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가지는 예술교육의 세계관과 그 가능성

글 최지영

연극이 가지는 예술교육의 세계관과 그 가능성

 

‘연극’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무대, 화려한 조명과 음악소리, 배우들의 열띤 연기, 티켓, 극장 ……..

 

그동안 많은 연수나 강의에서 만나 분들의 반응을 종합해 보면, ‘연극’이라 하면 극장에서 무대에서 올려지는 공연을 구경하는 것, 그래서 연극은 매우 전문적이고, 감히 나로서는 다가가기 힘든 영역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연극을 한다고 하면, 시킬까 봐 무섭다는 반응도 많이 나온다.

그런데 한번 되짚어보면, 우리의 삶에서 한 번쯤은 연극을 경험해 보지 않았을까? 유치원의 재롱잔치, 초등학교 시절의 학예회, 교회나 수많은 기관에서의 문학의 밤 등의 추억, 혹은 요즈음의 세대들은 학교로 찾아온 예술강사들과의 수업들 등에서 말이다.

 

이러한 경험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는 것 같다. 호의적인 반응은 생생한 체험에 대한 희열과 성취감인데, 이 감정을 풀어 말해보자면, 혼자면 못했을 텐데 함께 할 수 있었다는 뿌듯함, 나에 대해 생각지도 못했던 발견, 눈앞에서 생생하게 표현되는 연기에 대한 매력, 뭔가에 푹 빠져 보는 즐거움 등이다. 반면에 부정적인 반응들은 힘들게 대사를 외워야 했다, 발표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도하시는 선생님이 너무 강압적이어서 싫었다 등의 의견들이다. 이러한 반응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극’이 가지는 예술교육의 가치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연극’이 주는 가치, 특히 ‘연극’이 가지는 교육으로서의 힘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습이라는 방식보다는 직접 체험하면서 느끼는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생성되는 희열이지 않을까? 물론 멋진 연기나 공연을 보면서 느끼는 감동도 크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직접 체험하면서 느끼게 되는 즐거움의 확신, 그 확신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발견이 가장 크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개념을 교과서적으로 풀어 이야기하면 바로 그 ‘현장감’이 본질이지 싶다. ‘현장감’이란 ‘지금, 바로 여기’를 체험하는 것이다.

 

“연극(theatre)은 사람들이 다른 시간대와 공간에서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상상하고 행동할 때 공유되는 직접 경험이다. 이러한 정의는 모든 형태의 창의적이고 모방적인 행동을 포괄한다. 연극은 어린이들의 자유롭고 즉각적인 놀이에서부터 관객을 위해 배우들이 상연하는 형식적인 극 경험을 모두 포괄한다.”(2013, Jonothan Neelands & Tony Goode)

 

위에서의 정의와 같이, ‘현장감’이란 ‘지금, 바로 여기’를 체험하는 직접 경험이며, ‘연극’은 단연코 어떠한 예술매체보다 이 ‘현장감’이 강력한 예술 장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강력한 현장감은 직접 경험임과 동시에, 매우 창의적인 행동을 포괄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열광하고 지지하는 그 ‘창의성’이라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보통 우리는 이 창의성을 천재성과 연결 짓는 것 같다. 그리고 창의성이라는 것을 어떤 사람은 많이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있는 듯도 하다. 또한 창의성을 상상력과 연결하게 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상상력 또한 일상적이지 않은 매우 특별한 어떤 것으로 몰아가기에 십상이다. 정말 그럴까?

 

“미적 체험이란 진지하고 심오한 감동을 주는 어떤 대상에 대해 특별한 방식으로 주목함으로써 감응하고 동시 이것에 대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답할 수 있는 상태”(2011, 서울문화재단 창의예술교육체계 구축 방안을 위한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보고서)

 

‘연극’이 가지는 직접 경험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면,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 보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다른 무엇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저 상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 되어서 말하고 움직여 보는 것이다. 그 인물처럼 움직이며, 그 인물이 할 법한 말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다. 그 인물이라면 어떻게 걸어갈까, 무엇을 좋아할까, 무슨 일을 할까 등을 구체적으로 생각해서 행동으로 끌어낸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연극’이란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바로 이렇게 행동해 봄으로써, 우리는 되어 보는 대상에 대해 특별하게 주목하게 되고, 아하 그 대상이 이러한 생각을 한다고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체험이 자기 행동에 대한 관점, 곧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창의성도 근육과 같지 않을까? 그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역량으로 멋지게 만들어낼 수 있는 복근과 같은!

 

일단 ‘연극’은 무대에서 하는 공연이라는, 연극을 결과물로 보는 시각에서만 탈피하면, 의외로 연극은 내 가까이에 있다. 한번 해 보는 것이다. 해 보면서 느껴보는 것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이전에, 직접 해 보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연극’이 가지는 예술교육의 가장 강력한 힘이 도사리고 있다. 아, 그리고 직접 경험이라는 본질과 함께, 연극이 가지는 총체성도 직접 경험의 힘을 배가시킬 수 있다. 흔히 연극을 대사를 외우는 것으로만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연극은 말과 함께 움직임, 움직임과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공간성, 날것의 소리,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소리나 색, 혼자의 움직임과 여러 사람의 움직임, 움직임을 대체할 수 있는 소품이나 도구들 등이 그야말로 융복합적으로 구성된 3차원의 세계이다. 결코 혼자 열심히 대사를 외워서 해결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이, 그리고 여러 요소가 부딪히고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세계, 곧 나 혼자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대상(요소)들과 합을 맞춰가는 경험이라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연극을 보는 재미도 하는 재미도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바로, 이 ‘직접 해 보는 재미’로부터 연극이 가지는 예술교육의 세계와 가능성은 출발하는 것이리라.

 

 


글 최지영
드라마 스페셜리스트이자 연극놀이 컨설팅 전문가
현 한국교육연극학회 회장 및 예술로커뮤니티씨어터 협동조합 이사장을 겸하고 있으며 <드라마 스페셜리스트가 되자-과정중심의 연극만들기> 와 <과정중심연극으로서의 교육연극> 두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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