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의 관심이 급부상한 ART TECH
최근 ‘아트테크’에 대한 MZ세대의 관심이 뜨겁다. 이제 막 미술 투자에 발을 들여놓은 초보 투자자를 위해 투자 시 알아둬야 할 것과 미술 투자의 역할에 관해 이야기해본다.
“가슴속에 1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 그림과 글씨가 된다.” 조선시대 4대 명필 추사 김정희의 말이다.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미술 작품은 방대한 지식과 경험, 고뇌, 그리고 표현능력 등이 쌓여 흘러넘쳐야만 탄생한다. 그래서 위대한 예술가 옆에는 늘 작가에게 공감해 주는 미술 애호가, 미술 컬렉터가 함께했다.
최근 들어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MZ세대’가 미술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아트와 재테크의 합성어인 ‘아트테크’는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만이 투자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게 됐다. MZ세대가 재테크에 뛰어들면서 국내 미술계 역시 미술 투자 열풍으로 들썩이며 주요 소비계층 자체가 달라져 버렸다. 집값 상승에 따른 자산의 양극화와 저금리 등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 그들을 투자에 쏠리게 했고, 그사이 ‘영 앤 리치’들이 폭증해 사회 전반적으로 예술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너도나도 미술 작품 구매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트바젤과 스위스 금융그룹 UBS가 발표한 ‘미술시장 2021’은 ‘재산 100만 달러 이상의 고액 자산가 컬렉터 2,569명 중 52%가 밀레니얼 세대’라고 밝혔다. 그리고 세계 3대 아트페어 ‘프리즈’를 비롯해 ‘타데우스 로팍’ 등 세계 유수 갤러리와 기관들의 한국 지사 설립과 전문 인력 고용은 해외에서도 한국 시장을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된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을 나쁘게만 바라보지 않는다. 하지만 필자 입장에서는 ‘고객’이라기보다 ‘교육’해야 하는 수치가 더 늘어난 셈이다. 왜냐하면 MZ세대 컬렉터는 주로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작품을 구매하는 기성 컬렉터들과 달리,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고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명성만 믿고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구매하거나, 오롯이 장식적인 작품으로만 아트 컬렉팅을 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비교적 가치 없는 작품이 값비싸질 우려가 크다.
일반적으로 투자를 할 것인지의 의사결정은 기대수익률과 위험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 기대수익률이란 말 그대로 투자의 수익률을 예측하는 것인데, 당연히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과거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오랜 투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어느 정도 예측이 되기는 한다.
‘투자’라고 하면 주식이나 부동산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미술품 역시 누구나 할 수 있는 투자수단이다. 지난 20여 년의 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미술 투자는 변동성과 위험률이 높지만, 높은 상승 폭의 투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아트테크는 다른 금융 자산과 마찬가지로 저평가된 미술품을 저렴하게 매수한 후 가치가 높아졌을 때 적절한 매도 시점을 판단해 투자하면 된다. 하지만 작품별 희소성으로 인해 다른 투자자산에 비해 소유자가 극소수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미술품 거래 횟수는 적은 반면, 시장의 일시적 불균형에 의한 가격 변동성도 클 수밖에 없다. 같은 맥락에서 미술품의 소유자가 작품을 매각하려고 할 때 매수자와 매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매각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도 지속해서 거래될 수 있는 미술품을 찾아야 한다. 이때는 미술시장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해 다른 영역 간에 일어나는 현상들과 연결시켜 바라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술품은 하나의 진품만이 존재하며 재생산이 불가능하다. 동일한 작가라도 작품의 크기, 제작 연도, 주제, 재질, 보존 상태, 소유의 경로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이질적인 가격이 형성된다. 또한 미술품을 창조하는 작가가 생산할 수 있는 작품의 수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공급이 제한적이다. 특히, 작고한 작가의 경우에는 공급이 중단된다. 이러한 미술품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해야만 투자에 매우 유리하다. 예를 들어, 국내 미술시장 규모와 효율성, 미술품 수익률, 미술과 금융의 연관성, 미술품 가격 결정 요인 등 추가 성장 가능성이 있는 근거를 찾아 다른 투자자산과는 차별화된 형태로 접근해 나가야 한다. 그렇기에 초보 미술 투자자라면, 반드시 안목을 겸비한 미술 전문가를 통해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하고 구매하는 경로를 추천한다. 제아무리 소량 투자를 하더라도 말이다.
