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제도에서

장애인예술의 다음을 보다

지난 9월, ‘제1차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 기본계획’이 발표됐다. 장애예술인의 문화예술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 기회를 통해 어떻게 하면 장애예술인 자체의 힘을 길러낼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과 스크린쿼터제

지난 9월 7일 장애예술인지원 3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9월 8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제1차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 기본계획(2022~2026)’을 발표했다. 주요한 내용을 보면 ‘장애예술인 창작 지원 강화’, ‘지원정책 기반 조성’, ‘예술 활동 지원 전문인력 교육지원’ 등 주로 장애예술인의 작품 활동에 대한 직접적 지원이나 기회 제공 측면이 강하다. 이런 지원 의지의 하나로 청와대 첫 전시의 기회 또한 장애예술인에게 주어졌다.

이와 같은 소식을 접했을 때 필자의 머릿속에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을 휩쓸었던 한국 영화 스크린쿼터제 이슈가 오버랩됐다. 논란 당시에는 스크린쿼터제도가 있어야만 상대적으로 열악한 제작환경의 한국 영화가 경쟁력을 유지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스크린쿼터제가 질 낮은 영화를 양산하고 한국 영화의 체력을 키우지 못하게 하는 나쁜 제도라고 주장하는 이가 공존했다. 돌아보면 한국 영화가 지금 같이 글로벌한 위상을 가지 기 전 할리우드 영화가 넘쳐나던 그 시기에 그나마 한국 영화계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해서 지금 좋은 한국 영화를 만들어 내는 것에 토대가 됐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장애예술인의 문화예술 활동 지원과 관련한 제도와 법률이 영화 상영 비율을 규제하는 스크린쿼터제와 직접 비교할 문제는 아니지만, 이것을 통해 장애예술인들이 어떻게 일련의 법과 제도를 활용해 장애예술인 자체의 힘을 길러나갈지 참고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예술인의 경쟁력을 키울 때

필자가 활동하는 비영리법인, 사단법인 오늘은 설립 이후 수년간 장애 청년과 함께 문화예술작품 활동은 물론 장애청년 대상의 각종 문화예술 향유 사업을 진행했다. 또한 문화예술 재능을 가진 청년에게 양질의 문화예술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한 노력도 했고 소기의 성과도 달성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장애’라는 타이틀을 빼고 나면 예술 자체의 경쟁력이 줄어든다는 점이었다. 물론 실력 있는 장애예술인들은 비장애예술인보다 훨씬 좋은 경쟁력을 가지기도 했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아직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 곳곳에서 장애인이 그린 그림, 장애인이 만든 물품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대중과 만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런 작품을 만났을 때 장애인으로서 만드는 과정에서 겪었을 어려움이 스쳐 가고 ‘정말 대단하다’,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문화예술이 정말 한 개인에게 그렇게 다가오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여느 전시장에서 수준 높은 예술작품을 보고 있자면 그 사람이 장애를 가졌는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인지에 관한 생각은 내 머릿속에 생기지 않는다. 그 작품이 주는 느낌만이 오롯이 내 속에 남는다.

장애예술인이 지원제도와 계획에 따라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해도 그 작품의 수준이 비장애인의 무엇과 비교 받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된다면, 어느 순간 굳이 장애인 전시라는 타이틀을 달지 않고도 당당하게 대중 속에 존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중이 자발적으로 찾는 예술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사회 속에 녹아들 것이며 그 순간 장애의 타이틀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고 당당한 예술인으로 ‘자립’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지금의 한국 영화를 떠올려보자. 이제 누가 좋은 ‘한국 영화’ 보고 왔다는 사람이 있나? 좋은 ‘영화’를 보고 왔다고 말할 뿐. 우리의 인식 속에 이제 내가 즐기는 영화를 구분하는 요소에 ‘한국’은 없다.

