판화 작업을 하고 있는 안유선입니다. 판화도 종류가 굉장히 많은데요. 저는 하나의 판을 가지고 그 판을 계속 깎아가면서 중첩된 레이어를 통해 지층과 유사한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송재윤 저는 동양화를 전공했고 현재는 회화 작업을 하고 있는 송재윤입니다. 여기 있는 다른 작가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요즘에는 예술에서도 경계가 많이 무너져 있어서 전통 동양화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예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돌가루랑 물감이 섞인 안료를 부수고 뿌려서 색을 낸 뒤, 그걸로 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나정인 저는 도예를 전공했고 도예와 색연필로 제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도자기와 평면으로 표현된 나무와 식물을 통해 자연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정인 저는 원래 고향이 수원이었습니다. 20살 때 병점으로 이사와서 10년 정도 살았는데, 결혼을 하면서 남편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그러다가 어머니가 돌아 가시고 아버지를 모시게 되면서 동탄에 정착을 하게 됐습니다. 화성은 일단 주변에 자연이 함께 있는 게 너무 좋아요. 저는 매일 저녁 아이들과 함께 치동천 수변을 걷고 있는데요. 오리 가족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인사를 건네곤 합니다. 그런 경험이 너무 행복해요.
송재윤 저도 고향이 수원입니다. 2008년에 부모님이 화성 봉담 쪽으로 이사오시면 서 저도 자연스럽게 화성에 정착을 하게 됐는데요. 처음에는 허허벌판에 아파트 하나만 딱 들어온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아이 키우기 너무 좋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단지 내에 초등학교가 있는 곳도 많고, 젊은 사람들도 많아서 활력이 생기는 느낌이에요.
안유선 분당에 살다가 2010년에 결혼을 하면서 화성에서 살게 됐습니다. 서울에 서만 생활하다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화성에 오니까 처음에는 도시 전체가 섬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제게는 낯선 곳이지만, 이곳에서 태어날 아이들에게는 화성 이 고향이잖아요. 내 아이들의 고향이 될 곳이니 나도 화성에 대해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우연히 알게 된 독서모임 선생님들과 함께 화성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며 탐방했습니다. 화성은 생생한 자연과 도심의 편리함이 공존하는 정말 독특한 도시입니다. 경기도에 두 개 밖에 없는 국가지질공원이 있고 제부도나 궁평항, 우음도 등 언제 방문해도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특별한 명소가 많아 관광하기에도 좋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질공원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예술적으로 고마운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송재윤 저는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만남의 횟수나 유대감이 중첩되어 쌓여가면서 관계가 형성되잖아요. 저는 이러한 관계 형성을 중첩 행위 자체를 통해서 표현하려 했습니다. 제가 전공한 미술이 동양화라 동양적인 소재를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산은 관계에서 기반이 되어야 하는 믿음과 신뢰를 표현 했고, 물은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지혜로움을 의미합니다. 사슴은 함께 관계를 맺어가는 관계자들을 표현하고 있죠. 제가 관계에 집중하게 된 건 사람에게서 얻은 상처 때문 입니다. 학창시절에는 사람을 대할 때, 내가 베푼만큼 돌아오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는데 사회에서는 이런 당연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회복하기 힘든 관계가 있고, 반대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깊어지는 관계가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고, 이를 주제로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나정인 저는 상실과 치유를 주제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 작업의 시작은 엄마 의 상실과 함께합니다. 2019년 5월에 친정 엄마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셨는데요. 겉으로는 많이 숨기고 있었고 괜찮아진 척 했지만, 내면에서는 너무나 큰 상실감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그때 저를 치유해 준 것이 식물과 자연이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 저는 남편의 직장을 따라 고성에서 살고 있었는데요. 문명이나 도시의 흔적이 거의 없는 고성이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을 바라보며 많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밤에 외로이 떠 있는 오징어 배, 걷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풀내음. 그 모든 것들이 제 상처를 보듬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더불어 엄마가 남기고 간 식물들을 키우면서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어요. 제가 식물들에게서 느낀 위안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안유선 제 작품의 가장 큰 주제는 생명성과 세상을 이루는 구성 요소들의 유기성 입니다. 저는 미술과를 졸업하고 석사 박사까지 공부를 했지만,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작업을 상당부분 포기했습니다. 시간이 없는 것도 그렇고 미술을 하려면 준비된 상태에서 또는 정제된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의 모든 생활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가 그리는 선 하나하나가 예술이 될 수 있고,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영감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아이와 함께 과학관을 갔을 때, 예술의 유기성을 절감했습니다. 과학관에는 식물 화석이나 지층을 예쁘게 꾸며놓은 곳이 많아요. 아이와 함께 지층을 보고 있는데, 불현듯 이 지층 하나하나가 모두 판인데, 나는 왜 억지로 판을 만들어 그려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을 판화와 연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안유선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버전과 어른들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나눠놓았는 데요. 참가자들이 피카소가 좋아했던 리노 컷이라는 판화를 사용해서 12명이 각자의 달력을 만들 겁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얼굴을 판으로 찍어갈 수 있는 자화상 체험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송재윤 밑작업이 된 캔버스 위에 참가자들이 추상적인 산과 물, 사슴을 자유롭게 그려볼 겁니다. 그리기 전에 작품에 표현되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각자가 해석한 관계를 자유롭게 그릴거에요. 프로그램이 끝나면 나만의 산수화 한 점씩을 가져갈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나정인 친숙한 나뭇잎을 기반으로 한 실용적인 작품을 도자기로 만들겁니다. 나뭇잎이 정형화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나무에 있는 나뭇잎이라도 모두 다르게 생겼거든요. 나뭇잎을 똑같이 찍어내지 않고 스스로 스케치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만의 나뭇잎을 만들어볼 겁니다. 만든 나뭇잎은 실용성 있게 도자기로 만들어서 택배로 보내줄 예정이에요.
