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 예술가들의 역할

행동에 나서는 예술가들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 -기후변화 ⓒ 황호규

기후재난 시대인 지금, 환경을 위한 예술가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돋보인다.
부지런히 기후변화를 탐구하고 예술이, 예술가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질문하고 추적하며 답을 찾는다.
이들은 발견과 탐색의 결과를 예술의 언어로 바꾸어 대중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 그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다.

923 기후정의행진 ⓒ 박지선

ⓒ 박지선

날씨가 이상하다

얼마 전 10월에 한국 방문 예정인 해외 동료들과 온라인 회의를 했다. 아름답고 완벽한 시월의 날씨를 준비해 놓겠다는 약속을 하고선, 곧 시월에도 내내 비가 내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긴 연휴를 앞둔 9월의 끝을 지나가고 있는 지금도 창밖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기후변화가 낯설지 않다. 누구나, 날씨가 이상하다. 기후와 지구에 문제가 생겼다고 이야기하며 더 이상 기후변화를 부정하지 않는다.
9월 23일 서울 숭례문에는 많은 인파가 모였다. ‘923 기후정의 행진’을 하기 위해서였다. 올해도 청소년과 청년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어른의 목마를 타고 있는 아이의 모습도 보였다. 각자 집에서 준비해 온 종이 피켓에는 현재의 생존과 지키고자 하는 미래에 대한 다양한 말들이 가득했다. ‘불평등이 재난이다. 평등해야 함께 산다’, ‘SOS Need 녹색 에너지 Now’, ‘땅도 사람도 착취 않는 집’, ‘우리의 얘기를 제발 들어라! 시간이 없다’ 등 뜨거운 가을 햇살 아래 모두는 피켓을 흔들며 넘실거리는 파도를 만들며 함께 걷고 (성장의) 멈춤과 (시스템의) 변화를 외쳤다.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하자 기후위기로 인해 모두가 멸종하는 상황을 상징하는 다이 인Die-in 퍼포먼스를 위해 모두가 도로 바닥에 누웠다. 햇살을 받은 도로는 따뜻했고 파란 하늘은 눈부셨다. 사이렌이 공간을 가득 메우자,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어떤 순간이 상상되었다. 이미 많은 것들이 사라졌고, 지금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상실의 시간을 감각했다. 모두는 다시 가능한 미래를 꿈꾸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 행진을 이어갔다.
작년에도 올해 행진에도 나는 예술가들과 함께였다. 지난 몇 년간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1)를 통해 기후변화를 탐구하고 예술이, 예술가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질문하고 답을 찾아 나가는 중이다. 기후변화 레지던시를 시작한 2020년은 모두가 처음 경험하는 팬데믹으로 불안함이 삶을 지배하고 있을 때였다. 기후과학자, 생태학자, 기후활동가, 정치학자 등 전문가들을 통해 듣는 이야기는 기후변화라는 단어를 기후위기로 바꾸어 놓았고, 레지던시에 모인 예술가들은 상실감과 무력감에 휩싸여 한 발을 내딛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곧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느리지만, 천천히 세상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면의 보이지 않는 세상을 발견하고, 탐색하고, 예술의 언어로 바꾸기 시작했다. 인간과 비인간, 숲의 절멸, 동물권과 비거니즘, 억울하게 희생되는 야생동물, 자신의 터전에서 밀려나는 사람들, 탐조, 기후 우울증, 기후와 지역, 재생에너지와 생태, 석유 그 이면의 세계, 플라스틱, 보이지 않는 것 등 예술가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발견하고 추적하고 예술작업으로 이어 나갔다. 레지던시 이후에도 예술가들의 기후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1)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기후변화’는 2020년 시작된 예술가들의 기후변화 대응 프로젝트이다. 연극, 다원예술, 시각예술, 영화, 영상, 책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와 기획자, 리서처들이 함께 기후변화에 대해 탐구하며 막연한 거대 담론을 우리의 삶 속에 구체화하며, 예술적 실천을 만들어 내는 것을 미션으로 하고 있다.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 -기후변화 ⓒ 황호규