장애예술인의 성장을 위한
문화예술기획자들의 역할

다만 온전히 자립했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지금의 문제가 장애예술인 당사자의 탓은 아니다. 어찌 보면 상대적으로 부족한 기회와 작품 활동에 몇 배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회가 법과 제도를 통해 장애예술인의 작품 활동과 문화예술 향유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겠는가. 아직 부족한 것이 많고 가야 할 길이 많은 분야이지만, 언젠가 완벽해질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기보다 마치 한국 영화의 스크린쿼터제가 그랬던 것처럼 제도가 벌어준 시간과 기회를 이용해 장애예술인 당사자가 더 좋은 예술인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문화예술기획자들이 활약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필자와 같은 문화예술기획자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첫 번째로 가장 기초적이고 폭넓게 해야 할 노력은 장애가 있는 이들이 누구나 예술의 매력을 느끼고 그 창작활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문화예술 경험의 배리어(barrier)를 없애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일이다. 타고날 때부터 붓과 오선지를 물고 태어나는 경우는 없다. 성장 과정에서 문화예술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관심이 생기고 그에 따른 재능을 발견하고 그에 적합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을 때 비로소 좋은 문화예술 창작인이 길러질 수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문화예술 창작뿐 아니라 단순 향유 측면에서도 장애인이 공평한 기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물론 수년 전부터 문화예술계에서 배리어프리 콘텐츠와 인프라 형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점 또한 잘 알고 있다. 우리 문화기획자들은 내가 만드는 하나의 배리어프리 문화예술행사와 콘텐츠가 장애인들의 문화예술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는 가치 있는 일임을 인지하고 그것이 훌륭한 장애예술인을 만드는 초석이 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20여 년 전 스크린쿼터제가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대중과 한 번이라도 더 만나는 기회를 제공했을지도 모르고 그것이 20년 후에 아카데미상을 만들었을지도 모르지 않나? 필자부터 지금 하는 시각장애인 대상 문화예술 콘텐츠 ‘오디아’ 채널 속 배리어프리 콘텐츠를 잘 만들고 운영하는 것으로 이것에 이바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할 수 있는 노력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장애예술인만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보다 장애예술인들이 사회 속에 특별히 존재하지 않고 ‘그냥’ 존재하게끔 기획자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 한마디로 장애예술인-비장애예술인 구분이 없는 소셜믹스를 통해 장애인예술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하면 어떨까 싶고 그것은 장애예술인 당사자가 아닌 문화예술 기획자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공동체와 차별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데 꼭 장애인예술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소셜믹스는 그에 대한 좋은 해결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장애는 누군가의 인위적인 잘못이 아닌데 굳이 인위적으로 구분 짓는 형태로 그들의 차이를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문화예술이야말로 신체적 한계를 넘어서 평등하게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도구인데 말이다. 유니버셜디자인이 모든 사람의 디자인으로 불리며 장애의 유무에 상관없이 같은 환경을 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이것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서로의 차이를 지워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어렵다고 할지라도 지원법과 계획을 발판 삼아 장애예술인의 예술 활동이 더욱 활성화되면 서서히 예술의 영역에서 장애 여부가 구분되는 경우가 적어지지 않을까?

장애예술인의 더 멋진 미래를 위해

이 글을 통해 짧게나마 장애예술인지원법 개정안 통과 및 지원계획수립 시점에 문화예술기획자가 장애예술인 성장을 위해 생각해보아야 할 지점에 대해 한국 영화 성장의 중요한 버팀목이 된 스크린쿼터제를 빗대어 살펴보았다. 조금은 냉정하리만큼 지원정책 이후의 장애예술인 당사자의 자립과 문화예술기획자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지만, 주위의 장애예술인 당사자를 현장에서 직접 만나보면 정말 진심으로 문화예술 창작활동에 임하고 있고 그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문화예술단체 또한 차이가 차별을 만들지 않게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좋은 법과 지원계획, 열정 넘치는 장애예술인 당사자, 이들을 돕는 문화예술기획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한다면 사회 속에서 멋있는 장애예술인을 더 자주 많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강국현
문화예술을 통해 청년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비영리사단법인 <오늘은> 사무국장. 장애, 고립, 자립 준비 청년 등을 대상으로 문화예술의 기회와 경험에서 소외된 청년들에게 문화예술 경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글 강국현(사단법인 <오늘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