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클래식에도 여전히, 금난새

지휘자 금난새

내일의
클래식에도
여전히,
금난새

지휘자 금난새

초록색을 좋아한다는 그의 말마따나 곳곳이 초록인 금난새의 대기실은 한겨울에도 녹음을 잃지 않은 소나무처럼 곧은 기운을 내뿜었다.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도 여전히 유쾌한 미소로 청중 앞에 서는 그를 표현하는 색을 고른다면 또한 초록이 아닐지. 대한민국 클래식 대중화의 선구자로 일생을 살아온 지휘자 금난새를 만났다.

차예지(편집실) 사진 이대원(싸우나스튜디오)

화성예술의전당 개관을 기념해 12월 27일, 성남시향과 함께 공연을 맡아주셨습니다.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

다양한 장르의 곡을 다채롭게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주제곡, 오페라 <라 보엠>에서 미미와 로돌포가 만나는 장면의 이중창 곡도 준비했어요. 테스트 겸 공연이니 성악가들과의 조합은 어떨지 보려고요. 그리고 성남시향과 함께 공연한 적 있는 찰리 올브라이트라는 피아니스트도 함께할 예정입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굉장히 재주가 많은 피아니스트예요. 우리하고 연주를 많이 했는데, 화성 시민들께도 소개하고 싶어요.

화성예술의전당에는 2차례 방문하셨다고요. 어떤 부분이 인상적이었나요?

6개월 전쯤 한 번 봤고, 한 달 전에 또 갔었어요. 시민들이 굉장히 좋아하겠다 싶었죠. 크기도 크고, 위치적으로도 조경이나 주변 환경이 잘 되어 있고요. 야외공연장도 유니크하게 디자인돼 있어서 시민들의 ‘음악의 정원’이 될 수 있겠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공연장의 첫걸음에 세계적인 지휘자가 함께한다는 게 의미가 깊을 것 같습니다. 어떤 관객이 찾을지도 기대되고요.

표를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할 계획이라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제가 표를 좀 사서 근처에 있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기증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 중이에요. 공연장이 생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미래의 청중을 만드느냐가 중요하거든요.
제가 1990년대에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청소년 음악회를 맡았던 적이 있어요. 그때 청소년 음악회는 해야 해서 하는, 어쩔 수 없는 일에 가까웠어요. 아이들이 클래식 공연에 오겠어요? 근데 난 거꾸로 이게 제일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어요. 이 아이들이 미래의 청중이 될 아이들이라고 생각했죠.
어떤 일에 애정을 갖고 하는 것과 어쩔 수 없이 하는 건 다르잖아요. 저도 그런 생각으로 애정을 갖고 공연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냥 음악회를 하면 어려우니까 해설을 하면 좋겠다 해서 탄생한 게 ‘해설이 있는 음악회’였어요.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독일, 영국, 러시아 이런 식으로 나라별 테마를 정해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고요.

늘 클래식의 대중화에 힘써오셨습니다. 본인을 ‘클래식 영업하는 사람’으로 정의하시기도 하고요.

