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문화관광재단 대표이사 안필연
사랑하는 마음은 내 애정의 대상을 더 좋은 무언가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다.
지난 1월 화성시문화관광재단의 제11대 대표이사로 취임한 안필연 대표는 조형 예술가로 평생을 살아 온 인물이다. 예술을 사랑하기에, 그는 누구보다 예술을 위한 일을 할 것이다.
글 차예지 사진 김성재(싸우나스튜디오)
지난 27년간 교수 생활만 하면서 지냈어요. 재단에 와서 가장 좋은 점은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게 되고 거기서 배우는 점도 많고요. 그리고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죠.
모든 예술은 통하는 것이여서, 평소 퍼포먼스를 통해 경험하기도 했지만 종합예술인 공연에 대한 깊고 방대한 부분은 계속 알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술은 가르치고 배우는 게 아니라 그저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람을 예로 들어볼게요. 우리는 바람이 존재한다는 건 알지만 그게 눈에 보이지는 않죠.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 그걸 보고 ‘바람이 저기 있구나’ 하고 아는 것처럼 예술 또한 스스로 알아채는 것이죠. 저는 학생들에게 선생이라기보다 선배라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이 선배들을 보고 느끼는 거죠. 그게 아니면 자기만의 길을 가는 거죠. 저는 누구에게 뭔가를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재단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운영하고 싶어요.
저는 항상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난 이후에도 잘 작용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제가 죽고 나서도 작품은 남을 텐데, 이 작품이 어떤 성격으로 남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예술과 대중이 소통할 수 있는 전시잖아요. 이번 전시로 관객과 소통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작품 스스로 작용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예술, 축제, 관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화성시문화관광재단으로 변화하면서 세 분야를 균형 있게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고, 각 분야를 한곳으로 모은 만큼 서로 시너지를 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관광 사업은 화성시 서부를 중심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관광이 활성화되면 해당 지역민들의 생활 수준과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도 많아질 것이라 생각하고요. 화성시 문화예술의 균형적인 발전에 재단이 한 축을 담당하고 싶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관광 분야가 새롭게 생겼다는 점이에요. 그동안 문화예술 중심으로 운영되던 재단이 이제 관광까지 포괄하게 되면서, 화성의 매력을 더 다채롭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거죠.
지금은 신규 테마 관광자원을 발굴하고, 지역에 맞는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어요. 특히 매향리 농섬과 평화기념관 일대는 생태와 역사, 환경이 어우러진 아주 특별한 공간이기에 그곳을 중심으로 생태환경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마침 경기관광공사와 한국관광공사에서 주관하는 공모사업에 선정돼서 지원도 받게 됐고요.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제공 받은 지역별 관광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컨설팅을 통해 지역 특색을 살린 체험 프로그램이나 전통 음식 같은 지역 문화 콘텐츠 제작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화성예술의전당이에요. 2026년 개관을 목표로 지금 LH, 화성시와 함께 건립 과정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있고요. 어떤 프로그램들로 채워나가면 좋을지 내부적으로도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대공연장이 생기면 당연히 더 큰 공연을 유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그게 곧 지역 예술인들에게도 좋은 기회로 이어지겠죠. 단순히 공간 하나를 더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화성시 전체의 문화적 자산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오랫동안 예술 현장에서 활동해왔기 때문에 지역 예술인들의 현실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고, 그들의 고민에 공감할 수 있죠. 그래서 재단에서 추진하는 거의 모든 사업이 결국은 예술인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저는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는 지원’을 중요하게 봅니다. 장애 예술인, 다문화 배경을 가진 예술인,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신진 예술인 등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할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런 분들이 창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화성예술지원’ 사업을 통해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고요.
화성시는 굉장히 넓어요. 예술은 사람을 모으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쪽에만 문화예술이 몰리지 않도록, 여러 지역을 두루두루 연결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고민에서 나온 게 ‘자유공간+’ 같은 예술거점 지원 사업이에요. 이 사업은 말 그대로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는 공간 즉 동네 책방, 카페, 심지어 농촌의 비어 있는 창고까지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로 바꾸는 거예요. 그렇게 예술이 어디에나 스며들게 하고 싶은 거죠.
궁극적으로 예술이 특정 공간이나 계층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화성 전역 어디서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삶의 일부가 되도록 만들어 가고 싶어요.
저희 자매가 어릴 때 부모님이 저희를 피아노학원에 보내셨어요. 아침 일찍 수업을 듣고 나서 학교에 가게 하셨는데요. 제가 피아노를 치다 건반에 손을 올린 채로 잠이 든 거예요. 피아노 선생님이 저를 깨운다고 제 손을 확 내리쳤는데, 그 순간 건반이 눌리면서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려 그대로 기절했어요. 그 뒤로 피아노 레슨을 그만뒀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느 날 친구가 나무 박스에 물감과 테레핀 같은 미술 재료를 잔뜩 들고 왔어요.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화실에 가면 이걸로 그림을 그린대요. 그 말에 호기심이 생겼죠. 그래서 화실에 갔는데 남도 사투리를 쓰는 여자 선생님이 계셨어요. 서양순 선생님1). 너무 훌륭한 인품을 가진 그분 덕에 제가 미술을 시작했어요. 한 선생님은 저에게서 예술을 빼앗아 가셨지만 다른 선생님은 제게 예술의 인생을 다시 열어주신 거지요.
예술의 역사를 보면요,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에는 그림이 사진의 역할을 했죠. 우리가 보는 것을 그림으로 똑같이 그려 표현해야 했어요. 그러다 카메라가 발명되고 나서 그림이 묘사의 기능을 하지 않으니 인상주의가 등장했죠. 카메라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낸 거예요. 기술은 예술과 같이 갈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우리는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예술을 할 거예요.
대신 기술과 예술이 함께 가려면 새로운 예술에 대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 전시 작품도 만드는 데 많은 돈이 들었거든요. 투자가 있어야 예술이 계속 발전해요.
그냥 ‘나’라고 할 수 있어요. 나다울 수 있는 것. 지금도 그림 그리고 있을 때 마음이 제일 편합니다.
1) 서양순(1940~)은 한국여류화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사)한국미술협회 고문, 아트강 갤러리 대표이기도 한 한국 화단의 원로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