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 황계동
황계동은 질그릇을 파는 가게가 있어 점촌店村 또는 점말로 불리기도 했다. 고려시대에 유제처楡梯處가 있었으므로 느릅재, 유제처 또는 황계동이라고 불렀다. 《화성마을 땅이름의 뿌리》에 따르면 황계는 늘어진 고개의 지형으로 우리말 ‘느릅재’로 불렸던 것이 한자로 옮겨지며 황계동이 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일설에는 마을 중앙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물이 있었는데 이 우물에서 누런 닭이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황계동은 도시와 농촌성을 공유하고 있는 혼재된 모습을 보인다. 황계동 서쪽은 128.5m 성황산으로부터 뻗어내린 약 80~90m 내외의 산으로 남쪽은 구릉으로 둘러싸고 있다. 동쪽으로 황구지천이 흘러가고 이를 중심으로 평야가 펼쳐진다. 북쪽으로는 수원비행장으로 단절돼 있으며 마을 곳곳에는 돈사로 쓰인 폐축사들이 남아있다. 주민들은 철에 따라 해바라기, 유채꽃, 코스모스를 심어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발전을 꾀하고 있다. 청명한 하늘 아래 가을 코스모스가 아름답게 피어난 마을 초입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화원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마을 주변이 수원군공항에 속한 군사시설보호 구역을 포함하고 있다.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과 함께 수원군비행장이 지금 위치에 들어섰다. 초기에는 장지동 일원으로 한정되었고, 이후 황계동까지 확장되었다. 황계동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비행기 소음을 듣고 자랐다. 일부 주민들은 비행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2021년 6월 정조대왕 능행차로를 준공했다. 능행차로는 창덕궁에서 수원화성을 거쳐 화성 융건릉까지 가는 길이다. 왕의 행차라는 역사적 의미와 효(孝)라는 문화가 스며있는 하나뿐인 길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있는 융릉으로 13차례 행차했는데 매번 황계동에 들러 쉬곤 했다. 마을의 옛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2019년 10월 제1회 정조대왕 성황대제를 부활시켰다.
본래 인근 촌민들이 매년 정조대왕의 공덕을 기리고, 나라와 백성의 복을 염원하는 성황제를 전승했다. 마을이 품어온 역사만큼 소중한 보물을 간직한 황계동에서 주민들은 따뜻한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 참고문헌 《정조마을, 황계동》, 《화성시 황계마을의 어제와 오늘》, 《화산동지》
글 편집실
사진 박김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