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특례시 생활문화동호회 ‘깡깡아리랑’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악기 연주에 홀리듯 따라가 본 적이 있는가. 세상에
많고 많은 악기 중에 유독 끌리는 악기가 있게 마련이다. 인연일까, 운명일까.
해금이라는 악기에 매료된 이들에게 이제 그런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깡깡아리랑’ 회원들에게 해금이란 이미 삶의 일부니까.
글 이현주(편집실) 사진 김성재(싸우나스튜디오)
지극히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심금(心琴)을 울린다’라는 말이 있다. 모름지기 단어란 다수가 공감하는 상태로부터 탄생하게 마련이다. 세상 많은 것들이 심금을 울리겠지만, 단어 속에 ‘거문고(琴)’를 품고 있는 악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음이 틀림없다. ‘깡깡아리랑’ 역시 하고많은 악기 중에서도 마음을 두드리는 해금(奚琴)에 매혹된 사람들이 모인 동호회다.
해금은 중국에 살던 해(奚)족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한반도에는 고려 예종 때 전래되어 국악기로 자리 잡았다. 원통형 울림통에 오동나무 판을 붙여 한쪽 끝을 막고 대나무 기둥을 꽂아 자루로 삼은 이 악기는 현이 2개지만 놀랍게도 다양한 소리를 낸다. 일단 그 음색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이라면, ‘과연 심금을 울린다는 건 이런 것이로구나…’를 실감할 듯.
“하모니카를 배웠고, 색소폰도 연주해요. 그런데 색소폰 수업을 들으러 화성문화원에 간 어느 날 어디선가 해금 연주가 들려오는 거예요. 그 소리가 너무 아름답고 마음이 끌려 해금이란 악기에 관심을 갖게 됐고, 오늘에 이르게 됐지요.”
깡깡아리랑의 ‘왕언니’ 강인숙 회원은 그렇게 우연히 들려온 해금 소리에 매료돼 3년째 해금과 함께하고 있다. 사실 깡깡아리랑 회원 모두가 그와 다르지 않다. 화성문화원에서 해금을 배우며 이 악기와 사랑에 빠졌던 이들이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해 2023년 동호
회를 만들게 되었고 지금까지 활동해 온 것이다.
“처음에는 악기를 연주한다기보다 문짝 긋는 소리를 내서 주변으로부터 소음공해를 일으킨다는 핀잔도 많이 들었어요. 이게 맞나 의심하며 배웠지요. 어설펐지만 그때의 소리는 지금까지도 설렘과 온기를 느끼게 해줘요. 그리고 더 잘 연주하고 싶다는 원동력이 되고 있죠.”
깡깡아리랑을 이끌고 있는 김여옥 대표의 말처럼, 해금은 아름다운 소리를 지녔지만 그 소리를 내기까지가 쉽지 않다. 그래서 회원들은 더욱 열심히, 똘똘 뭉쳐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 깡깡아리랑 회원은 강인숙, 김여옥, 김향숙, 박지훈, 신은희, 심경미, 이대영 이상 일곱 명. 그리고 송윤주 강사가 회원들의 연주 실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 교사, 직장인, 사업가, 주부 등 저마다 하는 일도 다르고 연령대도 다양하지만, 해금 앞에서는 모
두가 동등한 ‘연주자’다.
민요부터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곡까지, 깡깡아리랑의 해금 연주 레퍼토리는 다양하다. “‘학교 가는 길’ 저부터 연주할게요! 따라 해보세요”라는 송윤주 강사의 지도로 연습이 시작되자, 조금 전까지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금세 진지해진다. 해금 ‘연주자’들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애절하고 카랑카랑한 소리가 화성시 생활문화센터 교육실을 가득 채운다. 동호회 지원사업 덕분에 깡깡아리랑은 연습실 걱정 없이 쾌적한 환경을 갖춘 이곳에서 마음껏 음악에 집중하고 있다.
“육아휴직 중에 해금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해금 소리는 사람 목소리와 비슷한 것 같아요. 마음을 울리기도 하고 위로를 주기도 하지요. 직장 생활을 하며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게 힘들지만, 일단 오면 즐거워서 계속 오게 돼요. 일상에 큰 활력이 된답니다.” 신은희 회원은 아이들이 큰 후에도 해금을 계속 연주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해금이 친구처럼 느껴진다는 심경미 회원은 그날그날 마음의 상태에 따라 연주도 달라진다고 이야기한다. “마치 명상하듯 마음을 잘 다스려야 연주도 잘 되는 것 같아요. 해금 선율과 마음의 박자가 잘 맞아야해요”라며. 연습 때마다 간식을 챙겨오는 김향숙 회원에게도 해금은 둘도 없는 벗이다. 장구, 꽹과리 등 많은 국악기를 배우고 접했지만 가장 행복을 느끼게해준 악기는 바로 해금이라고.
