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X 유행가 : 시대를 노래하다

온 세상이 뉴진스(New Jeans)

한 시대를 풍미한 유행가는 늘 있었지만, 유행 주기가 빠르고 짧아지면서 기억에 남는 노래를 꼽으라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신인 걸그룹 뉴진스가 음악차트를 휩쓸며 k-pop 산업의 대세로 떠올랐다. 이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중의 사랑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뉴진스의 열풍을 대중문화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인기 장르의 공존, 빠른 유행 좇기에 급급

유행은 순식간에 바뀐다. 세상 어디에도 절대 강자는 없다.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지배한 가왕 조용필, 1990년대의 정복자 서태지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지 이미 오래다. 케이팝의 전성기를 구축하고 이어온 빅뱅, 소녀시대, 트와이스, 레드벨벳 등도 마찬가지다. 이제 아티스트의 경쟁자는 같은 장르의 아티스트가 아니다. 전 세계 수많은 장르·영역의 콘텐츠가 이용자의 시간과 돈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수한 공연, 게임, 글, 드라마, 방송, 사진, 숏폼, 스포츠, 영화, 웹툰, 전시, 책 등이 모바일 기기와 오프라인으로 실시간 쏟아지는 시대의 실상이다.

뉴진스 1집 커버 ‘New Jeans’ Weverse Albums ver.

그러다 보니 유행을 좇아가기 급급하다. 생업과 생활을 하고 남는 시간을 쪼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TV와 OTT 서비스를 확인하는 정도로는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래서 어떤 영역은 아예 포기한다. 드라마·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거나, 유튜브에 올라온 축약본으로 보기도 한다. 볼 건 너무 많고 시간은 부족한 시대, 한정된 시간 안에서 절대 실패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빚어낸 수용패턴의 변화다. 오늘날 대중문화 수용자는 계급, 세대, 젠더, 취향 등에 따라 칸막이를 쳐놓은 사무실처럼 분리되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상대는 모르고, 상대가 열광하는 무언가를 나는 이름밖에 모른다. 물론 예전에도 대중문화 수용자들은 분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는 세대와 관심에 따라 갈라진 장벽이 너무 높아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하지만 다른 관심과 취향을 만나지 못해도 그다지 아쉽지 않다. 좋아하는 대상만 즐겨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국민가수가 나오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하겠는가. 드라마 <더 글로리>처럼 화제가 되는 드라마가 계속 나와도, 그 드라마 이야기를 소셜미디어에서 나누며 흥분하는 시청자는 지금 TV 시청률이 높은 일일 드라마와 주말 드라마가 무엇인지 모른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제 현대인은 끼리끼리 다른 미디어 플랫폼에 모여 즐거움을 공유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유행을 파악하거나, 유행을 통해 시대를 인식하기 어렵다. 동시에 여러 개의 평행우주가 존재하는 것 같은 세상에서는 사람마다 다른 진실이 동시에 공존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공통의 관심이 존재하기 어려운 시대, 공론장이 사라진 시대에는 각자의 취향을 극대화할 뿐이다. 개인주의와 후기 자본주의가 함께 빚어낸 현상이다. 그래서 현재 대중음악 시장에는 트로트와 케이팝의 인기뿐만 아니라 힙합과 재즈의 인기가 공존하지만, 서로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한데 딱히 흠이 되지 않는다.

대중음악 판도를 흔든 신인 걸그룹의 등장

그럼에도 2023년의 한국 대중음악을 제대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영역을 다 짚어야 한다. 물론 온라인 음악서비스 차트에서 강세를 보이는 음악은 여전히 케이팝이다. 하지만 케이팝만 이야기해서는 대중음악의 주요한 흐름을 총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알고 있어야 할 영역은 더욱 늘어났다. 대중음악 평론가조차 이 흐름을 다 아우르지 못한다.한 두 장르만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그 외에는 입을 닫는 이유다.

2022년 7월 22일 데뷔한 걸그룹 뉴진스의 인기가 놀라운 이유는 이러한 현실 때문이다. 뉴진스의 데뷔 음반은 발매 3일 만에 선주문 44만 장을 돌파했고, 누적 판매량은 100만 장을 넘겼다.그 후 2023년 1월 2일 발표한 뉴진스의 노래 ‘Ditto’는 2023년 3월 27일 월요일까지 멜론 주간 차트에서 14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이뿐 아니다. 2022년 8월 1일 발표한 데뷔 EP [New Jeans] 수록곡 ‘Hype boy’는 여전히 차트 2~3위를 지키고 있으며, ‘Ditto’와 함께 발표한 ‘OMG’ 역시 차트 10위권 안에 머무는 중이다. ‘OMG’는 빌보드 싱글차트인 Hot100차트에서 6주간, ‘Ditto’는 5주간 버텼다. ‘Hype boy’는 빌보드 글로벌200차트에서 32주 연속 랭크되어 있기도 하다.

