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화정의 에세이 툰
글·그림 홍화정
여느 날과 다름없이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단지 내 수거장으로 향했던 밤.
늦은 시간이라 그랬을까요, 그날따라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제 두 손에도 이미 쓰레기가 가득 들려있었는데 말이지요.
쌓인 쓰레기 더미 위에 제 쓰레기를 또 얹는데 막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가 평생 버릴 쓰레기를 모은다면
이 쓰레기 더미보다 훨씬 더 큰 산이 만들어질 테지요.
끈적해진 손과 풍기는 악취, 압도당할 만큼의 쓰레기 더미 앞에서
‘나는 지구에 이런 것들만 남기고 가는 게 아닐까?’
아득함과 동시에 죄책감이 몰려왔습니다.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선언한 것은 “고기를 먹지 않겠다”였습니다.
축산업이 이산화탄소 배출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아지면 기후 온난화가 가속화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일상을 과격하게 바꾸어 나갔습니다. 텀블러, 쇼핑백, 스테인리스 빨대,
각종 비누(샴푸, 린스, 설거지 등), 소프넛, 면생리대, 천연수세미, 손수건 등을
구입했습니다. 마트에 갈 때는 파우치를 들고 가 플라스틱에 담기지 않은 채소만
구입했는데, 종종 플라스틱에 담기지 않은 채소가 없어
구입하지 못하는 날도 생겼습니다.
가까운 곳에 외출할 때도 보부상 같이 커다란 가방을 메고 나갔습니다.
텀블러, 스테인리스 빨대, 손수건 등 챙겨야 할 물건이 많아졌거든요. 가족들이
외식하러 나가는 날에는 따라가지 않거나 옆에서 채소 반찬만 깨작거리다
돌아오곤 했습니다. 물티슈 대신 걸레와 행주를 쓰고, 면생리대를 직접 빨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지 않으면서 집안일에 드는 시간이 많이 늘었습니다. 시간만 생기면
드라이브 가던 습관도 줄이고, 비행기를 타고 여행 가는 일도 줄였습니다.
‘나 꽤나 멋지게 실천하고 있잖아? 이렇게만 살면 환경에도 동물에게도 해롭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어!’ 일상 곳곳에 손이 한 번 더 가고 불편한 일들 뿐이었지만,
불편하게 지내는 것은 무해한 인간이려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기에
오히려 뿌듯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난 어느 야심한 밤…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채 배달 음식으로
육회를 시켜 먹고 있는 저를 마주하게 됩니다. 사실은 소고기를 좋아하고, 걸레와
행주를 세탁할 시간에 물티슈 한 장으로 간편하고 싶고, 비행기를 타고 여행
가는 것도 좋아하고, 주말마다 드라이브를 가고 싶고, 텀블러를 깜빡해서 일회용
컵에 커피를 사 먹고, 더운 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돌아다니다 ‘그냥 이것저것
챙기고 다니지 말까?’ 고민하게 되는 것도 비참했습니다. 가족들이 “고기는
안 먹는데 생선은 왜 먹냐? 생선은 생명 없냐?”라고 묻는 말에 할 말이 없는
무지한 저 자신에게 화도 났습니다. 내가 버리는 쓰레기는 줄었지만, 여전히
수거장에 한가득 쌓여 있는 쓰레기들을 보면 허무해지기도 했어요. 스스로의
모습에 혼란스러워하며 결국 육회를 먹는 나. 그저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돌이켜보니 나 자신에게는 유해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팟캐스트를 들으며 일하고 있는데
환경 전문 기자분이 말씀하셨어요.
“어쨌든 일회용 플라스틱 컵 하나를 더 쓰는 것보다 덜 쓰는 것이 나아요.
지속 가능한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 얘기가 제 머리를 딱! 치고 지나갔습니다.
‘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오래 할 수 없구나,
오래하려면 지속 가능해야 해!’
어쩌면 지속 가능한 무해함이란
완벽히 무해한 사람이 아니라 덜 해로운 사람이 아닐까요?
덜 해로운 사람도 괜찮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완벽히
무해한 사람은 버겁고 힘들지만, 덜 해로운 사람은 어렵지 않고 부담 없이
실천할 수 있는 것도 많아 지속할 자신 있거든요.
덜 해로운 사람이 되고자 오랫동안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무해한 사람의 근처에 다가설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오래오래 덜 유해한 사람이 되자’는 마음으로 오늘도 텀블러를 들고 우리집
강아지와 산책을 나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