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는 문화시민이 만든다 (글 안영노)
행정과 공공기관, 공공시설과 중간 지원조직이 모두 문화적인 도시를 위한 시민들의 활동에 문을 열어야 한다. 화성시가 문화도시를 준비하면서 해야 할 노력도 바로 이것이다. 문화재단이 해야 할 노력도 이것이다. 시민은 그 안에서 책임과 봉사와 활동을 도모하되, 즐길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정도로 열심히면 좋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는 이런 노력이 지역에서 도시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느끼게 될 날이 곧 온다. 그 순간 밖에서는 ‘시민문화가 형성되는 곳, 화성’ 이렇게 부를 것이다.
도시란 무엇인가? 곧 시민이다. 시민이 곧 도시다. 건강한 도시를 만들려면 시민이 건강해야 한다. 또 바람직한 도시의 모습은 바람직한 시민이 보여준다. 활력 있는 도시를 만들려면 시민이 활력있게 움직여야 한다. 시민이 도시를 만들고, 그런 도시가 다시 시민을 만든다. 그 도시의 모습은 그 시민을 보면 알 수 있다.
문화도시를 만들고 싶다면 문화시민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를 이어주기만 해도 된다. 문화도시는 문화시민이 만든다. 그렇다면 문화시민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문화적인 시민은 문화적인 도시에서 나온다. 우리가 그 도시에서 문화적인 분위기, 문화적인 관습, 습속, 전통 같은 것을 만들어 내야만 그것이 배경이 되어 문화적인 시민들이 키워진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문화시민이 자란다. 의식적으로 그러한 조건을 짜서 문화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바로 문화도시 조성사업이다. 문화도시는 문화시민이 만드니까, 문화적인 시민을 길러내기 위해서 문화적인 도시 분위기부터 짜나가야 한다는 역설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문화도시의 분위기를 짜나가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많은 사람들 즉 시민이 함께 이뤄내야 한다. 5년, 10년의 시간이 걸린다. 이때 시민들이 ‘도시문화’를 형성해 나간다고 말한다. 결국 문화도시 조성사업은 도시문화를 형성하는 활동이다. 시민들이 시간을 두고 해나가는 활동이므로, 도시를 발전시킬 ‘시민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시민문화를 형성하는 도시계획을 짜는 것이 바로 문화도시 조성계획이다.
문화도시 조성사업은 문화예술을 진흥시키는 사업이 아니다. 지역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문화기획자와 예술가가 주도하는 사업도 아니다. 문화정책상 문화예술진흥과 지역문화발전에 대해서는 지방문화재단이 이미 수행하고 있다. 중복사업이 될 수 없다.
문화도시 조성정책은 시민이 주도하여, 그 지역 특유의 문화로, 도시 전체의 발전을 꾀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지역의 일부특구나 중점지역을 설정하지 않고, 시민 전체가 참여하여 활동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도시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화도시를 만들어 가는 추진위원회와 시민협의체는 도시발전위원회 급의 위상을 가진다. 시민들이 건강하게 도시경영을 고민해야 한다. 힘든 일이지만 성패를 떠나 이 고민과 토론, 의견의 교환만으로도 문화적으로 성숙한 도시가 된다. 그러니 세간의 말로 ‘남는 장사’다.
문화도시 조성계획은 일종의 도시계획을 짜는 것이다. 시민들에 의한 도시계획이다. 시민들을 위한 도시계획을 행정과 전문가가 짜는 것보다는, 더 높은 수준의 참여, 진정성, 심사숙고를 요한다. 힘들지만 민도가 높아지는 학습효과가 있다.
또 문화도시 조성계획은 일정 구역이 아닌 전 지역의 도시발전계획이고, 문화예술계 뿐만 아니라 모든 직종, 분야, 영역을 포괄하는 전 시민의 참여를 통한 도시발전 계획이어야 한다. 계획은 시민참여, 민과 관의 협력, 민간주도의 세 가지를 담아야 하며 이 세 가지를 원탁과 같은 시민소통의 장에서 꾸준히 실천해 나가야 한다.
문화도시 조성계획은 문화예술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시민을 통합하여 도시발전을 모색하는데 있어서 문화예술을 방법과 자원으로 삼는다. 넓은 의미의 문화자원과 문화활동
들을 창의적인 도구와 활용할만한 가치있는 수단으로 삼는다. 한마디로 도시를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시민이 주도하고, 문화예술 활동을 지역발전에 효용있게 활용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도시계획(Urban plan)이라 하였는데, 문화를 통해 도시를 발전시키는 계획을 문화계획
(Culture plan)이라고 한다. 문화예술 발전계획이 아니라 도시발전계획에 해당한다. 구미에서 얘기하는 문화계획은 문화예술과 같은 소프트웨어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여 집단
창의력을 발휘하는 소통을 하고 공동 작업을 통해 시민으로서나 문화활동가로서나 성장하는 휴먼웨어를 포함한다. 시민들이 관계 맺고, 공동 작업으로 지역을 발전시키는 과정 자체를 문화라고 정의한 것이다.
문화도시 조성사업도 이러한 문화계획이다. 문화를 통해 일정구역의 도시재생을 하는 것을 문화재생 혹은 문화적 도시재생이라고 부른다. 문화를 통해 전 도시의 발전계획을 세우는 것을 문화계획, 즉 문화적 도시계획이라고 부른다.
