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한 발짝 두 발짝

목적지를 향해 걷는 건 나의 오늘을 다부지고 씩씩하게 가꾼다. 정확한 이정표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나침반, 그리고 정교한 지도가 있다면 그 어떤 탐험꾼도 부럽지 않을 테다. 그러나 가끔은 긴장을 풀고 발길 닿는 대로 하염없이 걷고 싶은 날이 있다. 지나는 길목에 들꽃이 보이면 주저앉아 인사를 건네고, 묵직한 원두 향이 풍겨 오면 코끝을 따라 살금살금 나아가고, 가끔은 지나는 강아지랑 눈을 맞추고, 골목길의 고양이랑 교감도 하고. 이토록 평화로운 시간이 오늘따라 왜 이리도 다디달까.

든든한 한 걸음
포시즌키친

ⓒ 포시즌키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목적이 있어도 밥부터 먹고 보자는데, 목적 없는 걸음이라면 더욱더 단단히 준비해야 할 터! 오늘은 꾸덕꾸덕한 질감의 양식이 먹고 싶어 포시즌키친으로 향한다. 파스타, 리소토, 촙스테이크, 감바스…. 브런치라는 단어 아래 나열된 이국의 메뉴가 배 속을 살금살금 간지럽히고, 군침을 몇 번삼키며 고심 끝에 메뉴를 고른다. 이토록 부드럽고 따뜻한 음식이라면 화성에서도 세계 여행을 한 듯한 기분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묵직한 소스로 휘감긴 정성스러운 한 그릇이 내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니 잔뜩 굳어 있던 어깨가 풀리고 마음에 온기도 살살 돌아오는 느낌이다. 올겨울 추위도 두렵지 않을 것 같은 이 맛, 이토록 든든한 한 끼가 정처 없는 걸음에 고마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A. 경기도 화성시 동탄치동천로3길 12
O. 월~토 11:00~22:00(라스트 오더 20:30), 일 휴무

아름다운 두 걸음
구름꽃플라워

ⓒ 구름꽃플라워

오늘의 목적 없는 마지막 걸음은 마음을 아리땁게 가꾸어주는 꽃집이다. 평범한 꽃집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생화의 오롯함을 꺼내어 보여주는 꽃집. 구름꽃플라워에서는 특별한 날을 더욱 정성스레 가꿔주는 손길이 보태진다. 이를테면 생화 돌상 같은 것들. 아이의 첫 생일이 활짝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의 첫 생일이 더욱 향기롭길 바라는 마음으로 색색깔의 식물을 돌상에 올려 반짝이게 만들어주는 일. 그런 마음과 손길이 깃들어서일까, 이곳에서 피어나는 향기는 보통의 꽃 향기보다 훨씬 다채롭고 은은하다. 마음에 깃든 향기를 맡으며 돌아가는 길은 더없이 사랑스럽다. 화성시 곳곳을 누비며 정처 없이 거닌 오늘의 여정을 ‘아름답다’는 말 말고 또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품에 꼭 안고 돌아온 한 다발의 꽃은 맑은 화병에 꽂고 살펴줘야지.

A. 경기도 화성시 지산2길 33-8 우리빌 1층
O. 화~일 10:30~20:00, 월 휴무

향긋한 세 걸음
일리에 콩브레

ⓒ 일리에 콩브레

고풍스러운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 창문은 둥근 아치형이다. 유럽 어딘가를 상상하게 하는 멋스러운 이곳의 이름은 ‘일리에 콩브레’.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마을과 동명인 이곳은 고고한 외관이 시선을 사로잡고, 버터 내음이 코끝을 간지 럽혀 뭔가에 홀린 듯 사뿐사뿐 들어오게 만드는 곳이다. 원래 목적은 향긋한 커피로 입가심을 해보자는 거였지만, 베이커리의 면면이 심상치 않아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한동안 매대 앞을 서성이며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니 여기가 바로 제과기능장의 국가 대표 빵집이란다. 어쩐지, 빵들의 자태가 보통이 아니더라니! 갓 구워진 노릇노릇한 빵들 앞에서 어떤 걸 고를까 고민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관찰하며 빵을 한 입 베어 문다. 거짓말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유럽의 풍경에 마음이 들썩! 작은 마을에 지금 막 입장한 수줍은 여행자처럼 설레는 걸음을 한 발 내디뎌본다.

A. 경기도 화성시 풀무골로 19-4
O. 매일 09:00~22:00

산뜻한 네 걸음
청계중앙공원

ⓒ 화성시

문득 자연을 본 지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곧 의아해졌다. 집 앞 슈퍼마켓에만 가도 지척에 보이는 게 풀이며, 흙이며, 하늘이며, 나무인데 왜 자연과 멀리 살았다며 자조한 걸까. 아쉬운생각을 지우기 위해 오늘은 공원으로 향한다. 동탄의 푸른 숲, 청계중앙공원엔 잘 지어진 정자도 있고, 타박타박 걷기 좋은 나무 계단도 있고, 둘러보면 곳곳에 산뜻한 나무도 많다. 숲 사이를, 길 한가운데를 걷다 보니 이대로 하염없이 자연을 걷고만 싶어진다. 주변을 살피니 정다운 연인, 다정한 가족, 해맑은 아이들이 공원 곳곳을 채우고 있어 마음이 풍요롭다. 이 평화를 끌어안고 모처럼 찾아온 여유를 두 손에 고이 담는 일.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 중 가장 상쾌하고 깨끗한 일이 아닐까!

A. 경기도 화성시 청계동 527

글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