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남, 김정기

경인고속도로

음악은 우리가 좋아하는 드라마와 영화뿐만 아니라 게임 속에서도 나온다. 장례식장 건물 안에서도 고요한 음악이 들리고, 돌을 맞은 아기를 축하하는 자리에서도 음악은 흐른다. 너무나 당연한 듯 공기 같은 음악들은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 서사의 모든 배경이 되어주었다. 멤버들의 고향이 서울과 인천이라는 이유로 어쿠스틱 듀오 ‘경인고속도로’가 탄생할 때 과연 어떤 음악이 배경이 되었을까?

2021 찾아가는공연장 선정 아티스트

록(ROCK)으로 무장된 포크 듀오

서울과 인천을 잇다

신용남 내가 인천이고 김정기(이하 친구)가 서울이라 서울과 인천을 잇는 고속도로를 밴드 이름으로 만들었어요. 2008년도부터 ‘글루미 서티스’라는 밴드를 하고 있었고, 친구는 ‘카멜라이즈’로 활동하는데 당시에는 서로 몰랐습니다. 이후에 인천의 ‘라이브클럽 락캠프’ 공연장에서 카멜라이즈가 먼저 공연을 하고 저도 오디션을 본 후 함께 공연을 하게 되었어요. 그때 밴드로서는 처음 두 팀이 만났고 동갑에 포지션도 같아서 호감이 생겼어요.

한국에서는 밴드 형태의 뮤지션들이 활동하기 어려운 구조이기도 하다. 대형 기획사들이 모두 중앙에 집중되어 있고, 관련 음악 시장 또한 지역 불균형이 심해 꿈에 부풀었던 뮤지션들은 각자의 생계를 찾아 떠나기도 한다. 점점 아이돌이 대세인 음악계에서 다시 밴드를 결성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배고프다는데…

김정기 2015년에 밴드의 명맥이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 해체했어요. 막상 혼자서 음악을 한다는 게 두렵기도 해서 신용남 친구와 저 모두 작사·작곡을 했던 터라, 어쿠스틱으로 둘이 공연을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바로 ‘경인고속도로’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결성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어요. 경인고속도로의 공연 횟수를 봤을 때는 역대 밴드에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했는데 둘이 잘 맞는다고 할 수 있겠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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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를 건너는 밴드의 자세

처음에는 둘이 하다가 홀로 서는 게 가능해지면 각자 서기로 했었다. 그런데 점점 새로운 레퍼토리가 생기다 보니 시너지 효과가 컸다고 하는데, 따로 또 같이 둘은 서로에게 충분한 배경이 되어서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서는 뮤지션들이 맞는 감염병 시대는 냉혹하기만 하다. 무대가 사라졌으니까.

신용남 매년 초는 우리들에게 보릿고개 기간입니다. 1-3월은 각 기관의 공모사업을 찾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공연들을 준비하는 기간인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공연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어 악기와 장비 정비, 음원 발매 준비도 하고 있어요. 올해 ‘경인고속도로’로 디지털 싱글을 발표합니다.

김정기 개인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청심(淸心)이라는 이름으로 트로트 앨범도 냈어요. 디지털 싱글은 인천평화창작가요제에서 창작곡으로 출전해 옴니버스 형식으로 음원화되긴 했는데, ‘경인고속도로’라는 이름으로는 첫 번째 싱글입니다.

