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작가 유상선
예술에 값비싼 포장지를 씌우는 사람들이 있다. 예술이란 잘 교육된 이들이 창조하는 어떤 고귀한 세계라고. 쉽게 만질 수 없고, 심오한 의미를 가지며, 그 자체로 빛나는 거라고. 그러나 작품은 본래 사람들 곁에 있을 때 가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유상선 작가는 흔하디흔한 해바라기 속에서 긍정의 메시지를 뽑아내어,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 속에 심는다. 그리고 희망이란 말로 환하게 피어나기를 바란다.
해바라기 작가 유상선이에요. 전업 작가가 되기 전에는 이랜드라는 기업에서 일을 했어요. 그룹의 초기 멤버로 멘토였던 박 회장님의 열정 넘치는 패기를 보며 다양한 부서를 거쳐 20여 년 일한 것들이 큰 경험이 되었어요.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꿈꾸는 해바라기 작가 유상선’이라는 타이틀을 만들게 된 거죠. 그 후 우연히 커피 관련 사업에 동참하면서, 커피 창업자들에게 당시 못 먹는 커피콩으로 해바라기 그림을 그려 커피 점포의 인테리어 포인트를 만들어 준 것이 일반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계기였던 게 아닌가 싶네요.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만들어준 그 일들이 기반이 되어 정식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회사에 다닐 때보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그림을 그리며 얻는 희열이 훨씬 커요. 두려움도 있었지만 꿈이라는 건 움직이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잖아요.
청년 시절 추송웅이라는 연극배우와 대화한 적이 있는데요. 예술을 하고 싶다는 저에게 피카소가 되고 싶은지, 고흐가 되고 싶은지 묻더라고요. 피카소는 당대의 미술가로 부와 명예를 가지던 사람이고, 고흐는 정신이상자 소리를 들으며 살다가 후대에 인정받은 사람이었어요. 저는 피카소를 선택했죠. 살아생전 인정을 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요. 그때 그분과의 대화는 제가 작가 생활을 하며 늘 마음에 두고 있어요. 저는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작가 생활을 오래 하지도 않았지만 이 일이 저에게 잘 맞는다는 사실을 알아요. 이제껏 제가 좋아하는 일만 하다가 드디어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거죠. 저 자신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길이기에 후회하지 않고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해바라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회사에 다닐 무렵이에요.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무작정 떠난 시골 마을에서 우연히 해바라기를 마주했어요. 길가에 핀 해바라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그때의 기쁜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해바라기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저를 반기던 해바라기처럼 사람들에게 희망과 축복을 주고 싶다고 말이에요. 누구나 일상에서 잘 통하는 것들에게는 우호적이지만 통하지 않는 것에는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하잖아요. 그럴 때 자신을 반기고 소통할 수 있는 해바라기를 떠올렸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이제껏 천여 점의 해바라기 작품을 그렸어요. 작업 방식은 그때 그때 다르지만 보통은 바탕 위에 커피콩이나 볼트, 실리콘 등의 재료를 사용해 입체적인 모양을 잡으며 시작해요. 그 위에 유성 물감과 아크릴 물감을 섞어 색의 조화를 고민하죠. 하나의 소재를 변주하면서 각각의 메시지를 달리하려 노력해요. 가령 요양원에 보낼 해바라기의 경우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색감과 모양을 고민하고, 막 결혼을 한 부부에게는 더욱 화사한 색감을 써서 긍정의 메시지를 돋보이게 하죠. 그러니까 천 개의 작품은 결국 모두가 개별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셈이에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울컥한다거나 희망을 얻었다고 말할 때 기뻐요. 그들은 제 설명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하죠. 그런 반응을 마주하고 나면 사소한 멘트 하나도 긍정적으로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첫 작업실은 매일 해가 보이는 부산 바닷가 근처에 있었어요. 그때 작업실에서 기억에 남는 풍경이 하나 있는데요. 자정이 가까운 시각, 한참 작업을 하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어요. 택시기사였는데 손님을 태우고 지나던 길에 그림을 보고 다시 돌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사연인즉 아내가 가게를 오픈했는데 해바라기 그림을 선물하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러면서 가격을 묻기에 “이 작품은 100만 원, 이 작품은 200만 원” 하고 작품의 가격을 말했죠. 그러자 풀이 죽은 목소리로 “일당이 10만 원인데 살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묻더라고요. 안타까운 마음에 원하는 걸 골라보라고 했는데 쉽게 고르지 못하더라고요. 나중에 일당을 받아서 다시 온다기에 기다렸는데 결국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때 느낀 것은 그림이란 재능 있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공유할 수 있을 때 가치를 갖는다는 거였어요. 작품을 쌓아놓고 있어 봤자 작가 혼자 즐길 뿐이잖아요. 그래서 재작년에는 전시하고 남은 그림을 고아원에 기증했어요. 그림이 의미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요.
그렇게 5년간 작업실을 운영하다 사정상 공간을 비우고 한동안 자리를 잡지 못하다가, 올해 3월부터 이곳 화성에 새로운 터를 마련했어요. 지인의 도움으로 공장 부지 안에 컨테이너 두 동을 올려 작업실 간판을 달았죠. 공장과 예술이라는 조합이 낯설다는 분들도 많아요. 하지만 ‘블루칼라’라 불리는 공장 사람들에게 제 작업실이 예술의 편견을 깰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요. 밥을 먹다가도 자연스럽게 작품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죠. 사실 아직은 작업실이 좁고 외진 곳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진 못해요. 조용히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지만, 한편으론 조금 더 대중과 가까워졌음 하는 바람이에요. 여건이 된다면 더 깔끔하게 공간을 꾸미고 커피와 갤러리를 함께 제공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늘 대중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으니 언제 또 저의 공간이 바뀔지는 모르는 일이겠죠.
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