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리평화기념관
봄이 오면 유독 더 화사하고 향기롭게 매화꽃이 피어나는 바닷가 작은 마을이 있다. 1951년부터 2005년까지 반세기 동안 미 공군 전투기 사격장으로 쓰이며 끝나지 않는 전쟁을 치러야 했던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다. 54년간 폭격과 폭음의 혹독한 삶을 살아야 했던 곳에 매향리평화기념관이 조성되어 4월에 개관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기꺼이 참여해 설계한 매향리평화기념관은 매향리 주민들의 저항과 투쟁으로 되찾은 화성 땅에서 보내는 평화의 메시지다.
글 민혜경(여행 작가) 사진 민혜경, 화성특례시 제공
매향리 주민들의 고통과 투쟁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매향리평화기념관은 붉은색과 회색으로 이루어진 이국적인 건축물이다. 평화기념관 건물 옆 회색의 5층 높이 건축물은 사격훈련이 벌어지던 매향리 바다와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다. 건축가 마리오 보타는 매향리에서 ‘바다와 아픔’으로 설계에 대한 영감을 떠올렸다고 말한다. 매향리평화기념관은 매향리 마을과 매향리의 소리를 기억하는 ‘Memory’의 영문자 ‘M’으로 상징화되었다. 붉은 벽돌로 정교하게 쌓아 올려 만든 회랑을 걷다 보면 M 자 벽돌의 공간 사이로 매향리의 소박한 풍경이 간헐적으로 보인다. 매향리의 밝은 미래를 기원하며 눈부신 자연광이 곳곳에서 유입되는 구조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 길을 걷는 동안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누구나 포용하는 위안과 치유의 시간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인간다운 삶을 되찾기 위해 싸워온 역사를 기념하고 다음 세대에게 평화를 전하는 공간으로 지어진 기념관 내부는 평화로운 햇살이 곳곳에 스며들도록 설계함으로써 오랜 고통과 절망을 겪은 주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담았다.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 평화와 희망을 되찾은 매향리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의 웅장한 모습이 매력적이다.
매향리평화기념관은 ‘평화의 길, 희망의 바다’를 비전으로 세워졌다. 전시 구성에도 이런 비전이 반영되어 쿠니사격장(Koo-Ni Range)처럼 존치(存置) 건물은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평화의 길)으로, 기념관은 치유와 존중을 통한 평화를 약속하는 공간(희망의 바다)으로 조성했다. 기념관의 외부는 회랑과 추모의 위령비, 물이 흐르는 수(水) 공간 등을 만들어 매향리 주민들의 오랜 아픔과 슬픔을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경기도 우수건축자산으로 지정된 매향리평화기념관 부지는 소규모 미군기지로서의 특성이 있다. 현재는 장교 막사와 사병 막사, 편의시설인 카페, 체력 단련시설 등이 남아 미군 생활사를 보여준다. 특히 사격통제실 건물의 경우 다른 기지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유형 구조의 건물로서 부지 내 건축적 가치가 가장 높은 건물로 관심을 받고 있다.
매향리평화기념관은 매향리의 평화를 기원하며 지하 1층, 지상 2층의 규모로, 야외 쿠니사격장의 일부 시설은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매향리평화기념관의 1층은 어린이를 위한 체험실이다. 신발을 벗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편안하게 꾸며진 공간이 아름답다. 빛과 희망, 자유, 평화를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와 다양한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아이들은 작은 책방에서 퍼즐과 미로, 그림책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매향리의 역사를 접할 수 있고 평화의 의미와 가치를 배울 수 있다.
2층 상설전시실에는 쿠니사격장의 설치부터 폐쇄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 주민들의 치열했던 투쟁, 미군 훈련의 적나라한 실상 등을 담은 다양한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숫자로 보는 매향리의 잔인한 역사, 변화된 매향리의 마을 환경, 언론으로 전파되었던 마을 소식, 폭격의 공포에 맞선 사람들, 영상실, 미디어 방명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54년간 이어졌던 무차별 폭격과 폭음은 전투기 50m 저공비행, 연간 사격일 수 250일, 매향리 사격장 최고 소음 127, 매향리 주민의 난청률 35%, 해상 기관총 사격 평균 지속시간 29분, 하루 평균 사격 횟수 600회, 주민들의 투쟁 기간 17년 등 구체적인 숫자로 매향리의 아픈 역사를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기록해 놓았다.