기후위기에 행동하는 작가들

김보람 작가는 첫 레지던시에서 창작한 보드게임 <움직이는 숲>을 전시와 연극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현재 기후위기로 나무들은 위험에 처해있고, 급격하게 상승하는 지구의 온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무들이 1년에 6.4km씩 북상해야 한다는 것에 주목한다. 정치인, 연구가, 운동가, 기업인이 각자의 목표를 성취하며, 나무를 보호구역Sanctuary으로 옮기는 보드게임을 개발했다. 보드게임은 다음 해 관객 참여형 라이브 퍼포먼스 <움직이는 숲-불타는 집>으로 발전되었으며 내용뿐 아니라, 창작 과정에서도 친환경 제작을 위해 전시용 쓰레기를 만들지 말고, 전시 중 사용하게 되는 총 소비 전력량을 최소로 하는 작품 제작을 시도하자는 두 개의 목표를 설정해 생태접근을 시도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관객 참여형 연극 <움직이는 숲 씨어터 게임>으로 관객과 만났다. 미래숲환경연구소의 인턴 역할로 출근한 관객들은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2050년의 도시 계획 연구에 참여해 공공 교통 확충, 공유 차량, 비인간 시민권, 탈석탄 등 구체적인 정책을 상상하고 논의한다.
윤종연 작가의 <이동하는 세계>는 2021년 레지던시에서 발표한 작품으로 기후 재난으로 삶의 터전에서 떠밀려 나간 세상의 끝에서 구조요청을 보내고 있는 절박한 세계 속 존재하는 인간 서사에 주목한다. 작가는 자신의 몸을 매개로 이들의 삶을 표현한다. 퍼포머의 몸은 얼어붙은 땅으로 곤두박질쳐지고, 아슬아슬하게 버티며 온전히 그들의 삶을 담아낸다. 그는 <이동하는 세계> 이후 기후 피해자들의 삶을 직접 찾아 나섰다. 2020년 수해로 집을 잃고 여전히 삶이 복구되지 못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피해 보상금으로 인해 와해된 공동체의 모습을 기록했다. 또한 한때 산업 발전의 역군으로 칭송받았으나, 탈석탄(탈탄소) 전환 사회에서 배제되고 있는 태백 탄광촌 광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약자에게로 이어지는 기후위기 피해의 고리와 그 사이에 엉켜 있는 진짜 삶을 마주하고, 2022년 봄 <코끼리 택시>의 운행을 시작했다. <코끼리 택시>는 방 안에 갇혀 있는 코끼리를 만나러 가는 일종의 택시 여행 상품이다. 연출은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를 덮어두고 아무도 언급하려 하지 않는 현상을 나타내는 ‘방 안의 코끼리’로 비유하며, 택시 안에서 기후 재난으로 집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삶으로 승객을 끌고 들어간다. 제작팀은 작품 제작 과정에서 친환경 제작을 위한 그린 라이더Green Rider를 만들어 실천했다.
비거니즘과 동물권을 중심으로 예술작업과 실천을 이어오고 있는 한윤미 작가는 작년 레지던시에서 ‘에너지 살림살이’와 ‘숨겨진 존재들’을 열쇠말로 삼았다. 작가는 전원 스위치로 편리하게 전기를 공급받는 도시인 삶의 이면에 부담과 희생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작가는 전기를 자급자족하며 다른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는 없는지 질문한다. 태양광으로 얻은 전기로 차를 끓이고 대화를 나누며, 차갑고 어두운 공간에서 제한된 전력으로 타인들이 함께 여정을 하며 다른 생명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경험을 제시했다.
2022 기후변화 레지던시 오픈텃밭에서 발표한 작품 <에너지_보이지 않는 언어>는 올해 10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재창작되어 관객과 만난다. 연극을 만드는 전윤환 작가와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김지연 작가는 레지던시 기간 중 참여 작가들과 진행했던 워크숍을 발전시켜 렉처 퍼포먼스를 구성했다. 상상력의 부재는 언어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과 함께, 기후재판 투쟁 당사자, 기후위기 피해 당사자의 말을 수집했다. 예술적 상상력으로 에너지 개념들을 재정의하기 위한 단어들을 씨앗으로 펼쳐놓고 관객들과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고 문장을 만들며, 단어 속의 이면을 찾고, 문장들을 조합해 내었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개념과 더불어 세상으로 쏟아지는 단어들은 어느새 개념화되어 우리 삶의 구체적인 언어로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두 작가는 우리 삶과 기후변화의 현장을 조사하며, 시월에 극장을 찾을 관객들과 나눌 단어들을 모아 나가고 있다.

김보람 ‘움직이는 숲 씨어터 게임’ 2022 SPAF ⓒ 옥상훈

상상은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기후변화 레지던시 첫해, 우리가 주목했던 단어는 ‘기후변화’ 자체였다. 과학자들이 기후변화를 설명할 때 종종 ‘하이퍼 오브젝트’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기후변화가 너무 거대하고 다른 시공간에 동시에 복합적으로 일어나며, 변화의 속도 또한 예측할 수 없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말 그대로 거대한 단어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었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술가들은 구체적인 삶과 조우하기 위해 애썼다. 다음 해 우리는 ‘관점의 전환’이라는 말을 탐색했고, 보기와 생각의 각도를 바꾸며 세상의 무수한 주체들과 마주했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떠나지 않는 단어는 ‘이면’,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예술가는 보이는 세상을 탐구하고 추적한다. 그리고 상상력으로 그 이면의 세상을 밖으로 끌어내고 관객에게 진짜 세상과 조우하길 제안한다. 한 달 넘게 지속된 홍수의 끝에 숨겨진 끝나지 않는 삶의 이야기, 돼지열병의 원인으로 죽어간 억울한 멧돼지의 이야기, 도시에서의 편리한 전기 사용 이면의 황폐된 자연과 위험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편리한 플라스틱 이면의 자본과 개발의 이야기.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잃어버린 것을 다시 경험하고 감각하게 하는 것, 그것이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이고 힘이 아닐까. 상상은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박지선

연극, 무용, 다원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걸쳐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축제와 레지던시 기획, 공연예술작품 제작 및 국제 네트워크(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PP)를 기획·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시, 경계, 기술과 예술, 기후변화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예술가와 새로운 탐험을 하며 예술의 동시대성을 탐구하고 있다. 2020년부터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기후변화를 공동 기획·운영하고 있다.

박지선(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