미술투자자라면 알아야 하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미술품 컬렉션은 본래의 수집 욕구 충족 차원을 넘어서 작가 및 미술 단체들의 생활을 돕고, 예술가들이 원활한 창작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후원(後援)’ 역할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미술 투자의 가장 큰 매력적인 특징은 건강한 문화생태계를 뒷받침하고 장려하는 아주 의미 있는 행위임을 꼭 인지해야 한다. 이런 점들을 헤아려 작품의 가치를 알아차리는 것을 소위 말해 ‘안목’이라 하는데, 안목이 형성되기까지 많은 경험과 관심, 지식이 융합되는 매우 어려운 학습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탓에 높은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미술 투자가 일반인들에게 ‘어렵다’라는 편견을 갖게 해 진입장벽이 높았다. 명품 대신 미술품을 사는 시대는 진작에 도래했지만, 여전히 미술품보다 명품 구매가 훨씬 더 익숙한 것도 이러한 이유이지 않을까.
더 활발하고 건강한 미술 투자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작품의 가치에 대해 지적인 논의를 유발하는 수준 있는 화랑이 많아져야 한다. 미술 컬렉터 또한 안목과 감각을 훈련하는 자세를 갖출 때 비로소 미술시장의 질적 성장도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전시회를 통해 미술 작품을 실제로 감상하고, 이를 통해 본인 스스로가 느껴야 한다. 우리에게 말을 거는 미술 작품과 친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런 예술품을 사야 한다. 진정한 예술품이 우리의 삶에 파고들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철저하게 경험해야 한다. 예술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초월자며, 예술품은 그러한 초월자를 들여다보는 창이다. 미래는 가치 창조의 시대이다. 미래의 소비자는 가치에 투자하고, 가치에 소비할 것이다. 그래서 미래는 누가 가치를 어떻게 만드냐의 싸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예술 가치를 만날 창이 필요하다. 초월적인 예술과 연결되지 못하면 변화무쌍하고 위협적인 도전 과제를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난해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진출했다. 세계 10위의 경제 규모, P4G 정상회의 개최, G7 정상회의 참석 등 높아진 위상과 함께 삶의 질도 높아져,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에는 당연히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내 미술시장(지난해 예술경영지원센터 집계 기준 한국 미술시장 규모 9,157억 원)은 세계 미술시장 규모(지난해 UBS 리포트 세계 미술시장 거래총액 약 79조 원)에 비하면 매우 미비한 상태이다. 이는 아직 미술품의 가치를 적게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술을 가치 있게 바라보는 마음을 진심으로 키우는 것이다. 그래야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 투자는 장거리 마라톤과 같다. 미술품을 구매하는 것 못지않게 판매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를 기다리는 인내력이 중요하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단순히 투자수익률에만 집착하다 보면 견뎌내기 힘들 수 있다.
미술품 컬렉션은 국내 미술시장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한국 미술계를 이끄는 주역의 역할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미술품 컬렉터 내지는 투자자라면 자긍심을 갖고 예술이 주는 감상의 기능을 즐기며 진정성 있는 미술 투자를 이끌어 나가길 바란다. 미술 투자의 가장 큰 즐거움은 작품을 소장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심미적 만족감과 미적 가치 그리고 예술적 경험이다. 재테크 수단을 넘어 작가를 아끼고 함께 성장할 방법을 고민하는 컬렉터가 많아진다면 국내 미술 생태계도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또 누가 알겠는가. K팝처럼 K아트가 전 세계를 사로잡을지.
권진규 미술관,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미술관 등에서 한국 근현대미술의 정체성 재조명을 전시기획하며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했고, 박여숙화랑, (재)한원미술관, 종이나라박물관, 학고재 등에서 재직했다. 문화 예술 저변 확대를 목표로 전시기획·방송·강의·평론·칼럼·출판 등 왕성하게 활동하며, 현재 덕성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 피카프로젝트 수석 큐레이터다.
글 최고운(큐레이터, 미술평론가, 미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