기획전시실에는 ‘빛과 그림자(Light and Shadow)’를 소재로 한 전시를 만날 수 있다. 매향리의 어두운 역사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시 작품이다. 전시장에는 빛의 조각들, 그림자 산책, 그림자 스튜디오, 그림자 잔상, 빛의 조형실, 빛과 예술의 조화 등 6개의 테마로 전시 중이다. 개관 기획전은 매향리의 과거와 아픈 기억, 평화와 상호작용하는 현재의 빛, 빛과 그림자의 관계를 소재로 하는 체험 전시들이 열리고 있다. 미리 준비한 아크릴 조각을 자유롭게 끼워 넣으며 나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고 바닥에 비친 그림자를 따라 특별한 기억의 장면을 연출할 수도 있다.
그림자와 조명을 이용해 인증 사진을 남기는 포토존은 시각적 효과가 그림자로 극대화된 공간이다. 빛에 반사된 그림자는 몇 초간의 잔상을 남겨 다양한 동작으로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낸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호기심 가득한 공간으로 친구, 연인은 물론 온 가족이 함께 즐거운 체험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화성시 우정읍 서해 아산만과 맞닿은 매향리의 옛 지명은 고온리(古溫里)다. 기온이 따뜻하고 넉넉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이었다. 당시 참전 중이던 미군은 마을의 옛 지명인 고온리를 그들의 기지명으로 정하고 영문 표기에 고온리 발음이 어렵다며 쿠니(Koo-Ni)사격장이라고 불렀다. 쿠니사격장은 50여 년간 미군 사격훈련장으로 사용되며 매향리 주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장소이며 미군 공군기지 부속 훈련장으로 사용 당시 폭격 훈련이 가능했던 유일한 장소다.
갯벌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고 소금을 생산했던 조용한 바닷가마을에 하루 400회 이상의 훈련이 이어졌다. 주민들이 농사를 짓던 논밭에 포탄이 떨어지고 바지락을 캐던 농섬 주변 갯벌에도 무차별 포탄이 떨어져 사람들은 피폐한 시간을 보내야 했고, 수시로 부상자가 발생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1951년 한국전쟁 중에 미군 군대가 매향리 마을 앞 농섬을 해상 표적으로 사격 연습을 시작한 것이 2004년까지 계속되었다. 54년간 이어진 사격 연습으로 바다와 농지는 무차별 사격장이 되었고 1953년에 멈춘 한국전쟁도 이곳 매향리에서는 끝나지 않았다. 농섬과 구비섬 등에 목표물을 설치하고 밤낮없이 진행된 미군의 사격훈련은 주민들과의 협의나 통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연간 250일 1일 평균 약 12시간씩 시행되었다. 쿠니사격장 설치 시기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주민들 증언에 의하면 1952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주한미군은 매향리 일대 21만 평 규모의 땅에 사격장을 설치했고 이후 미 공군기의 기총사격과 연습용 폭탄 투하를 이어나갔다. 이후 미군은 1980년까지 추가징발을 통해 해상사격장 690만 평, 육상사격장 29만 평, 총 719만 평에 달하는 대규모 사격장으로 확장했다.
매향리 주민들은 군용기의 굉음, 포탄 낙하, 화재 등으로 오랜 시간 고통에 시달렸다. 그 당시 매향리 주민들의 자살률은 다른 지역보다 2~7배 높고 고도 불안이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증세를 보이는 비율 또한 다른 지역에 비해 9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매향리 주민들이 이런 사태에 대해 격렬하게 이의를 제기하고도 18년이나 소음과 환경오염, 불발탄으로 인한 30명 이상의 인명 피해까지 잔인한 역사는 계속되었다. 쿠니사격장은 생존을 위한 주민들의 처절한 몸부림과 활동가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2005년 폐쇄되면서 비극적인 역사를 끝내고 평화의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매향리 평화역사관은 매향리평화기념관 앞의 야외공간으로, 매향리 마을을 한눈에 바라보는 곳에 있다. 사격장의 폐쇄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던 투쟁본부가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평화역사관 앞에는 오랜 세월 매향리 주민들을 고통과 절망에 빠지게 했던 전쟁의 잔해들이 남아 매향리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쿠니사격장이 폐쇄된 후 마을 사람들은 농섬을 잇는 갯벌과 마을 논밭에 무차별적으로 떨어진 사격장의 잔해들을 모두 수거해서 살아있는 역사 공간을 만들었다.
