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최유희
무질서하게 사방으로 뻗은 들풀, 고개를 한껏 쳐들어야 두 눈으로 담을 수 있는 타워 크레인. 우리가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자연과 인위의 경계에 선 최유희는 찰나의 순간을 관조한다. 예민한 기질로 잡아챈 생경한 풍경은 영감의 원천이 되어 창작자를 생동하게 했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무수한 이미지들은 캔버스에 안착해 작품으로 태어났다. 눈을 뜬 채 꿈을 꾼 시간이었다.
두 눈은 맑게 반짝였고 미소는 티끌 없이 화사했다. 재고 따짐 없이 모든 것을 에워 감싸는 들풀처럼 최유희는 수수하게 다가왔다. 손톱에는 미처 씻어내지 못한 초록색 물감이 제자리인 마냥 머물고 있었다. 그는 불안이 내면을 짓누를 땐 그림으로 버텨냈다. 그게 시작이었다. 붓을 들면 다른 세상에 서있었고 행복했다. 자유를 갈구하며 화면(畵面)에 들어가 켜켜이 쌓은 세계와 때때로 변하는 감정을 담으며 몰입했다.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을 때 비로소 작가의 길을 걷겠노라 마음먹었다.
“왜 미술을 선택했는지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주체로서 화면 안에 들어가 그리는 행위 자체가 저에게 치유였죠.”
한동안 작업을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육아와 생업에 바쁜 나날이었다. 하지만 온전한 자신을 찾기 위해 다시 붓을 들었다. 잠 잘 시간도 없이 바쁠 때 되려 진득하게 그림을 그렸다. 그는 욕망과 본성을 숨김과 드러냄으로 양가성을 조명한다. 혀와 입술, 가슴 등 인간의 욕망이 스며있는 형체는 끝없이 증식하며 저마다 무수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상상은 수용자의 몫이다.
“보이는 대로 이미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림을 그릴 때 어디까지 숨기고 드러내야 하는지 많이 고민하죠. 그림은 개인의 경험치만큼 그림이 읽히고 보인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그렇게 느꼈거든요. 스무 살에 천경자 화백의 작품을 전시장에서 봤을 땐 이 작품이 왜 유명할까 생각했어요. 10여 년 후에 다시 보니 저도 모르게 깊이 공감이 돼서 눈물을 흘렸어요.”
그의 작품은 표면이 매끈하다. 프린터로 인쇄한 것인지 의문까지 들었다. 그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유쾌하게 다채로운 색감으로 나타내려 한 것이다.
“관람객이 긴가민가한 느낌을 받았으면 했어요. 확실히 드러내지 않았고, 숨기지도 않아요. 숨바꼭질하듯 얇은 커튼이 쳐져 있는 느낌이죠. 물음표처럼요. 내가 보는 게 혀인지,꽃잎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어요. 인물의 표정도 감추죠. 드러나면 한정적으로 생각이 읽히거든요.”
서울 태생인 최유희는 그의 말마따나 떠돌이 생활을 하다 2019년 화성에 터를 잡았다. 거주 목적으로 왔지만 예술가의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은 기회의 땅이었다. 화성시문화재단의 문을 두드렸고 심사를 통해 역량을 인정 받았다. 2022년 이어 올해도 화성예술활동지원 공모에 선정된 그는 요즘 신도시가 개발되는 풍경을 관조한다. 깨끗한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 높은 곳에서 살고싶은 욕심, 신이 된 것처럼 구는 인간들. 모두 욕망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허허벌판에 타워 크레인이 박혀 신처럼 아래를 내려다보고 철옹성처럼 펜스가 서있어요. 모든 요소는 인간이 설계한 것이죠. 자연 풍경까지도요. 그 느낌이 생경하고 이질적으로 다가오지만 어느 순간 익숙해지잖아요. 차가운 철제 에도 어느 순간 들풀이 휘감겨 있죠. 그런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오는 10월 18~24일 화성 궁평아트뮤지엄 아카이브에서 선보일 개인전 주제는 ‘EVERY DAY EVERY MOMENT(모든 날 모든 순간)’이다. 일기처럼 작가의 삶과 일상을 담아낼 것이다. 제일 자신 있게 선보일 수 있고 진솔하게 이야기 할 수 있어서다. 누군가 그림을 보고 다른 시선으로 생각하거나, 위안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최근에는 100~120호 크기의 대형 작업을 하고 있다. 작년에 작업한 10호 작품들은 하나의 개체에 스토리를 만들어 그리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개체들을 화면 속에서 뒤엉켜 놓을 생각이다. 그야말로 욕망 덩어리의 집합체다.
작업실은 화성시 영천동에 있다. 한 공간을 둘로 쪼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 간으로 활용하고 맞은 편에는 이젤을 세워 그림을 그린다. 갤러리 아트셀시 전 속 작가로 서울에서 활동하던 그는 화성을 기회의 땅으로 여겼다. 문화재단의 기획과 아이디어를 높게 평가했으며 화성예술활동 지원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지원사업 자체가 예술가에게는 축복이죠. 그림 그리고 전시를 준비하며 재료비, 갤러리 대관료, 도록비, 촬영비, 운송비 등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거든요. 재단의 지원과 관심은 작가로서 정지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화성시는 영감을 준 도시이기도 하고요.”
최유희는 우리가 지나치는 것들의 소중함을 그린다. 들풀 하나의 존재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을 느끼며 늘 그랬듯 계산하지 않고 지금의 감정에 충실할 것이다. 타인의 아픔에 기꺼이 눈물 흘리고 기쁨에 활짝 미소 지을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을 이기려 하지 않고 현재를 느끼며 묵묵히 걸어나갈 것이다.
확실히 드러내지 않았고,
숨기지도 않아요.내가 보는 게 혀인지,
꽃잎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어요.
개인전
2021 , 갤러리아트셀시, 서울
2020 <What’s important?>, 갤러리아트셀시, 서울
2019 , 갤러리아트셀시, 서울
2017 , 사이아트스페이스, 서울
2011 Human by Hideholic(우덕기획초대전), 갤러리우덕, 서울
2010 Hideholic(관훈기획초대전), 관훈갤러리, 서울
2008 Hideholic, 가나아트스페이스, 서울
단체전
2022 , 메리다 비주얼 아트센터, 멕시코
2022 , 신세계 Art&Science, 대전
2021 , 유나이티드갤러리, 서울
글 배미진
사진 김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