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 향토무형문화재 김정아
올해 3월, 화성시는 향토무형문화재 1호로 승무(화성 이동안류)와 함께 이동안 선생의 승무를 계승해온 김정아를 향토문화재 보유자로 지정했다.
승무 하면 떠오르는 건 조지훈이 쓴 시구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그리고 나비 같은 몸짓의 우아한 이미지다. 승무는 정말 그런 춤일까.
화성의 재인(才人) 이동안을 원류로 한 ‘화성 승무’를 두고 가장 전통적이기에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무용가, 향토무형문화재 보유자 김정아를 만났다.
글. 최정순 사진. 지선미
지난 1년여간 화성시의 종목 심사 등 갖은 심의, 실사 과정을 거쳐 올해 3월 ‘이동안류 승무’가 향토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됐다.
그리고 김정아는 향토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대한무용협회 화성시지부장, 화성예총 수석부지회장, 그리고 화성재인 이동안보존회 회장을 맡고 있다.
다섯 살에 시작한 김정아의 춤 인생은 57년에 이른다.
그중 화성에 터를 잡고 스승이자 조선의 마지막 춤꾼이었던 이동안 선생의 승무를 계승하고자 분투한 세월이 30년가량이다.
무용단을 만들어 이동안류 승무를 국·내외 여러 무대에 소개했으며, 무용을 전공한 이들을 비롯해 화성 시민을 대상으로 이동안의 춤을 가르쳤다.
또 이동안 선생 일가와 화성시가 모이는 자리를 주선, 2021년 함백산추모공원 내 화성시 문화예술체육인 특화 묘역으로 묘지를 이전하는 일 등을 추진했다.
화성시 향토문화재위원회가 발표한 선정 이유 중 ‘이동안류 승무의 기량과 전승 의지를 높이 평가’했다는 항목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100만 인구로 특례도시란 목표를 달성한 것 보세요. 화성은 대단한 도시예요.
하지만 유입 인구가 많은 특성상 지역의 가치와 의미를 모르고 넘기곤 해요.
화성 시민을 대상으로 이동안 선생님의 춤을 무료로 가르쳐왔어요. 용주사 같은 화성의 명소가 풍경이 아름답기만 한 곳은 아니거든요.
이동안 선생님의 제자였던 무용수 최승희가 용주사에서 춘 승무를 보고 조지훈 시인이 ‘승무’를 썼다는 이야기와 함께 춤을 알려주는 식이에요.
지역에 전하는 이야기, 즉 역사와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알고 나면 ‘지역애’가 생겨요.
사는 곳에 더 머무르고 싶어지고요. 제 수업 이후로 용주사, 융건릉, 궁평항에 다녀왔다는 말을 들어요.
이동안 선생님과 연계된 화성의 장소는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춤과 함께 소개하게 되거든요.
더 쉽게, 더 재미있게, 이동안 선생님의 춤이 갖는 매력과 힘을 전할 수 있어요.”
승무 외에 살풀이·태평무·진쇠춤·검무·희극무·선달무·북춤·소고춤 등 온갖 전통 춤에 능했고, 줄타기는 물론 대금·태평소 등 악기 연주와 남도 잡가(소리)를 섭렵한 종합 예술인이었다.
재인청 도대방을 지낸 경기도 세습무 집안 출신이었으며, 화성 재인청은 예총(예술인총연합) 같은 예술인 총괄 기관으로 악(樂)·가(歌)·무(舞)·음(音)·곡(曲) 등 국악 교육을 담당했다.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 시행에 따라 재인청 해산이 강제됐고, 이동안 선생은 조선의 마지막 재인청 도대방으로 남았다.
1920년 원각사 등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예인의 길을 걸었고, 훗날 ‘발탈’로 중요무형문화재에 지정되었다.