‘우리가 이런 음악을 한다, 그러니 와서 들어 봐라’ 하는 태도가 아니라 청중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한 번 들어보는 게 어떠냐고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우리나라 공연장은 12월 31일에 공연이 없었어요. 휴일 같은 개념으로요. 근데 저는 다른 사람이 쉰다고 음악가도 쉬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있었죠.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듯, 클래식을 들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1994년 12월 31일 밤 10시에 예술의전당에서 처음으로 ‘제야음악회’를 했어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죠. 이거 은근히 자랑해야지.(웃음)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금난새가 제야음악회를 했다고.
저는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마케팅 관점에서 음악을 바라보려고 했어요. 음악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좋은 공연을 많은 사람이 즐기려면 공연장의 존재가 중요합니다. 화성예술의전당 역시 시민들을 위해 만들어졌는데요. 선생님도 부산과 성남에 있는 공연장 건립에 많은 관심을 쏟으셨죠. 지역사회에 있는 공연장이 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지금 인터뷰 하고 있는 이곳 성남물빛정원은 원래 28년 동안 방치된 하수처리장이었어요. 시민들이 놀라요. 늘 지나다니면서 보던 하수처리장이 어떻게 이렇게 바뀌냐고요. 심지어 짓는 데 1년 반밖에 안 걸렸어요. 부산에 있는 금난새 뮤직 센터(GMC, Gumnanse Music Center)를 샘플 삼아 내가 보여줬죠. 그곳은 4년 전에 생겼는데 부산 실내악의 둥지가 되고 있어요.
화성도 이번에 화성예술의전당이라는 큰 규모의 공연장이 생기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까이 있는 청중이 행복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도 필요해요. 화성시에 젊은이들이 많다면 젊은 청중을 위해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공연을 해야 하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변화를 느끼고 충분히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합니다.
또 하나, 아름다운 것도 중요해요. 저는 여러 도시를 다니며 많은 공연장을 보는데요. 건물은 참 예쁜데 거기에 광고판과 각종 배너 등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점점 예술과 먼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공간 자체의 예술성도 중요한 요소예요.

오케스트라가 지역 주민과 소통하기 위해 고려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결국은 ‘정해진 예산 내에서 시민들에게 어떻게 음악을 잘 서비스할 것인가’예요. 큰 공연만 유치할 것이 아니라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연이 많아지는 것도 필요하고요. 저희가 야외음악회를 할 때, 의자를 3,000개 놓으면 5,000명이 와요. 표를 사서 오는 관객들이 있는 정기 연주회도 중요하지만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음악회를 하는 것도 중요해요.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니만큼 시민의 자랑스러운 오케스트라가 돼야죠.

오랜 기간 활동하신 만큼 선생님을 따르는 후배들도 많아졌을 텐데요. 어떤가요?

연주자는 각자 악기의 선생이 있지만 지휘자는 없어요. 나의 유일한 선생은 독일 유학 시절 선생뿐입니다. 독립심이 강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는지. 이젠 내 힘으로 해결하는 게 익숙해졌죠. 반대로 내 역할은, 재능은 있지만 기회가 없는 젊은이에게 기회를 주는 겁니다.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연주자를 모시고 음악회를 할 때도 있지만 나는 좋은 젊은 연주자가 있으면 그에게 기회를 주려고 해요. 그게 보람찬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수많은 공연에 섰지만, 여전히 무대에서 떨리거나 긴장될 때가 있나요?

이제 늙어서 그런지 없어요. 하하. 근데 최근에 하나 느낀 게 있어요. 스페인에서 연주가 있어서 갔다가 부산에서 연주가 있어 다시 돌아왔는데, 바로 또 체코에서 연주회가 있었어요. 며칠 새 이런 이동을 하다 보니 그야말로 죽겠다 싶더라고요. 내가 지휘를 못 하면 어떡하나, 단원들이 나 없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어요. 할 수 없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연주를 마쳤는데 엄청나게 성공적이었죠. 질문과는 좀 다른 대답이긴 하지만 긴장이라기보단, 체력이 중요하구나 느꼈던 순간이죠. 나는 지금까지 1년에 100회 이상 공연하면서 몇십 년을 살았어요. 이번에 처음으로 재판을 받은 기분이었죠. ‘네 이놈, 건강해야 한다’ 하고요.

마지막으로, 화성예술의전당의 첫 관객이 될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어딘가에 나무를 심고 정원을 가꾸고 공원을 만들면, 사람들이 티 나지 않게 조금씩 착해진다고 할까요.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해요. 환경이 중요하다는 거죠. 음악도 아름다운 자연처럼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은 자연대로 내게 좋은 비타민을 주고 음악은 음악대로 힘을 줍니다.
화성예술의전당도 어느 홀이나 마찬가지로 훌륭하게 지어졌지만, 건물이니까 조금은 드라이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근데 거기에 음악이 흐르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좋은 음악은 곳곳에 넘쳐야 하고 그럼으로써 사회가 아름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화성예술의전당이 음악을 통해 그런 가능성이 가득한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화분> Vol.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