매향리 평화역사관은 폭격 훈련으로 상처받은 주민들의 아픔과 매향리의 투쟁의 역사를 모두 만나는 곳이다. 매향리 바다에서 수거한 포탄더미와 농섬 인근 갯벌에 추락한 전투기의 엔진, 각종 로켓포와 탄두, 전투기 기총사격 표적으로 사용된 타깃 등을 볼 수 있다.
평화역사관 앞에는 폭격 훈련의 잔해인 포탄과 탄피로 만든 작품들, 흉물처럼 보이는 붉은 포탄 더미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붉게 녹슬어버린 포탄 더미를 바라보고 있으면 처참했던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숙연해진다.
아픔과 치유의 시간을 조형물로 표현한 임옥상 작가의 여러 작품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임옥상 작가는 포탄의 잔해들을 푸줏간의 고기처럼 투박한 갈고리에 걸어 전시하고 있다. 삶과 죽음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공간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이 진중하고 엄숙하게 다가온다.
화성특례시는 57만㎡를 평화생태공원으로 꾸며 자연과 치유의 공간으로 조성했다. 평화생태공원은 중앙에 인공호수와 매향정을 중심으로 작가정원이 들어서 있다. 평화생태공원에는 다채로운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각각의 작품마다 상세한 설명이 적혀 있어 작품의 의미를 되새기며 산책하기에 유익하다. 계절에 따라 무궁화, 장미, 원추리, 수국이 피어나는 작은 정원과 백일홍, 칸나와 버베나, 댑싸리 등 꽃 군락지를 감상할 수 있어 향기롭고 아름다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평화생태공원의 누각과 연못의 조화는 멀리에서 보기에도 멋스러워 남녀노소 누구나 여유롭게 자연을 즐기기에 만족스러운 휴식 공간이다.
평화생태공원 너머에는 야생화를 골고루 심어서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와 코스모스가 만발하는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평화생태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그 끝에서 서해를 만난다.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붉은 노을을 감상하려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간조 때가 되면 선착장에서 농섬으로 가는 바닷길이 열린다. 농섬은 미군의 포탄으로 인해 원래 크기의 1/3만 남은 상태라서 안타까움이 남지만, 섬은 아직 그곳에 오롯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닷길이 시원하게 열리면 농섬과 웃섬 사이에 호젓한 해변을 따라 평화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드넓은 매향리 갯벌에는 다양한 생물들과 멸종위기종의 새들이 찾아온다. 평화생태공원의 정원과 바닷길 사이에는 해안사구원, 마을숲 산책로, 고온숲이 있고 그 가운데에 평화의 소녀상이 서 있다. 손에는 한 송이 매화를 들고 어깨에는 작고 여린 새를 올린 소녀의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다. 한복 아래 드러난 맨발에 왠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매향리 시간여행의 피날레는 바다를 향해 시원스레 뻗어있는 바닷길을 따라 애잔한 노을빛과 함께 평화로이 산책하는 시간이다.
매향리평화기념관은 매주 월요일을 제외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입장료와 주차비는 무료다. 20인 이상 단체관람은 네이버 예약 시스템으로 신청할 수 있다. 전시 외에도 인스타그램 계정(@maehyang-peace-m)을 통해 다양한 평화 콘텐츠와 기념관의 새로운 소식을 접할 수 있다.
경기 화성시 우정읍 고온리안길 24-46
관람시간 화~일 10:00~18:00, 입장 마감 17시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휴관
관람료, 주차료 무료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고온리안길 24-11
24시간 연중무휴
입장료, 주차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