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양면성, 형도

이부강 작가

송산면 독지리 끝에 위치한 형도는 원래 넓은 바다를 마당으로 둔 작은 섬이다. 학교가 있었고 교회와 요양원도 있던 곳에 이제는 사람들이 떠나서 모두 비었다. 오가지 못하는 배들이 버려져 있다. 형도는 어떤 방식으로 말할까. 적막함이 여러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걸어서

들어가는 섬

형도에 입장하려면 지나야 하는 2킬로미터가량의 비포장도로는 군데군데 구덩이가 파여 있어 자동차로 좀처럼 속도를 낼 수 없는 길이었다. 원래 바다가 있어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던 섬에 시화호 개발이 시작되면서 이 길이 생긴 모양이다. 이제는 아무도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형도 중앙에 140미터가량 솟아 있던 계명산을 일부 부숴서 바다를 막아 시화호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생각해 보면 제 몸의 조각으로 섬을 가두는 모습을 지켜본 셈이다. 인간이었다면 무척이나 괴로웠을 것이다. 형도의 첫인상은 시끄러운, 그런 고통의 소리였다.
섬에 닿자 마을이 보였다. 누군가 살던 집들은 이제 폐허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 염소와 오리, 강아지들에게 먹이를 주는지 내가 차에서 내리자 우르르 달려왔다가 다시 도망가 버렸다. 혼자 깊숙이 들어가 보기가 꺼려지던 섬의 어두운 풍경이 동물들 덕분에 한껏 밝아졌다. 한쪽 길은 막혀 있고 다른 쪽 길은 섬 반대편까지만 이어져 있었다. 서로 엉켜서 자라는 풀들, 부수다 만 바위들, 흙먼지가 날리며 조금은 어수선해 보였지만 사람들의 흔적이 없어서인지 나름 그곳만의 평온함이 있었다. 재개발이 확정됐다는 표식으로 건물들 곳곳에는 파란 원이 그려져 있었지만, 누군가는 아직 살고 있고 또 이 헛헛한 모습 자체를 보려고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어떤 이에게는 떠나야 하는 장소가 다른 어떤 이에게는 찾아가 볼 만한 장소가 된다. 형도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 섬이었다.

움직이는 풍경

이부강 작가를 통해 이 섬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2015년부터 형도를 오가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철거되는 지역을 방문해 폐허에 남겨진 베니어합판들을 뜯어 와 작업 소재로 삼는 작가. 사라져 가는 풍경을 재구성하기 위해 고른 물감이 바로 오래된 합판들이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생활 속에서는 구조를 이루고 있으니 매 순간 인식하며 살기 어렵지만, 벽과 문, 가구로 사용되었을 합판들에는 시간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을 것이다. 작가의 고민스러웠을 소재 선택을 상상해 보는 것이 그의 작품으로 들어가 보는 일을 수월하게 해준다. ‘무빙 랜드스케이프Moving landscape.’ 그가 작업들에 붙인 이름에서도 눈에 보이는 풍경을 인식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형도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니 작가가 왜 이 섬을 마음에 두는지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제 작업은 흔적으로부터 시작돼요. 그것은 작가의 내밀한 개인 소사이기도 하거니와 동질의 의식을 함유하는 공동체의 서사이기도 하죠.”
그는 사라져 가는 공간의 작은 흔적에서 시작해 개인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을 기억 한 부분으로 향한다. 폐허에서 찾은 파편들을 회화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그런 힘이 태어날 것을 기대한다. ‘공동의 기억’은 실재하지 않을 수 있지만, 예술 작품을 보며 모두가 각자 가지고 있을 지난 기억들로 되감기해볼 수있다면, 그 역할은 중요하지 않을까. 작가는 형도에서 구한 재료들로 그리겠지만, 파편들은 형도를 넘어 모든 사라진 장소를 가리킨다. 화성에서 특별하게 생각하는 장소에 관해 물었을 때, 그는 버려진 형도에 가서 스러진 풍경 그 자체를 보라고 말했다. 채석장의 몰골과 식물들로 뒤덮여 버린 건물들, 끊어진 길. 그 역시 그저 그런 것들을 보러 형도를 찾는다고. 한 시간 남짓 섬을 돌아다니자 어지러운 풍경들은 어느새 익숙해지고 있었다.

폐허의 시간

한 시간 만에 무뎌진 것은 과연 무엇일까. 문득 망가짐 자체가 주는 단순한, 하지만 마주하기 괴로운 아름다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막한 폐허에서는 괴로움의 소리가 들리지만 계속 보다 보면 금세 무뎌진다. 무뎌지기 전 잠깐 동안 폐허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이런 존재들입니다.” 인간은 그러려고 존재하는 것처럼 무엇이든 파괴한다. 본성이 그렇다고 해도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폐허 앞에서 내가 느낀 불쾌함과 공포 같은 것들은 아마 외부에 있던 게 아니라 내 안에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인간이고 살아가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모하고 버릴 테니까. 폐허는 곧 나의 지나온 길, 앞으로 나아갈 길일 수도 있다. 돌아서거나 닦아도 잘 지워지지 않는 상을 남기고서 폐허는 또 새롭게 가꿔지거나 혹은 아예 사라져 버릴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자연스럽게 우리 삶과 본질이 담긴다면, 그게 가장 잘 드러나는 시기가 바로 폐허의 시간이 아닐까. 형도가 앞으로 송산그린시티로 거듭나듯, 수많은 폐허는 또다시 새로운 공간이 될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계속 만들고 가꾸는 존재들이니까. 화장을 하듯 두텁게 덮어버리면 우리는 또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형도에 막 도착할 무렵에 나처럼 외부인 같아 보이는 사람들을 몇몇 마주쳤다. 그들은 왜 여기에 왔을까,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곳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형도를 빠져나갈 땐 그들과 나에 관해서 생각해 보고 있었다. 다녀간 사람들 중 일부는 무분별한 도시계획을 탓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낯선 풍경을 산책하는 기쁨을 누리다 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형도에 처음 와본 사람인데도 자신이 망가트리는 데 일조했다는 기분을 느끼며 돌아가는 이도 있었을까? 형도는 예술 작품처럼, 그 앞에 선 사람들은 다들 좀처럼 말이 없었다.

이부강 작가

경기대학교, 홍익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였다. 7번의 개인전과 6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버려진 동네의 건물에 붙어 있던 베니어합판이 작품의 소재가 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벗겨진 낡은 파편들은 제각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작가는 그 다양한 형태에서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