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야 볼 수 있는 것

전경선 작가

화성이라는 이름을 소리 내서 말하면 그걸 들은 사람들은 지도 위에서 한 곳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곳에 머물러 봤거나 누군가와 특별한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면, 손가락 끝이 아닌 온몸으로 떠올리는 기억이 따로 있을 것이다.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과 마음속에 간직한 곳은 얼마나 다른가. 화성이면서 화성이 아닌 곳. 화성의 일부지만 어쩌면 화성보다 더 커다란 장소. 조각가 전경선에게 화성에 관해 묻자 융건릉과 용주사에 담겨 있는 추억들을 얘기해 주었다.

 

당신에게 화성은

어떤 곳입니까

“어린 시절 명절 때만 되면 언니들과 저는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 양감면 용소리로 향했어요. 끝없이 이어지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에 덜커덩거리는 버스, 엉덩이가 얼얼할 정도로 몸이 버스와 함께 덜컹거렸고 그때마다 우리들은 웃느라 그 긴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어요. 어린 제게 버스는 신나는 놀이기구였어요. 그리고 버스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 풀과 흙 냄새, 선산을 가득 채운 푸릇한 밤나무들과 간혹 우리의 심장을 놀라게 하던 꽃뱀까지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한가득 고여요.” 

조각가 전경선은 화성과의 인연을 유년 시절의 한 장면으로 설명했다. 아빠의 고향에서 누리던 가족과의 시간. 그들을 둘러싼 풍경과 혼자만의 기억들이 그의 대답 안에 뒤섞여 있었다. 그때 마주친 장면들이 긴긴 시간을 들여 그를 다시 화성으로 이끈 것일까? 수원 도심지에서 조각가 생활을 하던 그가 화성으로 이주해 작업실을 꾸린 지 이제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주변의 관심과 소음, 사람들의 방문이 줄었어요.” 그의 작업실은 이전과 다른 것들, 어쩌면 본래 좋아하던 것들로 다시 채워져 있다. 나무와 새, 풀과 작은 동물들의 움직임 같은 것들.

 

ⓒ 전경선

풀밭에 누운 아빠

대학원생 무렵, 그는 아빠와 함께 융건릉을 찾은 적이 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몇 주 전이었기에, 길을 따라 걷지 않고 풀밭에 나란히 누웠던 기억과 그때 주고받은 대화 때문에 그는 이 장소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늦겨울에서 봄이 얼마 안 남은 그런 계절로 기억해요. 융건릉 입구에 도착한 뒤 우린 소나무길을 지나 융릉까지 오르고 있었어요. 그때 아빠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나무 아래 대자로 누웠어요. 햇볕을 쬐려고요. 편안해 보이는 아빠의 모습에 덩달아 저도 따라 누웠죠. 등 쪽에서 잔디를 타고 땅속 깊은 곳에서 찬 기운이 느껴지던 감각이 선명해요.” 몇 분이 지나서 아빠는 그에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아빠가 죽으면 묻지 말고 화장해서 산에 뿌려줘. 알았지?” 천주교인이던 아빠가 융릉에서 죽음에 관한 말을 꺼낸 것이 그에게는 낯설었다. 그는 아빠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춥다며 차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곧이어 그들은 융건릉 근처의 용주사로 향했다. 그는 용주사에서의 일들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다만 햇볕이 따뜻했다고만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 아빠는 김영동의 노래 ‘어디로 갈까나’를 틀었어요. 그리고 몇 주 뒤 급성 심근 경색으로 갑자기 돌아가셨고요. 아빠가 원하신 대로 상을 치르고 조금 정신을 차린 뒤 아빠가 융릉에서 하신 말 그리고 김영동의 음악은 영화의 복선 같은 것이란 걸 알았어요. 그 뒤로 아빠가 그리워지거나, 정신적으로 힘들 때, 내 자신을 돌아보고 싶을 때 습관처럼 융건릉과 용주사를 찾고 있어요.”

 

 

다만 따뜻한 곳

불자가 아니었지만, 그는 2014년에 용주사 템플스테이를 신청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을 가족들과 함께 아빠를 기억하며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백팔배를 하고 만다라를 그려보고 용주사를 둘러싼 산책로를 따라 걷기도 했다. 몸이 얼 것 같은 아침 공기 속에서 길을 안내하던 사람은 한 장소에 멈춰 섰다. “아무리 추워도 이곳에서는 양기를 느낄 수 있어요.” 안내자의 말이 시작되기 전에 그는 온도가 바뀐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용주사의 보석 같은 비밀을 안 기분이었어요.” 그의 말을 듣고 찾아간 용주사에서 나는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발견했다. 별다른 울타리도 없는 그 길 너머에는 한두 사람이 동시에 걸을 수 있는 정도의 오솔길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무시하고 들어갈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않았다. 전경선 작가가 말한 온기는 어쩌면 상상 속에서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직접 찾아왔지만, 내가 그의 이야기를 확인하러 온 것은 아니다. 탐정처럼 읽는 대신 소설의 독자처럼 읽고 싶었다. “용주사에 가기 전 텀블러에 커피나 차를 담아서 가요. 조용히 산책하고 돌아오곤 하죠.” 요즘의 그가 그러는 것처럼, 나도 따뜻한 커피를 담아 왔을 뿐이었다. ‘다만 따뜻했던 곳.’ 지난날 아빠와 함께 찾았던 용주사에서도 그는 그 양지의 온기만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화성’이라고 발음하면, 그의 마음 한 부분이 서서히 데워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덩달아 내 기분도 뭉클해졌다. 마음으로 기억하는 장소. 그런 것들로 세상은 모두가 나눠 가질 수 있을 만큼 무한히 넓어지는 게 아닐까. 용주사를 빠져나오다 나는 햇볕이 남아 있는 벤치에 잠시 앉아 있었다. 아침에 담아 온 커피는 오후 4시가 돼서 뚜껑을 열었는데, 아직 혀가 델 것처럼 뜨거웠다.

전경선 작가

화성 출생. 성신여자대학교와 스페인 바르셀로나대학교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어린 시절, 운동장에 우두커니 앉아 돌멩이로 커다란 그림을 그리던 말 없는 아이였던 그녀는 담임선생님과 아이들의 칭찬을 받으며 예술가의 꿈을 키웠다. 작업할 때 진정으로 살아있고 숨 쉬고 있음을 깨닫는다는 그녀. 서울, 뉴욕, 홍콩, 싱가포르 등 국내외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경기대학교, 스페인 바르셀로나 카이사 따라사Caixa Terrassa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