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 버그돌의 문화도시 투어

도시를 걷고, 공간을 읽다

 

배리 버그돌은 전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건축·디자인 수석 큐레이터다.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 건축상’ 심사위원이라는 타이틀은 그가 건축계에 미치는 영향을 짐작하게 한다. 도시의 변화는 주변의 환경, 사람과 어우러져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그가 화성시의 곳곳을 걸으며 건축과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건축은 삶의 질을 높여주고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해요. 우리의 삶에 무수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건축이죠.”

 

베리 버그돌

Barry Bergdoll

화성시에는 처음 방문하셨어요. 아침부터 꽤 바쁜 일정이었는데, 화성시의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완벽한 하루였어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모든 사람이 세심하고 친절해요.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장소에 방문하는 일은 언제나 기분 좋아요. 특히 화성시처럼 잘 정돈된 도시를 만나는 일은 더욱더 그렇죠. 사실 화성시의 지도를 처음 보았을 때 정말 놀랐어요.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큰 도시더라고요. 오늘 화성시의 여러 곳을 돌아보았지만, 이 도시가 어떤 형태를 가졌는지, 어디가 도시의 중심인지도 짐작하기 힘들었어요.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더 많은 곳을 돌아보고 싶어요.

그중에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장소가 있나요?

마리오 보타Mario Bota의 대성당이 있는 남양성모성지요! 그곳의 풍경은 정말 놀라웠어요. 주변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는 마리오 보타의 작품도 인상적이었지만 병인박해라는 역사를 배경으로 한 건축 스토리가 감동적이었어요. 같이 갔던 관계자가 ‘통일을 이루지 못한 남한과 북한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는 해석을 들려주었어요. 마리오 보타의 작품인 솟아있는 두 개의 탑이 성지의 한가운데에 있어요.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보이죠. 그래서 성지를 돌아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각각 다른 기억을 남긴다는 신부님 말씀이 기억나네요. 또 로얄앤컴퍼니 공장도 흥미로웠어요. 사실 일정표에 대성당에서 공장으로 이어지는 걸 보고 두 장소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아했거든요. 방문하고 나니 이 공간들이 단순히 하나의 목적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두 장소 모두 많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 될 수 있는 곳이었어요. 남양성모성지와 대성당은 가톨릭 신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에요.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는 광장을 가지고 있고 매력적인 풍경이 있거든요. 로얄앤컴퍼니 역시 욕실용품을 생산하는 장소이자 대중이 문화적인 체험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공간이에요. 사람과 예술, 문화의 만남을 통해 더 가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회사의 이념으로 생산하는 제품의 질을 더 높이고, 도시를 연결하는 활동을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로얄앤컴퍼니와 화성시문화재단이 협업해 공장의 공간 일부를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메이커스 스페이스’, ‘커뮤니티 공간’, ‘갤러리’ 등으로 활용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이 찾는 공간이 되기 위한 조언을 부탁드려요.

지금도 공장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아름답고 쾌적한 환경이에요. 여기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은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니까요(웃음). 공간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이미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계실 거예요. 거기에다 좀더 보탠다면, 좋은 날씨를 즐길 수 있는 야외 설치 전시를 추천하고 싶어요. 그리고 주말에 방문한 주민들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이곳에도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어요. 신진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작가와 함께 야외에서 설치미술 작업을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젊은 작가들의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예술가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거예요.


이렇게 운영 중인 공장의 일부를 문화 공간으로 활용한 사례가 있나요?

독일 외곽 도시에 유명한 가구 회사 ‘비트라Vitra’의 공장이 있어요. 갤러리와 함께 운영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곳이죠. 이곳에서는 다양한 전시를 기획해서 진행하고 있으며 공장에서 제작하고 있는 제품을 전시하며 회사의 정체성을 표현하기도 해요. 또 비트라의 공장 내에는 유명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작품도 있어 더 많은 사람이 모여요. 이렇게 제조 공장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사람들을 위한 문화 공간을 만든 성공적인 예시를 종종 찾아볼 수 있어요. 로얄앤컴퍼니에 생겨날 문화 공간 역시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화성시의 중심 지역은 여느 대도시와 다름없이 높은 건물로 가득차 있는데, 오늘 둘러보신 곳들은 아직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지 않았어요. 이곳도 앞으로 점점 개발될 텐데 환경과 어우러져 변화하는 도시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우선 오늘 방문한 화성시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멋진 도시였어요. 그런 환경을 보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죠. 도시 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그에 따른 정책, 법률 등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런 계획이나 제한에는 단순히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 생태학적 부분 등을 고려하여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 때 그것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영광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오늘의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정말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이곳에서 만난 분들과 건축이 얼마나 삶의 질을 높여 주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관계를 이어 주는지, 우리의 삶에 무수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건축이 도시의 발전과 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글·사진 신혜진(기획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