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마음, 이율배반의 관계학

조형작가 오엔앤한태희

작가 한태희는 이성적이고 계산적이며 완벽주의자다. 그의 작품은 모두 치밀한 계산에 의해 절제된 메시지를 품고 세상에 나온다. 오엔은 세간의 시선에 통제되는 것을 거부하는 인물로 한태희와 한 몸에 산다. 둘의 공존은 이율배반적이며 아이러니하지만 끝내 유머러스하다. 불가능할 것 같은 공존은 그녀의 작품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저는 철학을 전공했어요. 학창 시절에 미대에 가고 싶었지만 형편이 좋지 못했거든요.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녔는데, 똑같은 점심시간에 모두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게 불편했어요. 그때 제가 정말 싫어하는 환경에 있다는 걸 깨달았죠. 늦게나마 미대 진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순수미술을 배웠어요. 그곳에서 구조적으로 ‘잘 그리는 것’보다는 피사체를 향한 ‘나의 추상’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저의 모든 작업은 철학적 질문과 인문학적 관점을 기초로 이뤄져요. 무언가를 감정적으로 표현하기보단 제 안에서 확실하게 규정된 단어(의미)를 지향점으로 삼죠. 가령 표현하고자 하는 개념이 ‘고립감’이라고 한다면, 한 개인이 사회에서 고립감을 느끼는 환경을 떠올리고, 그에 맞는 재료와 오브제를 찾는 식으로요.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느낌을 유발하는 군더더기는 모두 제외하고요. 가끔 제가 작업하는 방식이 논문을 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의도하지 않은 부분이 하나도 없는 거죠. 그것은 한태희의 영역이에요. 

아, 저의 작가명 ‘오엔앤한태희’에 대해 많이 궁금해하는데요. 한태희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며 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인 반면, 오엔은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캐릭터예요. 망가져도 괜찮은 존재. 요즘 식으로 하면 일종의 ‘부캐’라고 할수 있겠네요. 예전에는 제 작품을 제가 의도한 그대로 봐주길 바랐어요. 하지만 오엔은 남들이 내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든 상관없어해요. 과정 자체를 즐기죠. 오엔과 한태희 어느 한쪽을 버리거나 감출 생각은 없어요. 둘이 함께 있을 때 여유와 자신감이 생기거든요.

부분과 전체 2, ⓒ 오엔앤한태희

당신은 어떤 작업을 하나요?

제 작품의 주제는 모두 ‘관계’로 이어져요. 나를 주체로 놓고 탐구하기도 하고, 사회 구조를 놓고 탐구하기도 해요. 대표작은 ‘부분과 전체 2’예요. 이틀을 꼬박 설치한 작품으로, 제목처럼 부분이 모여 전체가 되는 형태를 시각화했어요. 작품 속 세 개의 나무틀은 개인이 가진 어느 부분들을 상징해요. 각도와 조명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이죠. 틀과 틀을 잇는 선은 서로 묶여 있고 통과하고 중간중간 끊어지기도 하며 자기 안의 결정을 의미해요. 그러한 우연과 인과관계가 말하는 바는 ‘모든 관계에는 다양한 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거예요. 작품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해석)은 모두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그중에 맞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어딘가 이율배반적인 느낌이 들지 않나요? 다시 말해 나를 판단하는 누군가의 다양한 시각은 이해하지만, 그러한 틀이 어떤 차별을 만드는 게 싫어요. 궁극적으로는 그 틀에 속하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말고, 힘을 빼고 살자고 말하고 싶었던 거죠. ‘예술을 꺼내먹어요’는 김주은 작가님과 협업한 작품으로, 언택트 시대의 예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고안한 작품이에요. ‘예술 자판기’ 패널의 그림을 보고 연상되는 문장을 고르는 거예요. 하나의 그림을 보고 누군가는 ‘망토를 휘날리며 모험하는 난쟁이’를 떠올리기도 하고, ‘폭발하는 활화산’을 선택하기도 하죠. 각자 고른 엽서에는 자신이 어떤 심리 상태인지 알려주는 짧은 메시지와 달콤한 젤리가 들어 있어요. 그동안 해온 작업과는 다른 형식이었지만, ‘시간의 다양성’과 ‘장소의 특수성’이라는 주제가 저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당신의 작업실은 어떤 곳인가요?

작년 10월에 동탄에 작업실을 꾸렸어요. 1층을 주거 공간으로, 2층은 작업실로 사용해요. 주거와 작업을 분리하기 위해 저만의 루틴을 만들었는데요. 작업실로 출근할 때마다 가방을 들고 오는 거예요. 가방을 깜빡했다면 다시 내려가서 가져오기도 하고요(웃음).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일종의 의식을 만드는 거죠. 종일 작업실에 있다가 해가 지면 작업을 멈추고 칼퇴를 하는데, 역시 가방을 챙겨서 내려가야 해요. 가방이 곧 출근과 퇴근을 결정하는 거예요. 작업실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하늘이 보이는 창가예요. 해가 들어오는 바닥에 러그를 깔아두었는데 고양이 ‘여름’이 자기 자리인 양 자주 누워 있어요. 원래는 제 자리인데 말이에요.

화성은 예술가와의 대화를 많이 시도하는 도시예요. 문화 재단 주최로 예술가와의 간담회도 자주 열고, 지원 사업도 진행하죠. ‘예술을 꺼내먹어요’의 예술 자판기를 함께 만든 주은 작가님도 간담회를 통해 처음 만났어요. 그러한 관계 맺음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어 좋아요. 앞으로의 계획이라면 잠시 완주에서 지낼 예정이에요. 예술가를 위한 한 달 살기 프로젝트인데요. 그곳 레지던시에서 작업과 전시를 진행할 거예요. 아마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작품 체험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새로운 관계를 맺는 건 일종의 놀이이자 도전이잖아요. 저는 그런 시도가 늘 새롭고 즐거워요.

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