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명철과의 산책
문득 나 자신이 의아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얼굴과 손의 생김새부터 이름, 성격, 목소리까지. 그런 생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 ‘사람’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의 기원까지 궁금해지곤 한다. 남겨진 역사보다 더 먼 과거에는 어떤 것들이 존재했을까. 나는 그것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작은 질문은 우주처럼 팽창한다. 화성의 ‘공룡알 화석지’는 그런 질문을 가지고 가서 한나절 보내기 좋은 장소다. “천 년의 시간에 또 십만 년의 시간을 곱하면, 1억 년의 시간이 됩니다.” 김명철 시인의 사유를 따라 공룡알 화석지를 천천히 걸어 보았다.
안산 본오동에 살던 김명철 시인은 좀더 조용한 곳에서 지내고 싶은 마음에 화성 남양읍 장전리로 이사했다. ‘고라니 가족과의 만남.’ 지금의 집을 찾게 된 과정에는 작은 미소를 짓게 하는 사연이 있었다.
“이사를 마음먹고서, 우선 집에서 가까운 곳부터 반경을 넓혀가며 이사할 곳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나오자마자 왼쪽으로 농로가 보이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불과 10여 분도 채 안 되어 한 마을이 나타났어요. 좁은 농로를 따라 아카시아 가시에 차를 긁혀가면서 들어가는데, 글쎄, 고라니가! 그것도 고라니 가족이! 천연덕스레 차를 막고 도망치지도 않으면서 눈을 마주치잖아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더 들어가면서 폐농가를 하나 발견했고, 주인을 찾아 무작정 농가 구매 계약을 하게 되었어요. 그게 10여 년 전 일입니다. 화성과의 놀라운 인연이지요? 장전리라고 할 때의 장獐이라는 한자어는 ‘노루 장’ 자랍니다.”
그곳에서 오래된 농가를 하나 빌린 그는 3년간 집필 활동을 하며, 때 묻지 않은 자연과 사람들을 만났다고 말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사할 당시에는 반딧불이도 보이던 동네. 그곳에서 본 것들이 시에 그대로 담기는 일은 적지만, 그는 그곳에서 새로운 눈과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화성에 거주하는 그에게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가 있는지 물었을 때, 그는 고정리에 있는 공룡알 화석지이야기를 꺼냈다. 원래 바닷물이 차 있던 곳에 이제는 넓은 갈대밭이 펼쳐져 있는 곳. 송산그린시티 전망대에 들렀을 때, 그 갈대밭 한가운데 공룡이 그려져 있는 건물 옆을 차로 지나던 일이 떠올랐다. 몇몇 사람들이 건물에서 나와 멀리 들판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모습도 기억이 났다. “지난 촛불집회 때 좌편의 분신 사건과 우편의 투신 사건으로 누군가 목숨을 버리는 상황을 보고 ‘생명의 기원’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생명이 어디에서 왔다고, 인간이 자신의 생명에 대하여 절대적인 권한을 주장하거나, 반대로 그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기도 하는 것일까, 의문을 품었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생명의 기원에 대한 이런저런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공룡알 화석지를 종종 찾는 이유에 관한 대답으로, 그는 자신이 그곳에서 자주 떠올리는 생각을 들려주었다. 나의 기원이 무엇일까. 내 몸의 물질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가 들려준 여러 학설들에서 나는 ‘먼지’라는 단어에 관심이 생겼다. 태양계가 생성된 이래로 지구에는 매년 1만 4천 톤의 우주 먼지가 떨어지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생명체의 기원이 이 먼지 속 유기물질일 수 있다는 가설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저는 최근 몇 년간 이 ‘먼지’에 집착하고 있어요. 사람이 죽으면 먼지가 된다는 옛말이 옛말로만 들리지가 않더라고요. 먼지라는 무기물질 혹은 그것이 변환된 유기물질이 나의 기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내 사변思辨에서 떠나지를 않아요. 어쩌면 우리는 먼지의 후예인 셈이 아닐까요.”
그의 생각을 듣다 보니,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의 기원이 머릿속에 잠시 그려졌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먼지라는 물체의 이미지와 어쩐지 맞닿아 있는 것 같았다. 작은 것, 잘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는 것, 의미 없어 보이지만 완벽한 의미를 가진 것. 먼지는 아주 사소한 의미와 거대한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공룡알 화석지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보면 오랜 시간 쌓여온 퇴적물의 단면을 볼 수 있는 바위들이 나온다. 그 앞에서 가만히 서 있으면, 길고 긴 시간이 느껴져서, 나의 시간은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이 세계의 시간에 포함되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아주 잠시 지구를 구경 온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김명철 시인이 말한 대로 우리가 비슷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먼지’라는 하나의 사소한 기원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면, 알 수 없는 동질감이 생긴다. 내가 공룡의 일부고 공룡도 나의 일부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 우리들에게 시간은 무엇일까. “이 알돌들은 중생대 백악기 때, 그러니까 1억 년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겁니다. 천 년에 십만 년을 곱한 시간이 1억 년입니다. 그렇게 길고 긴 시간이라면, 이런 생각도 가능합니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가 어쩌면 아주 오래전 저돌들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가 나라는 인간의 기원이었기 때문 아닐까.” 그는 공룡알 화석지에 다녀온 11월의 어느 날, 집에 돌아와 쓴 시가 있다며 보여 주었다.
김명철
공룡알 화석지로 향하는 길을 따라
갯달래가 꽃망울을 밤하늘의 불꽃처럼 터뜨리고 있었네
말도 글도 갈수록 퇴화되어
오래전에 서로의 수심 깊이 묻어두었던
작은 알돌들은 여전히 식어가고
백 년도 아니고 천 년도 아니고
천만 년에 천만 년을 열 번 더하는 시간이란 뭘까
내가 당신 속으로
당신이 내 속으로 들락거리던 그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도 화석이 될 수 있을까
퇴적과 지층 퇴적과 지층 퇴적과 지층
지층들 사이에서 부화를 기다리고 있을 알돌들
당신은 갯벌에 묻혀 있는 알들이
언젠간 부화할 것이라고 이 빙하기가 끝나면
언젠간 눈을 떠 맑고 투명한 손톱을 드러낼 것이라고 하였네
노을은 기울어지고 있는데
화석이 되어가는 갈대숲 가을의 사이 길을 따라
당신은 노을의 반대편으로 사라지고
둥지에서 벗어난 알 하나가 먼 지평선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네
천 년이란 게 하찮다는 듯
그가 들려준 먼지 이야기는 내게 씨앗 하나를 떠오르게 했다. 언젠가 커다란 나무를 한참 올려다보며 했던 생각. ‘작은 씨앗 속에 이렇게 커다란 나무가 되기 위한 모든 정보와 가능성이 들어 있었다니.’ 작고 단단한 알맹이 하나에 몇 백 년의 계획이 전부 적혀 있었다는 생각에 커다란 신비함을 느꼈던 기억이었다. 그가 말한 먼지는 그 씨앗보다도 더 커다란 의미였다. 복잡해 보이는 삶의 굴곡들도, 사랑과 슬픔, 도전과 좌절들 그리고 공룡의 삶과 나의 삶, 세상의 모든 커다란 나무들의 이야기까지 모두 먼지에 쓰여 있는 것 아닐까. 그의 사유 덕분에 나는 ‘지구’라는 제목의 동화책을 읽은 기분이 들었다.
김명철 시인
시인은 ‘틈’외 네 편의 시로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인간의 본질을 다루는 시를 쓰는 그는 화성작가회의 초대 회장을 맡았다.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