나정인 예술은 자기 내면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SNS나 블로그같은 소셜 미디어가 엄청 큰 힘을 발휘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오픈된 공간에는 항상 좋은 것, 예쁜 것만 올리고 싶어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저만 해도 항상 잘 나온 사진, 그럴듯한 이야기만 SNS에 올리려고 하니까요. 이처럼 스스로를 포장하는 경험이 많아지면 역설적으로 본인이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를 스스로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진짜 자신을 찾을 수 있는 힘이 예술입니다. 꼭 그림이 아니어도 좋아요. 예술은 자유니까요. 흙이나 그림, 음악 등 무엇이 되었든 자기를 표현하는 도구가 있다면 그것이 곧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유선 제가 만든 텀블러에도 있는 문구인데요. 예술은 누군가에게 내재된 특별한 힘이 아닙니다. 누구나 자기 안에는 저마다의 예술을 품고 있어요. 물론 내면의 예술을 꺼내는 작업은 정말 어렵고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마음에 예술이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마음의 안식, 혹은 여유를 얻기 위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예술을 찾게 됩니다. 힘겨운 일들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예술입니다. 악기 연주나 그림, 하다못해 흙이나 나무, 공기를 만지는 행위까지. 다른 작가님들이 말씀하셨듯, 자신이 예술이라고 생각되는 어떤 활동이든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로 설명하거나 표현할 수는 없지만, 예술을 하면서 본인에게 남게 되는, 혹은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예술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송재윤 작가님들이 말씀하셨듯, 예술은 자기 표현의 수단입니다. 작가는 이 표현이 좀 더 잘 전달되도록 하는 사람들인데요. 내면의 예술을 표현해서 시각화하는 방식은 어렵지만, 예술을 소비하는 대중들은 최대한 쉽게 예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의 문턱 자체가 낮아져야 해요. 예술이 언제, 어디서든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영역이 되어야 합니다. 슬리퍼 끌고 산책하다가 전시회를 구경 할 수 있고, 친구들과 축제를 가는 것처럼 예술 페어를 방문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합니다. 요즘에는 어린 학생들부터 어른들까지. 숨 가쁘게 달려가기 바쁘잖아요.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잠깐의 휴식과 여유, 풍요를 전달하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자 문화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정인 훌륭한 작가님들과 함께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평소 베일에 쌓여 있는 작가의 방을 본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회가 관람객 분들에게 즐거운 추억으로 남길 바라고 전시회를 계기로 예술은 어려운 게 아닌 재밌는 행위라는 인식이 자리잡길 기대합니다.
안유선 작품 전시도 볼 수 있고, 작가의 방도 볼 수 있고, 여러 선물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전시회 이름 그대로 관람객 여러분의 삶에 선물같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송재윤 창작물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만, 이렇게 창작물이 만들어지는 공간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잖아요. 작가들이 어떻게 작품을 만들어내는지 확인해 보고 <작가의 방>, <작가의 선물가게>가 예술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전시기간 2024. 9. 24.(화) ~ 2024. 11. 10.(일)
※월요일, 공휴일 휴관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5시
전시장소 동탄아트스페이스, 동탄아트스퀘어
(화성시 노작로 134, 동탄복합문화센터)
관련문의 031-290-4605
전시기간 2024. 10. 15.(화) ~ 12. 5.(목)
※매주 일, 월요일 및 공휴일 휴관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5시
전시장소 화성 열린 문화예술 공간 1전시실
(화성시 동탄대로 5길 21, 라크몽 B동 3층)
관련문의 031-378-5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