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챌린지가 아닐 때까지

더 이상
챌린지가
아닐 때까지

홍화정(@hongal.hongal)

따뜻하고 편안한 그림을 오랫동안 그리고 싶은 일러스트레이터.
10년 넘게 그림일기를 써왔으며 일기를 바탕으로 《혼자 있기 싫은 날》, 《쉬운 일은 아니지만》을 그리고 썼다.

자기 전에는 머리맡에 둔 3년 일기장을 펼칩니다.
오늘은 무엇을 잘했을까, 빈칸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떠올려 봅니다.

오늘은 미뤄둔 바지를 손빨래했습니다.
세탁기로 지워질 얼룩이 아니라 손으로 팍팍 문질러 빨아야 했는데,
빨랫감은 늘 세탁기에 던져 넣기만 하던 습관이 배어 바지 한 벌 손빨래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생활인이 된 것입니다.

바지 한 벌을 손으로 빨고 보니 20분 남짓 지났을까요.
이 20분이 귀찮아 무려 한 달을 빨래통에 넣어만 두고 미뤄왔습니다.

‘미루던 손빨래를 했다’ 분명히 칭찬할 일이지요.
저는 망설임 없이 오늘은 드디어 바지 손빨래를 해치웠다고 칭찬일기에 적었습니다.

• 갖고 싶은 옷을 발견했는데 바로 결제하기를 누르지 않고 장바구니에 담아 놓기만 했다.
• 늦잠 자서 오후에 겨우 일어났지만 스스로를 혼내지 않고, 오히려 먹고 싶은 국밥을 사 먹고 하루를 시작했다.
• 거실에 굴러다니던 책을 문득 집어 들어 꽤 읽었다.
• 밤늦게까지 일하다 ‘오늘은 여기까지가 한계구나’ 싶어 컴퓨터를 껐다. 내 한계를 알아채다니!
• 오랜만에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혼자만의 그림을 그렸다.
• 늘 ‘해야 하는 일’부터 시작했는데, 오늘은 ‘하고 싶은 일’부터 시작했다.
• 몇 달 만에 만난 동생을 만나자마자 꼭 안아주었다.
• 처음으로 바다에서 다이빙을 했다. 뛰기 전에는 무서웠는데, 막상 바다에 빠지니 속이 후련했다.
• 주방 기름때가 늘 거슬렸는데, 오늘 갑자기 모조리 청소해버렸다.
• 혼자 먹는 저녁이라 대충 파스타를 볶아 먹었는데, 팬 채로 먹지 않고 접시에 예쁘게 담아 먹었다.
• 방이 엉망이라 ‘대청소해야 하는데’ 생각하며 미뤘는데, 일단 옷만 치워 봤다. 막상 옷만 치웠는데 꽤 깔끔해졌다.
• 여행 다녀오자마자 캐리어 짐을 다 풀어 정리했다. 원래라면 일주일은 걸릴 텐데.
• 드라마 새벽까지 몰아서 보고 싶었는데 내일을 위해 한 편만 보고 누웠다.

심리 상담을 받으며 ‘스스로에게 너무 각박한 것 같다’는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시작해 본 자기 전 칭찬일기 쓰기 챌린지. 초반에는 칭찬할 거리가 없어 펼치지 않는 날도 있었고, 귀찮아서 건너뛴 날도 있었지만 빼먹는 날은 빼먹는 날대로, 쓰는 날은 쓰는 날대로 3년이 지났습니다. 요즘은 칭찬일기 쓰기 챌린지가 더 이상 챌린지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 전 일상이 된 것이지요.

나를 위해 시작한 사소한 챌린지가 더 이상 챌린지가 아니게 된 날이 오자 저는 전처럼 스스로가 싫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매일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가 별로라고 생각해왔는데, 매일 칭찬을 받으니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사라졌다고 할까요.

나아지고 싶어 도전한 행동을 3년간 차곡차곡 쌓았다는 믿음도 제 발밑을 튼튼히 잡아주는 기분이 듭니다. 하루에 5분뿐이지만, 어떤 날은 실패하기도 했지만 듬성듬성한 채로 시간이 쌓여도 이렇게 든든할 수 있구나 하고요. 다른 도전을 하게 되는 날이 와도 이 느슨한 자신감이 저를 받쳐주리라 믿고 있습니다. 제가 그랬듯 모두에게 사소한 도전이 더 이상 도전이 아니게 될 날이 오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날에 우리에게는 분명 전과 다른 스스로가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을 테지요.

정말 수고 많았고 고맙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