어른이 될수록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줄어드는 걸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깡깡아리랑 회원들만큼은 예외다. 이들에게는 연습만큼 연습 후 담소를 나누는 시간도 소중하다. 왕언니부터 막내까지, 음악을 넘어 삶의 고민과 기쁨을 공유하며 든든한 동료, 가족 같은 정을 느낄 수 있어서다. 깡깡아리랑 회원들은 이렇듯 일단 해금이라는 최고의 친구가 있고, 또 서로를 아끼고 든든히 의지할 수 있는 동료들까지 있어 누구보다 부자들인 듯.
진정한 부자는 가진 것을 나누는 즐거움을 잘 아는 이들이 아닐까. 깡깡아리랑 회원들은 자신들이 지닌 재능을 지역 주민들과 나누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화성시아르딤복지관에서 가졌던 봉사 연주는 회원들 모두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저희 연주를 보신 분들이 정말 큰 박수와 열렬한 호응을 보내주셨어요. 그 덕에 앞으로 공연을 통해 많은 봉사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갖게 해주셨지요. 앞으로 노인요양병원에서 두 달에 한 번씩 스토리텔링이 들어간 해금 연주 자원봉사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그 밖에도 저희 연주를 듣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신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도록 연습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김여옥 대표의 이야기처럼 악기 연주는 연주자 본인에게도 위안을 주지만 관객으로부터 받는 감동의 깊이는 경험해 보지 않고는 가늠하기 어렵다. 깡깡아리랑 회원들은 모두 관객의 호응 덕에 벅찬 설렘을 경험했다고 입을 모은다.
“저희 연주를 들으시고 감동하시는 모습을 보며 울컥하게 되더라고요. 해금 덕분에 감정의 선율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단순히 악기를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 10년, 20년 그 이상 함께 늙어가며 해금을 통해 감동을 전하고 싶어요”라며 깡깡아리랑의 ‘행동대장’을 맡고 있다는 박지훈 회원은 맡은 역할답게 길고 큰 포부를 밝힌다.
“정말 열정이 넘치는 분들이에요. 한 분 한 분 보석처럼 빛나지만 모두 모이면 더 큰 힘을 발휘하죠. 연습할 때는 수줍어하시지만 막상 무대가 주어지면 눈빛이 달라지며 진지한 프로 연주자처럼 돌변한답니다.”
그 열정에 반해 더 열심히 가르치게 된다는 송윤주강사의 말에 회원들이 “맞다, 우리는 무대 체질이다!”라고 맞장구를 치며 소녀들처럼 웃음을 터트린다. 대부분의 동호회가 그렇지만 그저 좋아서 시작했던 일은 어느 순간부터 목표를 갖게 되고, 그 목표를 향해 단단히 결속하게 된다.
“해금이라는 전통 악기의 아름다운 선율을 알리고, 세대와 세대를 잇는 문화의 연결 고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마추어 해금 동호회지만 회원들 모두 긍정적이고 열정이 많으신 분들이라 언젠가는 프로 해금 연주자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김여옥 대표가 말하는 목표는 곧 이번 호 《화분》의 주제와도 연결되는 듯싶다. 깡깡아리랑 같은 모임들이 곧 화성특례시의 문화를 아름답고 단단하게 가꿔가는 것이니.
“로컬리티란 곧 ‘With’, 함께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을 함께, 더 열정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해금을 통해 함께하는 힘으로 화성시의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또 기성세대, 새로운 세대와 문화의 힘을 나누고 꽃피우고자 합니다. 그것이 저희의 행복이며 꿈입니다.”
사소해 보이는 끌림에서 시작된 해금과의 인연은 각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럿이, 함께 그 마음을 나누게 했으며, 행동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널리 전파하게 만들었다. 작은 악기가 가진 힘은 이렇게 크고 세다. 사람들이 악기 하나쯤 연주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품는 것도 그 힘의 의미를 알고 있어서일 듯. 깡깡아리랑 회원들이 누리는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다면 일단 해금을 배우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동호회 시작 초기에는 초보자도 환영했지만, 현재는 해금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는 이들에게 기회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해금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꾸준히 ‘함께 하겠다’는 하는 마음가짐과 의지다.
해금 연주 동호회 ‘깡깡아리랑’
활동기간 2023년 12월~
회원구성 30~70대 여성
활동문의 이메일 wisha8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