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 예술단 기획공연
콘서트 라운지Ⅱ : Cinema & Classic
글 화성시 예술단 관객평론단 백승권

인류가 만든 대다수는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 음악은 예외다. 인류 같은 하찮고 저급한 존재가 음악이라는 세계를 이렇게 확장시키다니. 개인과 집단, 역사와 문화, 감정과 기억, 감각과 몰입, 물리적 기술, 공예적 디자인을 집대성한 초월적 예술 장르를 이토록 접근성 높고도 거대한 규모로 키워내다니. 감상자이자 소비자라는 낮은 의자에 앉아서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이런 얼떨떨함은 새로운 시각과 청각을 틔우는 경이의 영역에 이른다. 6월 13일 19시에 막을 올린 화성시 예술단 기획공연, <콘서트 라운지Ⅱ : Cinema & Classic>의 이야기다.
울림이 가라앉을 틈이 없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왈츠’, 드뷔시의 달빛, 로시니의 오페라 ‘도둑까치’ 서곡, 해리포터 – 헤드위그 테마(작곡: 존 윌리엄스), 레 미제라블 셀렉션(작곡: 클로드-미셸 쇤베르크), 마녀 배달부 키키 – 바다가 보이는 마을(작곡: 히사이시 조), 포레스트 검프 Suite(작곡: 앨런 실베스트리), 인디애나 존스 – Raiders March(작곡: 존 윌리엄스), 기쿠지로의 여름 – Summer(작곡: 히사이시 조), 캐리비안의 해적 – He’s a Pirate(작곡: 클라우스 바덜트), 이웃집 토토로(작곡: 히사이시 조)까지 휘몰아친다. 동탄복합문화센터 야외공연장 120분 동안 1, 2, 3부에 걸친 공연 내내 턱을 괸 채 무대를 응시하며 가장 멀리 선 연주자부터 가장 크게 보이는 지휘자(예술감독&지휘: 임동국)까지 각막과 고막에 고이 넣어두었다.
혼연일체. 말은 쉽지만 야외공연에서는 아니다. 객석에 앉은 감상자로서 누리는 고요한 쾌감과 무대 위 퍼포머들의 입장은 완전한 융화의 지점에 이르기는 불가능하다. 추상의 영역일 뿐. 지휘자의 단상과 단원들 사이를 높이, 각도, 간격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가. 예술가와 예술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화학작용이 공연의 전부를 정의한다. 감상자는 눈빛과 집중으로 지그시 반응을 건넬 뿐이다. 반면에 연주자는 모든 것을 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조명이 켜지기 전부터 꺼진 후까지, 각자의 악기를 쥐기 위해 앉은 자세를 다듬고 각자의 악기를 들고 들어왔던 통로로 무대를 나갈 때까지, 긴장된 표정부터 짧은 웃음까지, 악보를 넘기는 모든 순간순간, 자신의 차례가 오기 전부터 다른 차례가 지나갈 때까지, 지휘자가 공연을 안내하고 곡을 소개하고 각 단원들을 소개하고 호응을 이끌어내고 마지막 단원이 나갈 때까지, 무대를 지키는 장면까지…. 연주자가 감상자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까. 하지만 관객들은 무대 위의 모든 공기와 먼지, 움직임과 불빛, 음영과 삐걱거림, 찰나와 눈썹의 씰룩거림까지 놓치지 않는다. 연주자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관객의 눈망울과 표정에 비친 자신을 보게 된다.


음악은 자립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과 인간은 함께한 시간을 통해 음악이라는 예술을 입체적 경험으로 쌓아 올린다. 연주자 이름을 모르고 지휘자의 이력을 모르며 악기 이름이 갑자기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익숙한 선율의 작곡가와 영화 장면이 흐릿해도 상관없다. 끝내고 싶지 않은 긴장감이 연주자들의 악기와 감상자들의 눈빛 사이를 가득 채운다. 눈을 감지 않아도 콘크리트 무대와 수풀 사이의 모든 구성원들은 다시 반복되지 않을 역사의 일부가 된다. 시간이 지나 잊히더라도 느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것들은 다음 역사가 될 것이다.

어둑해진 밤공기와 아랑곳하지 않는 조명 사이 지휘자와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움직임이 한 폭의 풍랑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거대한 물결처럼 뒤덮으며 몸을 적시는 선율들에 심취하다 보니 일상에 묶인 다른 생각들이 잠시 침투하기도 했다. 희석되고 표백되고 싶어서. 피로한 에피소드와 감정들이 저마다 얼룩진 팔다리를 내밀었다. 공연 초반부터 토드 필드 감독,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영화 <TAR 타르>를 떠올렸다. 명성과 심연, 범죄와 추락의 이미지들이 망막에 겹쳤다. 오늘 공연엔 없었지만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Adagietto)까지도. 경쾌했던 중반을 지나 후반부 이웃집 토토로에 이르렀을 때 착하게 살고 싶어졌다. 캐리비안의 해적 OST를 들으며 ‘그래, 이게 내가 원했던 인생의 판화 같은 선율이지…’ 하다가도 미야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의 그물 같은 영향력에 잠시 사로잡혀 있었다.
하나의 픽셀, 음표, 또는 보면대 같은 삶.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개인 퍼포먼스 중 인상 깊은 장면은 큰북이었다. 치는 장면이 아닌 치고 난 후 울림을 제어하기 위해 큰북의 뒷면을 잡던 장면. 자기 역할을 마치고 다른 악기의 등장에 자리를 내어주는 모습, 암묵적으로 합의된 배려, 영원히 울리는 소리는 없지만 멈출 줄 아는 소리는 곡 전체를 완전히 채운다. 크고 작은 모든 액션에는 정밀한 계산과 숭고한 제어가 깃들어 있었다.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크며 과정이 모두 끝나도 세부가 남긴 감촉은 각인된다. 하프,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 플루트, 오보에, 트럼펫, 바순, 호른, 피아노, 심벌즈, 비브라폰, 비올라 그리고 큰북까지. 밤공기와 빛 사이에 엄정하게 세공된 보석처럼 박힌 선율들, 가장 개인적인 여름밤으로 기억될 것이다.
<화분> Vol.71
에디터 화성시 예술단 관객평론단 백승권
포토그래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