지금 대중음악계의 경쟁이 얼마나 뜨거운지 아는 이들에게는 놀라운 결과다. 최근 케이팝 신(scene)에서 르세라핌, 스테이씨, 아이브, 에스파 등을 주축으로 하는 신인 걸그룹의 경쟁이 불붙었음을 아는 이들조차 예측하지 못한 결과다. 뉴진스를 누가 기획했고, 어느 회사에서 제작했는지 아는 이들은 멋진 팀이 나와 잘될거라 예상했어도 이 정도로 인기를 끌 줄 몰랐을 것이다. 해외에서는 BTS의 인기가 굳건하지만, 국내에 절대 강자는 존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케이팝의 높은 인기와 완성도는 작은 내수시장에만 기대지 않고 세계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러다 보니 국내 대중음악 시장에서는 다양한 캐릭터, 장르, 스타일을 가진 케이팝 뮤지션이 엎치락뒤치락 공존해왔다.

하지만 뉴진스는 얼마든지 판도가 바뀔 수 있음을 선언했다. ‘Ditto’가 온라인 음악서비스 차트를 장악하기 전, 데뷔 3개월 무렵인 지난해 10월에 뉴진스는 이미 100여 개 기업의 광고 러브콜을 받았다. 현재 뉴진스는 나이키, 맥도널드, 애플과 협업하고 있을 뿐아니라, LG와 함께 노트북 그램의 ‘뉴진스 리미티드 에디션’을 내놓기도 했다. 리바이스, 버버리, 샤넬, 아르마니 뷰티, 입생로랑 뷰티를 비롯해 광고와 협업에 참여한 경우는 훨씬 많다.인기만 높은 것이 아니다.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신인, 최우수 케이팝 음반, 노래 부문을 수상하며 3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음악성까지 인정받았다.

음악플랫폼 멜론, 지니 기준 모든 장르를 종합한 월간차트(2023년 3월) 1, 2, 3위에 뉴진스의 곡이 랭크돼 있다.

 

이 같은 결과는 제목처럼 ‘온 세상이 뉴진스’라는 평가를 부정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결과가 기존 케이팝 제작 방식을 똑같이 반복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뉴진스는 다른 케이팝 뮤지션들처럼 전문 기획사에서 선발하고 훈련시켰다. 뉴진스는 소속사 어도어의 대표 민희진이 SM엔터테인먼트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쌓은 경험, 네트워크, 문제의식, 안목, 철학을 빼고는 설명하지 못한다.

뉴진스는 상투적인 음악과 고착화된 케이팝 문법을 탈피했다. ⓒ뉴진스 공식 홈페이지

케이팝 문법 탈피한 쉽고, 가볍고, 부담 없는 음악

민희진을 위시한 어도어의 제작자들은 다른 서사, 스타일, 음악을 준비했다. 뉴진스는 기존 케이팝 뮤지션들처럼 강렬하고 선명한 훅을 앞세운 곡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들의 음악은 훨씬 쉽고 가벼우며 부담 없게 들린다. 오랫동안 굳어진 케이팝 문법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러한 결과물을 위해 민희진은 음악 레이블 비스츠앤네이티브스(Beasts And Natives Alike, BANA)와 협업했고, 강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멜로디를 뽑아냈다.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해 친근함을 배가시키면서도 상투적이지 않은 사운드 메이킹을 하는 데 공을 들였을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소속사, 스타일, 안무, 외모, 제작자, 캐릭터의 힘을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힘은 음악에서 나온다. 어떤 뮤지션도 음악으로 보여주고 설득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데뷔 음반의 수록곡 네 곡 가운데 ‘Attention’, ‘Hype boy’, ‘Cookie’를 모두 타이틀곡으로 내세우는 방식 또한 과감했다.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을 뿐아니라, 싱글 중심의 소비패턴에 영합하지 않은 차별성이다.

기존 걸그룹에 비해 낮은 연령대도 화제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뉴진스가 내놓은 뮤직비디오, MD, 음반 등 모든 결과물의 비주얼에서 복고적인 감각을 세련되게 표현하면서 트렌드를 반영하고 다양한 세대의 감각과 욕망을 포섭했다는 점도 인기에 크게 기여했음을 모두가 안다. 이밖에도 더 많은 분석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분석은 뉴진스가 성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사후적 해석이다. 만약 뉴진스가 인기를 끌지 못했다면 어떤 평가도 성립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뉴진스의 인기만큼 중요한 것은 뉴진스를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부분에 열광하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어떤 곡과 스타일을 갈망하는지, 어느 지역의 무슨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반응하는지,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제작 방식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로 뉴진스만큼 독보적 인 사례는 2023년 현재 전무하다. 유행은 대중의 욕망과 무의식까지 드러낸다. 뉴진스가 바꾼 흐름, 뉴진스에게 들키고 길들여진 욕망과 무의식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멀리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맛있는 빵과 디저트를 사랑한다. 음악의 아름다움이 구현되는 방식과 사회적 역할에 특히 관심이 많다.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스스로 놀라는 글을 쓰고 싶어 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 블로그에 가면 어떤 음악을 들으며 사는지 엿볼 수 있다. 쓴 책으로는 <<그렇다고 멈출 수 없다>>, <<음악열애>>, <<누군가에게는 가장 좋은 음악>>, <<음악편애-음악을 편 들다>>, <<밥 딜런, 똑같은 노래는 부르지 않아>>가 있고, <<대중음악의 이해>>, <<대중음악 히치하이킹하기>>, <<인간 신해철과 넥스트시티>> 등을 함께 썼다.

글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