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작가 황정경
황정경 작가는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작가다.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더 발전하길 바란다. 공작의 화려함보다는 그가 처한 비현실적인 모습에 더 매혹을 느끼는 작가. 부족함을 알기에 반드시 나아질 수밖에 없는 작품을 그린다. 화려함 속에 감춘 꿈을 찾기 위해 오늘도 깃털 속의 눈을 가만히 응시한다.
공작새와 꽃, 글자를 이용해 회화 작업을 하는 황정경이에요. 작가 생활을 한 지는 15년이 되었는데, 이전에는 회사에 다니며 디자인 작업을 했어요. 대학 졸업 후 편집 디자인 회사에 취직해 아이들용 학습지를 만들었죠. 당시는 IMF 시기라 회사 여건이 좋지 못했어요. 덕분에 디자인 작업뿐만 아니라 개발, 편집, 사진, 인쇄까지 수많은 작업을 병행했어요. 물론 그때의 경험이 후에 도움이 되긴 했지만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던 시기였죠.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일을 했으니까요. 그러다 결혼 후 회사를 그만두고 동네에서 미술을 가르쳤어요. 일을 하던 버릇이 남아서 다섯 살 아이에게 기획부터 발표까지 많은 걸 가르쳤죠(웃음). 사실 이런 경험들을 웃으며 이야기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전공에서 동떨어진 일을 한다는 게 부끄러웠거든요. 다양한 경험 덕분에 잡다하게 할 줄 아는 건 많았지만 그것들이 자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죠.
정식으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되면서 원 없이 작업했어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지치지 않고 그림을 그렸죠. 처음에는 극사실화를 일부러 더 세밀하게 그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작가분이 저에게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너는 되게 잘 그린다고 자랑하는 것 같아.” 그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맹목적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어떤 주제나 목적의식을 가지고 작업하더라고요. 그 뒤로 무언가를 표현해야겠다는 걸 항상 생각하고 그림을 그려요. 동시에 대학원에 다니며 못다 한 공부를 심화해 배우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고, 더 발전하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해요. 일 욕심이 많거든요.
어느 날 공원에서 공작새를 봤어요. 꼬리를 펼친 모습을 본 순간 꿈꾸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현실이 아닌 것 같았죠. 사실 그렇게 꼬리가 길고 화려하면 생태계에서 살아남기가 불리하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습을 고집한다는 것에 더욱 기묘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 뒤로 제 작품에 공작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아마도 비현실적인 공작의 생김새를 보며 저 자신과 동일시했던 것 같아요. 가사와 육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작가 생활을 한다는 게 제게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왔거든요. 내가 과연 작가로 살 수 있을까?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제 안의 꿈과 욕망을 한 마리 공작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다른 한편으론 꼬리 깃털의 수많은 눈을 보며 관계를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것 있잖아요.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맺으면 어느 순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혹은 그 안에서 틀어지는 사이가 생기기도 하고요. 공작의 깃털과 수많은 눈을 조화로움 속에 그리며 일종의 ‘공통의 선’을 말하고 싶었어요. 모두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 같은 것 말이에요.
그런 마음을 담아 완성한 작품이 ‘너에게 주고 싶은 꽉 찬 내 마음’이에요. 공작을 꽃다발에 담아 그리는 연작으로, 다른 작품보다 화려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사실 전시를 위해 급하게 작업해서 일주일 만에 완성한 작품인데요. 서로 다른 개개의 우리(꽃)가 다발로 묶여 한데 모여 있다는 걸 표현했어요. 정형과 비정형의 조화를 특히 더 고민하며 만든 작품이에요. 가령 물감을 뿌리고 던지는 등의 의도치 않은 표현을 얼마나 더할지, 디테일한 묘사를 얼마나 더할지 고민하는 식이죠. 추후에 제 실력이 더 발전하게 되면 그래픽 작업을 더한 작품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제 작업실은 8년을 머문 공간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작은 섬네일 스케치 작업을 하는 곳이에요. 큰 작품은 따로 말리는 시간이 필요해서 집에서 작업하거든요. 평상시엔 출근하듯 아침에 작업실에 와서 해가 지면 문을 닫아요. 큰 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오전 시간을 특히 좋아하는데요. 최근엔 대학원 때문에 많이 바빠져서 한 번에 몰아서 작업을 해요. 사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많이 느껴요. 그래서 오롯이 제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작업을 구할까 생각 중이에요.
새로 갖게 될 공간은 사람들에게 열린 곳이었으면 해요. 요즘 그림에 글자를 넣어 작품을 그리는데요. 사람들 반응이 좋아요. 숨겨진 글자를 찾으려 더 열심히 그림을 감상하죠. 언젠가 지인 중 한 명이 자기 같은 사람도 전시실에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본 적이 있어요. 미술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문턱이 높을 수도 있겠구나, 그때 깨달았죠. 그래서 저는 더더욱 쉽고 재미있게, 기분 전환이 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그림이나 전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미술은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거든요.
저 역시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땐 화성 융건릉을 산책해요. 부지가 되게 크잖아요. 주변에 사는 분들은 얼마나 편안하게 산책할까 생각하며 부러운 마음을 느껴요. 무덤이라고 해서 근엄한 느낌을 가지거나 부담을 느끼지 않는 모습이 좋아요. 그런 일상의 자연스러움이 제 작품 안에도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