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길목마다 달리 보이는 풍경들

시민 에디터가 전하는 다채로운 화성 풍경

알록달록한 빛깔로 물든 계절, 사람들의 발걸음은 한껏 가벼워졌다. 거리는 만물의 이야기로 가득하고, 우리는 흘러가는 풍경을 부지런히 주워 담기 바쁘다. 생동하는 화성의 다채로운 모습을 시민의 시각으로 펼쳐본다.


5월에는 코스모스를 닮은 얼굴에, 색은 해바라기를 닮은 금계국이 피었다. 동탄 2신도시의 호반베르디움 아파트 앞에는 차들이 다니는 도로가 있고, 반대편 아래에는 보이지 않는 산책길이 있었다. 늘 위에 있는 길만 다녔기에 숨어있는 산책로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5월의 저녁, 마트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늘 다니던 길말고, 새로운 길로 가보자고 생각했다. 길을 건너기만 했을 뿐인데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도로 아래에는 긴 노랑 리본이 양쪽에 풀어져 있는 듯 꽃들이 늘어서 있었다. 초록의 얇은 줄기 끝에 진노랑색 꽃이 피어 있고 잎 가운데에는 초코볼이 콕 박혀 있었다. 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이는 모습이 스탠드 마이크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예쁜 장면을 혼자 본 게 아까워 아이와 함께 다시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줄곧 날이 흐려서 언제 가야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이대로 꽃이 질 것 같아 우산을 챙겨 나갔다. 올해 금계국을 못 보면 1년을 기다려야 했다.

세 시간, 네 시간 운전해서 가야 만나는 광양 매화마을이 아니라, 5분이면 꽃들을 만날 수 있다니…. 가까운 행복이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금계국 꽃축제에 입장했다. 날이 흐려서인지 그곳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꽃들이 바람에 움직였다. 발레리나 같았다. 한 송이의 꽃도 아름다운데 몇천 송이가 군집을 이루니 군무 같았다. 그 길은 지난 겨울 휑하고, 하천의 냄새까지 더해져 스산했던 곳이었다. 계절이 바뀌자 순식간에 노란 벽지를 바른 듯 환한 공간이 되다니, 자연의 변화에 감탄했다. 혼자 감상에 젖어 있는데 “으악” 하는 비명이 들려왔다. 9살 아이는 벌이 무섭다며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놀이공원 속 귀신의 집에 들어온 듯 어서 이 길에서 나가자고 했다.

“린아, 벌을 보지 말고 꽃을 봐.” “으악 벌이 물까봐 무서워. 벌밖에 안 보여.”

아이에게 벌은 뱀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가져간 우산이 검이라도 되는 듯 벌이 다가오지 못하게 휘저었다. 아이는 벌을 보느라 엄마의 감탄과 꽃들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장면을 즐기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이 속상했다. 산책로를 걸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벌 이야기만 하는 아이를 벌주고도 싶었다. 길 끝에 다다르자 아이가 홀가분한 미소를 지으며 드디어 끝났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그래. 아이는 자기가 꽃이겠다. 그래서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어. 인생 중반에 들어서야 보이는 것들을 청춘을 향해 달 려가는 아이에게 보라고 강요했구나.’

시간의 길목마다 보이는 풍경은 다르다. 나는 꽃을 보고, 아이는 벌을 본다. 꽃을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의 시간이 흐른다. 꽃을 못 본다고 아쉬워했지만, 아이는 벌을 세밀하게 보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 꽃은 한 가지만 파는 가게인가 봐. 벌이 마트에서 꿀만 사가.”


고하연

날마다 우리에게 도착하는 말들을 수집한다. 아이의 반짝이는 말을 모아 《아이의 말 선물》이라는 책을 쓰고 다양한 여성들의 성장을 담은 《#낫워킹맘》을 함께 썼다. 에세이를 쓰며 순간을 간직하고, 동시를 지으며 늘 쓰던 언어를 다시 만난다.

글 고하연(2023 《화분》 시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