발탈은 가로 1m, 세로 2m 정도의 포장에 숨어 온갖 재담과 소리로 엮는 가면극의 한 종류인데, 광대의 재담을 통해 양반 사회나 시대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1927년 일본 순회 공연, 1929년 임방울 등의 명인들과 중국 만주, 러시아 국경 지대로 순회공연을 다녔으며, 유서 깊은 예술 단체와 학계에 몸담으며 춤추고 후학을 양성했다.
김백봉 등 한국 무용계의 거목 대부분이 그를 사사했다.
“이동안 선생님에 대해 사람들이, 지역이 모르는 게 안타까워서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었어요. 우리 무용계, 예술계에 ‘이동안’이라는 아티스트가 있고, 그 옛날에 일본과 만주에 진출할 만큼 대단했고, 요즘 말로 아이돌이라 불릴 만한 분이란 걸 알려야 했어요.
이동안 선생님의 춤이 반드시 화성에 있어야 하고, 전수돼야 한다는 것은 화성시 문화유산과, 지역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뜻이자 의지였어요. 이동안류를 전수해주신 박정임 선생님 역시 이동안 선생님 제자인데, 두 스승이 지속해온 화성 이동안류 춤의 명맥을 저와 그다음 세대가 계승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됐죠.”
쉬지 않았던 김정아의 승무는 그간 해마다 외국 초청 공연을 가졌다. 오는 6월에는 슬로베니아의 세계민속축제에 한국 전통 무용 단체로는 처음으로 무대에 선다.
2007년부터 무용단과 함께 칠레, 멕시코, 크로아티아, 스페인,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곳에서 전통 춤을 선보였다. 공연에선 승무뿐 아니라 궁중무용, 부채춤, 장구춤 등 다양한 무용 프로그램을 구성하는데, 열띤 환호와 갈채를 받기가 예사라고.
“승무를 보면서 동양의 신비로움을 경험하는 듯해요. 좀처럼 접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말이 통하지 않아도 관객은 충분히 이해하고 감응해요.
무용수와 교감이 이뤄져요. 승무의 마지막 부분에서 대북을 치거나 다른 장르에서 피리, 대검 불면서 지전 날리고 춤추면 현장의 반응은 그야말로 핫해요.”
김정아의 표현에 따르면 승무는 한국 무용 중 최고봉에 있을 만큼 고난도의 기술과 표현력이 응집된 장르다.
흔히 승무라고 하면 학처럼 고고하게 날거나 우아하게 장삼을 펼치며 선을 그리는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이동안류의 승무는 서민적인 춤사위로 툭툭 건드리듯 표현한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이동안 선생님만의 춤이 갖는 특징이 녹아 있죠. 선생님의 춤은 서민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민적이라 함은 꾸며지지 않는 춤을 의미해요. 소탈하면서도 거기에 해학이 들어 있고요.
오래전 예인들은 내면의 흥과 멋으로 그냥 툭툭 흘러가는 춤을 췄어요.
덩실덩실. 그건 꾸며서 디뎌지는 게 아니라 내재된 멋이 춤으로 승화되는 거예요. 그땐 마당에서 춤을 췄어요.
사방이 춤꾼을 보는 무대였단 말이죠. 이동안 선생님 춤의 기본은 사방 중심이에요. 걸음을 턱턱 디디는데, 그 발부터 관객하고 소통하게 돼요. 아주 어려워요.
관객을 보면서 ‘그래. 당신이랑 내랑 오늘 놀자’고 되뇌이면서 그 순간에 몰입하고 즐겨요. 나를 내려놔야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다 내려놓으면 안 되죠.
춤추는 사람이 너무 즐겨버리면 춤이 지저분해지거든요. 즐길 줄 아는 ‘쟁이 근성’을 지키되 중도를 지켜야 해요.”
승무에 대한 고정된 혹은 치우친 이미지를 바꾸는 것을 포함해 국·내외의 많은 축제 현장에서 승무를 선보이며 한층 가깝게 만나고 싶다는 향토무형문화재 1호 김정아의 화성 승무의 날갯짓, ‘나빌레라’ 춤사위가 툭툭 디디고 올라설 그곳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