경인고속도로는 공연 시 이동에 용이한 통기타로 공연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일렉트릭 기타를 사용하기도 한다. 다만, 밴드 이름에 두 사람의 음악 정체성이 잘 드러나지 않아 어쿠스틱 기타를 매고 공연을 하는 어쿠스틱 듀오라 명명을 했다. 보릿고개를 건너기 위해서는 밴드의 정체성을 대중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도 뮤지션들의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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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뜨거움을 기억하다

김정기 공연이 가장 많았을 때는 일 년에 100회 정도 노래를 했어요. 공연마다 출연료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우리를 탄생하게 한 ‘락캠프 공연장’ 같은 곳에서는 무료로도 공연을 합니다. 그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 좋아하는 뮤지션도 비슷했지만, 약속을 잘 지키려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뮤지션이라는 정체성도 있지만 사람에 대한 예의도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경인고속도로가 추구하는 음악은 ‘함께 즐기는 음악’이다. 공연을 갈 때 정해진 시간은 있지만 어떻게 하겠다는 공연 색깔을 규정하진 않는다. 공연장의 분위기와 사람들을 미리 만나볼 수 없으니, 현장에 가서 곡의 분위기를 만든다. 오랜 무대 경험이 현장을 알게 한 것일까, 혹은 관객을 대하는 두려움과 떨림일까?

신용남 두려움에 떨면서 시작했던 경험이기도 합니다. 눈치를 봤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 두려움이 이제는 자부심이 되었어요.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과 요구하는 것들을 빠르게 파악하고 들려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록으로 무장된 포크 듀오!

각자의 밴드를 할 때보다 훨씬 많은 공연을 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사업들을 개발하고 협업을 할 수 있는 범위도 커졌다. 다른 밴드를 할 때는 장비 때문에 움직임과 공간에 한계에 있는 반면, 둘이서 통기타를 매고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밴드가 가벼워지니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 건 아닐까?

낯설지만 새로운 행정과의 협업

신용남 2017년 하루 일과가 공연단체 모집 공고를 보는 것이었어요. 화성시문화재단의 <찾아가는 공연장-이하 ‘찾공’> 사업에 4년 연속 선정되어 지원을 받아 화성시 곳곳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찾공’은 화성시 서남부권, 신도시 등 문화 취약지역 또는 인구 조밀 지역 등지에서 전문 공연단체의 다양한 공연 제공하는 사업으로 올해도 5월부터 ‘찾아가는 공연장’ <지나가다, 가>를 시작합니다. 화성시문화재단과의 협업으로 뮤지션들에게 낯설던 공적 영역이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 주었고, 응원이라 생각하고 공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예술인들과 청년들에게 노동의 대가를 인정받기보다 재능기부를 요구받는 사회적 현상이 한동안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문화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이 높아짐에 따라 점점 예술가들의 임금체계가 공론화되고, 그 변화는 행정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이다. 그들이 계속 음악을 할 수 있어서. 우리가 계속 들을 수 있어서.

김정기 음악만 했던 사람들이라 서류작업이 쉽지 않았어요. 서류의 글들이 어렵고 ‘공연하는데 이런 게 왜 필요하지?’라는 생각도 했어요. 협업 과정에서 예술가들에게 문턱을 낮추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할 수 있는 배경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뮤지션들이 행정의 공적 기능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도록 말이죠. 관객을 만나는 다양한 방법을 찾은 우리가 운이 좋은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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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무대를 꿈꾸며

두 사람은 지역사회 발전에 문화의 역할을 높여야 한다는 같은 목소리를 냈다. 특히, “일회성에 그치는 공연과 행사들에 아쉬움이 컸었다”라고. 다만 감염병 시대에 일회성 무대조차도 없다는 것이 무척 아쉬운 일이지만,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무대에 서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2020년, 서울이 고향이었던 김정기 씨는 인천으로 이사를 왔다. 서로의 고향인 ‘서울-인천’을 밴드명으로 만들었는데, 이제 ‘인천-인천’이 되었다. 우리는 그들의 변화를 기다린다.

신용남 2019년에 경인고속도로라는 이름으로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무대에 서면서 그전 밴드와는 서보지 못하고 해체됐는데, 원하는 일은 느닷없이 이루어지기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죠. 때로는 너무 애달프지 않게 마음을 놓고서, 어느 날 느닷없이 경인고속도로의 음악을 기쁘게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최화정

사진 김영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