문화도시 조성계획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문화를 통한 도시계획이다. 또 하나는 시민에 의한 도시발전의 설계다. 문화도시 조성정책은 이를 위하여 세 가지를 강조한다. 먼저, 중앙이 아니라 지방이 결정한다. 다음으로, 행정이 아니라 시민이 중심이 된다. 끝으로, 문화를 통해 도시를 발전시킨다. 물론 이때의 문화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휴먼웨어다. 문화도시 조성정책의 키워드는 ‘문화’와 ‘도시’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시민’이라는 제3의 키워드다.
추가적인 특징이 있다. 첫째, 시민문화를 만들어 나가면서 특성화된 도시문화를 자리 잡게 한다. 그래서 일종의 시민 캠페인이다. 공식적인 사업을 펼치는 것보다 시민들의 활동이 중요
하다. 문화활동가도 길러내야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시민활동가를 배출해야 한다.
둘째,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도시발전은 거버넌스를 바탕으로 한다. 즉 도시경영 시민주체들이 만들어지고 참여폭을 넓히기 위해서 시민원탁, 자원활동과 재능기부 등을 펼치게 되어 있다. 이것이 있어야 예산이 없어도 지속가능하다. 보통 공식적인 추진협의체가 만들어지는데 그 외에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결사체들이 복수로 만들어져 연합해야 한다.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정보를 공개하고, 누구든 올 수 있도록 자리를 개방하는 절차도 운영
해야 한다. 5년 간 지원하는 정부사업이 끝나고 예산 없이 시민들이 경영하는 자생력을 갖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문화도시에 도전하는 모든 곳들이 갖는 보편적인 과제다. 그런데, 도시마다 달리 해내야 하는 특수한 과제들도 있다. 지역 특성화라고 부른다. 모든 도시는 특별하다. 이것이 문화도시 조성사업의 모토다. 그 지역만의 과제를 갖게 되고 그것을 주제로 놓고 시민들이 함께 도시발전의 공동 작업을 한다면 지역 고유의 가치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 도시의 독특한 풍토, 시민활동의 고유한 풍조, 특유한 문화적 풍색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기존의 문화자원을 살리는 것은 기존의 문화특화 지역사업에서 해 온 일이다. 차별화된 지역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 해 온 사업이다. 반면 문화도시 조성사업은 문화자원보다 해결해야 할 지역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기존의 역사전통문화나 지역예술, 문화관광자원을 활용은 하되 지금부터 새로운 시민문화, 독특한 도시문화를 짜나가는 데 더 관심을 가지는 장기
사업이다.
문화도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문화예술이 특성화된 도시라고 답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문화적 도시는 삶의 질이 좋은 도시, 살기 좋은 도시, 살고 싶은 도시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잠재력 있는 문화자원이나 잘 보유하고 있는 기존의 예술자원보다는 시민문화나 도시문화를 지금부터 만들어가는 활동에서 비롯된다는 생각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지역만의 고유성 역시 시민들의 도시 활동을 통해 드러나기를 바라는 것인데, 이 점이 이전의 사업들과 참 다르다.
이 사업의 핵심은 문화와 도시다. 문화는 지금부터 시민이 형성해나가는 것이고, 도시는 시민
들이 직접 발전시키는 것이다. 시민의 권리와 함께 시민의 책임을 요한다. 그러다보니 이 사업의 세 번째 키워드는 시민이다. 이 사업의 정책적 중요성은 시민의 등장에서 나온다. 이 사업의 네 번째 요소를 넣는다면 아마 지역일 것이다.
모든 도시의 기본을 지키기 위해서 시민이 등장하고, 몸소 봉사하고 스스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모든 도시는 특별하니 우리 지역만의 풍속과 풍습을 창조해 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문화를 형성해 나가 지역다움을 재창조하자는 논리가 성립한다. 지역을 특성화하는 것도 문화자산보다는 시민이 도시 전체에서 형성해 내는 문화에 따르자는 것이다. 선진적인 사업인 만큼 복잡한 것도 많다. 이 사업은 문화예술과 지역문화에 관한 법으로 정한 국책의 법정사업이다. 그만큼 이 실험적 취지가 정책 발전에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시민이 할 일은 원탁에 참여하고 협의체와 결사체에 들어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특히 시민 해설사, 진행사회자, 모니터링단, 영상 피디, 자료 수집가, 기록자, 여행 가이드, 기자단, 홍보단, 정책 서포터즈, 옴부즈만, 교육자 등 다양한 자원봉사와 재능기부에 참여하기를 권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 하도록 기대 받고 요청 받는 일에서, 봉사를 즐기고, 활동을 누렸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시민이 곧 도시다. 도시는 바로 시민 그 자체다. 권한보다 책임을 지는 시민, 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활동을 주도하는 시민, 행정에 요청하기보다 봉사로 행정을 이끌어가는 시민, 그것이 좋은 도시의 모습이다.
끝으로 ‘문화적인 도시’란 무엇일까. 문화적이란 사람들이 교양을 얻고 성장한다는 뜻이 있다. 시민들이 성장할 수 있는 도시는 문화적 도시다. 또 문화적이란 사람들이 깊이 자주 소통
한다는 뜻이 있다. 공동 작업을 하며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생활 속에서 공동체가 되어가는 시민들은 문화적이다. 결국 문화적인 도시는 시민이 성장하고, 소통을 잘 하는 도시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시민들을 길러내고 서로 이어만 줘도 문화도시로 성공한다.
안영노 안녕소사이어티 대표
전 서울대공원장, 소셜벤처 양성가, 문화기획 전문가 등 다방면의 활동가이다.
글 안영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