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와 시민이 함께 놀고 함께 만드는 예술수업 <플레이엄>

예술로, 엠바디어스

예술인은 시민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고 있다. 팬데믹 이후 우리의 일상이 변하는 와중에도 예술인은 작품을 통해 시민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이제 예술인들은 시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창작하고 함께 즐기는 예술교육 활동을 진행한다. ‘Play’와 ‘Museum’을 합성해 이름 지은 <플레이엄>에서 예술인과 시민은 함께 호흡하고 생각을 공유한다. ‘예술로’, ‘엠바디어스’를 만나 지역사회와 더불어 공존하는 문화예술교육을 이야기한다.

융·복합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플레이엄>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알려주세요.

이화진(이하 이) 안녕하세요.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진행한 ‘예술로’의 이화진입니다. 저희는 화성시문화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플레이엄>을 알게 됐어요. 7년 정도 예술교육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공고를 보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지원하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디자이너로 오래 활동했었고, 육아로 인해 쉬었다가 화성으로 이사 오면서 강의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홈스쿨에서 공방도 열어보고, 재능 기부도 했다가 교육 봉사를 하면서 차근차근 예술교육으로 영역을 옮기게 된 거죠.

최종희(이하 최) 안녕하세요. ‘공간과 나, 시각적으로 생각하기’를 진행한 ‘엠바디어스’의 최종희입니다. 작가로서 활동하다 보니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느끼는지 계속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미학을 시작으로 뇌과학과 심리학, 인지과학 분야까지 공부하게 됐어요. 최근에는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는 개념을 알게 됐는데, 서양에서 그동안 몸과 정신을 분리해왔던 것이 이제는 몸에 의해 정신이 구현된다는 개념으로 변화를 모색하게 된 거죠. 작년에 우리나라 대학들이 모여 체화된 인지에 관한 학회도 생겼어요. 올해 2월에는 예술단체 ‘엠바디어스’가 만들어졌고, 예전에 예술의전당 영재 아카데미에서 3년 정도 강사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플레이엄>을 통해 선보이게 됐어요.

참여 대상자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선정했는지 궁금해요.

처음 기획안을 세울 때 저를 포함한 네 분의 선생님과 함께 대상자 선정 작업을 했을 때 많은 고심을 했어요. 다양한 대상자군을 놓고 논의를 거듭하다 문득 장애인 자녀를 가진 엄마들이 우리 교육에 참여한다면 어떨까,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서예와 공예 교육인 만큼 아름다운 재료를 가지고 수업을 하면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힐링이 되지 않을까 싶었죠. 우리 주변을 잘 살펴보면 장애인 자녀를 키우고 있는 가정이 적지 않거든요. 사실 보통의 아이를 키우는 것도 굉장히 힘든데,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엄마는 더 힘들고 더 강해져야 하는 걸 보면서 ‘이런 엄마들에게 잠깐이나마 예술로 힐링하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장애가 있는 아이를 돌보며 자신을 잊은 채 살아온 엄마들이 스스로 창작 활동의 주인공이 되어 예술적 감수성과 재능을 발견하고 채워나가는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화성시는 새로 가족을 이루어 사는 젊은 분들이 많고, 특히 도시가 성장하면서 어린이가 중요한 구성원이 되고 있는 곳이에요. 저희는 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하는 수업을 많이 진행해왔는데, 학부모 밴드모임이 있을 정도로 어린이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입니다. 교육 자체도 어린이와 부모가 같이하는 형태인데, 어린이들이 긍정적인 사고를 하려면 함께 몸을 맞대며 몸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몸이 어떻게 진화되어왔고,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도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죠. 그렇게 어린이를 둔 가족을 대상으로 공간을 만들고 해체하며 우리 몸을 이해하고 탐구해보는 시간을 갖게 됐어요.

(왼쪽부터) 이화진, 최종희

프로그램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진행 중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부터 참여자 분들에게 한번씩 전화를 드렸어요. 우리 프로그램의 의도와 핵심 포인트, 진행방식 등을 소개했죠. 초기에는 참여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홍보해줬어요. 입으로 소개해주고 맘카페에도 올려주며 점점 참여 인원이 늘기 시작한 거예요. 덕분에 프로그램도 풍성해졌죠. 어린이들이 블록으로 성이며 집, 다리 등을 만들고 해체하며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강사와의 신뢰가 쌓이고, 몸 사용에 대한 요령과 집중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돼요. 과정이 진행될수록 여러 도구들을 사용하는 것도 익숙해지고 자신만의 세계가 만들어지죠. 한번은 프로그램 중에 사용한 테이프를 모아서 버릴 겸 참여자들이 작은 공을 만들었는데, 어떤 아이가 다음 주에 그 공을 가지고 온 거예요. 어른들한테는 그저 쓰레기지만 아이한테는 경험이 압축된 어떤 애착의 존재였던 거죠. 그러니까 아이들이 만든 걸 함부로 버리면 안 돼요(웃음).

저희는 다양한 재료와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어요, 금속, 꽃, 실, 손글씨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끔 했죠.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열여섯 명씩 참여했는데 10회의 프로그램이 짧게 느껴진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자녀를 돌보느라 바쁜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분들도 많아서 프로그램이 너무 길면 시도조차 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나중에 설문지를 보니 더 길게 하고 싶다며 아예 1년 단위로 해야 한다는 분도 있었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딱히 어려웠던 점이라기보다 고민했던 부분이 있다면, 저희들은 공예와 디자인 등 배경 지식이 있는 상태였지만 참여자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대로 자유롭게 표현해보세요”라는 말조차 어렵게 느껴질 수 있잖아요? 예술이 꼭 어려운 건 아니라는 것과 생각을 더 쉽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끼리 회의도 자주하고 참여자들에게 다양한 예시를 보여주며 아이디어를 풀어낼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예술로 이화진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참여자들을 통해 느끼게 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참여자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말씀해 주세요.

작가 활동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연속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예술교육을 하면서 대상자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들어보곤 하는데, 초등학생한테 물었던 질문을 대학생에게도 해보면, 초등학생들의 답변이 더 신선할 때가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어떤 문제에 대해 초등학생이 잘 모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대답하는구나, 성의 없거나 무시하는 게 아니구나하는 걸 느꼈죠. 초등학생 나름의 세계에서 할 수 있는 대답인 거고, 대학생이 되어 질문의 의도를 알게 됐다고 해서 대답에 양적·질적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초등학생에게 철학적 질문을 던지면 그 나이 때 할 수 있는 사고 안에서 답이 와요.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어른들한테는 또 다른 질문이 되어 돌아옵니다(웃음). 그러면 저희는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계속 예술로 던져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하게 되는 거죠.

참여자들이 전한 말 중에서 가장 많이 듣고, 또 가장 좋았던 말은 ‘여기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나한테 집중해본 시간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는 거였어요. 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이 자신을 잊고 살았다는 게 정말 가슴에 와닿더라고요. 이 작은 여유만으로도 이들이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 알게 됐고,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껴볼 수 있게 한 것이 명징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비록 몇 번의 경험만으로는 이들의 삶을 바꿔놓지는 못하겠지만, 아주 조금씩이라도 스스로의 마음을 다지고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강사로서도 매 수업마다 ‘어떻게든 이 과정을 오늘 끝내야겠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는 ‘굳이 끝내지 않아도, 미완성인 상태도 괜찮다’라고 바뀐 것 같아요. 참여자들과 시간을 함께하는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고 느끼게 된 거죠.

엠바디어스 최종희

<플레이엄>은 창작자와 향유자 등 참여자 중심의 문화예술교육인데. 이러한 방향성을 고려할 때 예술인들이 참조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흔히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죠. 공부할 때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친구에게 가르쳐줄 때, 비로소 그 지식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고 하는 것처럼요. 지금은 예술인들이 관객들과 교류하며 관계성을 통해 창작 작업을 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예술 세계를 관객과 함께 호흡한다는 개념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해보면 그것이 곧 창작 작업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아마도 많은 경우에 창작을 위해 예술인이 됐지 교육을 위해 예술을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플레이엄>과 같은 예술교육을 경험하고 쌓아나가면 더욱 다채롭고 깊이 있는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이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고, 아이디어를 확장하고 또 관객들을 만나면서 창작 작업을 종합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방향이 생길 거라고 자신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예술을 접하고 싶고 창의적인 창작을 통해 본인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분들이 많아요. 또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 할 엄두조차 갖지 못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예술 영역에 한 발자국 들어올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예술인들이 하면 어떨까 싶어요. 우리가 응원하고 도전 의욕을 높임으로써 조금씩 예술 영역으로 넘어오는 대단한 일을 해볼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다고, 그래서 우리처럼 예술을 통한 기쁨을 함께 누리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모든 시민이 예술을 사랑하고, 우리가 사는 도시가 더 좋은 모습으로 가꾸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일을 우리 예술인들이 노력하고 솔선해주길 바랍니다.

글 이종철

사진 남윤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