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열망이 도시 전체를 변화시키다

2024 시비우 국제연극제

예술가의 열망이 도시 전체를 변화시키다

2024 시비우 국제연극제

Sibiu International Theater Festival

1993년, 시비우의 라두 스탄카(Radu Stanca) 국립극장 배우인 콘스탄틴 키리악(Constantin Chiriac)이 도시를 위한 연극 축제를 제안했다.
시기는 루마니아의 대통령이자 독재자였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şescu) 이후로, 도시와 연극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공동체 예술을 통한 국격 회복을 꿈꾸고 열망한 데서 비롯됐다.

올해로 31회 개최를 맞이하는 2024 시비우 국제연극제는 세계 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연극 및 공연 예술 축제 중 하나로, 공공 및 민간 후원을 통한 재정적 안정성을 기반으로 매해 성장해 나가고 있다.
82개국에서 온 5,000명 이상의 아티스트가 참여한 830개 이상의 공연예술마켓, 공연, 전시 및 부대행사를 선보였다.

또한 연극, 무용, 음악, 거리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초청하여 시민들이 다채로운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예술 비즈니스와 관련된 폭넓은 주제로 워크숍, 세미나, 포럼 등도 열렸다.

이번 축제의 주제는 관객과 예술가 간의 유대감을 강조하는 ‘우정(friendship)’으로, 이번 축제의 국제공연예술마켓(Sibiu International Performing Arts Market)에선 그 주제에 맞는 예술가, 프로듀서, 기획자들이 모여 네트워킹하고 작품을 소개하며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하는 장을 만들었다.화성시문화재단은 이번 시비우 국제연극제에 공식 초청을 받아 참가했다.

아트마켓에 참가하여 재단의 사업과 화성시 예술인들의 정보를 알리고, 국제 문화 교류를 통한 국내 공연의 해외 진출 경로를 탐색하며, 다양한 이들을 만나 많은 것들을 가지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문화기획자들의 눈으로 면밀히 살펴본 이번 축제를 함께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INTERVIEW

시비우 국제연극제 프로그래밍 디렉터와의 만남

글. 신혜진 | 사진. 신유정, 서재완

시비우 국제연극제에서 실내 공연의 프로그래밍을 맡고 있는 비첸티우 라허우(Vicentiu Rahau)는 지금 “이곳에서 진행되는 모든 공연은 직접 선택했다”며 축제에 대한 자부심을 보였다.
올해로 31년, 누구도 알지 못하던 작은 도시 시비우는 문화예술을 통해 유럽의 문화수도로 자리 잡았다.
콘스탄틴 키리악(Constantine Chiriac)이라는 배우 출신 예술감독의 주도로 시작된 시비우 국제연극제는 시 정부와 예술인 그리고 주민들의 협력이 도시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예술인들의 열정과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이에 응답한 시의 투자는 조금씩 도시의 모습을 바꾸어가기 시작했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불러들이며 호텔과 국제공항 등 필요에 의한 도시 인프라를 만들어 냈다.

도시가 굉장히 활기찬 모습입니다. 거리에서도 극장에서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어요. 작은 도시 시비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축제의 주요 관객층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찾게 만든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비첸티우 우리는 다양한 관객층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특정 관객층이 있다고 규정지을 수 없어요. 우리 축제는 모두를 타겟으로 하는 다양한 공연들을 진행합니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계층의 관객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저는 13년 전 이 팀에 합류했고, 빠르게 관객 개발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객을 개발하는 것이 스타나 유행하는 작품을 소개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FITS(시비우 국제 연극제)만의 가장 중요한 관객개발 방식은 무엇인가요?

비첸티우 첫 번째는 야외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의 구성입니다. 거리극과 야외무대의 공연들은 어렵지 않고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공연들로 선택합니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500여 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입니다. 매년 10월에 자원봉사자 모집 발표를 하고, 12월경부터 6개월간의 트레이닝을 시작합니다. 그들에게 이 축제가 어떤 의미인지를 전달하고, 시비우라는 도시의 역사까지 교육하지요. 그리고 그들이 다양한 공연을 보며, 축제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매년 70%의 새로운 자원봉사자들이 합류하고 있으니 해마다 새로운 관객들이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축제 기간에는 문화예술과 관련한 교육적인 이벤트들이 있습니다.
컨퍼런스, 워크숍, 마스터클래스 등 공연 분야의 사람들은 물론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예술적 성장을 가져올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지요. 교육이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프로그래밍 디렉터

Vicentiu Rahau

(루마니아어 표기 Vicențiu Rahău)

실제로도 자원봉사자분들이 참 인상적이긴 했어요. 모두 친절하고, 이 축제에 자부심이 가득한 것 같은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비첸티우 자원봉사자들은 금전적인 보상이 전혀 없음에도 적극적으로 축제에 참여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성인들도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축제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또 다른 교육으로 여겨 참여하는 청소년들도 많습니다. 자원봉사자들에 관한 우대가 있기 때문에 축제의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취업 등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일반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거리공연들이 사람 들의 생활공간과 밀착된 것이 독특합니다.

비첸티우 시비우 지역의 사람들은 축제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키리악이 FITS를 시작한 이후, 매년 성장하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이 도시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연으로 인한 소음이나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죠. 이곳에 방문한 사람들이 레스토랑, 호텔 등에서 지출을 하고, 그렇게 생겨난 세입이 다시 지역에 투자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시비우의 시민들은 축제 참여를 위해 찾은 이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한 손님과 같이 여깁니다.

시청에서는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지역민들은 그런 축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예산이 지원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비첸티우 시청에서는 연간 예산의 18%를 문화 예술에 투자 하고 있습니다. 아마 전 세계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키리악과 함께 문화 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도시를 변화시켰던 시비우의 시장이 현재는 루마니아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루마니아의 많은 사람들이 문화가 도시를 변화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약 26% 이상의 공공재원을 지원받고 있으며, 시청은 물론이고 문화부(Ministry of Culture and National Identity)*, 시의회(Sibiu County Council), 교육부(Ministry of Education), 문화원(Romanian Cultural Institute) 등에서도 예산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외의 다양한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6개의 은행에서 축제를 후원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전 세계에서 유일할 것입니다.

FITS를 여느 축제와 다르게 만드는 것은 지역 모든 사람들의 협조와 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첸티우가 생각하는 FITS만의 특별함은 무엇인가요?

비첸티우 프랑스 아비뇽이나 영국의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축제들은 소수의 작품들만이 공식 초청을 받고 있습니다. 그 외의 많은 작품들이 직접 비용을 부담하고, 장소를 대관해서 공연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시비우 국제 연극제는 앞의 두 축제와 다르게 IN과 OFF-Fringe로 나뉘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을 위한 모든 공연과 이벤트를 우리가 직접 선택하고, 초청합니다.
또 다른 중요한 차이점은 포럼, 워크숍, 마스터클래스, 전시 등 다양한 특별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을 통한 변화, 새로운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이상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는 위에서도 언급한 자원봉사자들과 지역의 사람들입니다.
지역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는 활동들이 중요한 것이지요. 이 축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지역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에 해당하는 기관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축제, 활기로 가득 찬 도시

글. 신혜진 | 사진. 신유정, 서재완

백스테이지를 오픈하여 객석과 경계를 허물고 수 백명의 관객들에게 마치 진짜 지옥을 오간듯한 느낌을 선사하는 연극<파 우스트> (Faust)
우리가 관람한 수십 개의 공연 중에서 압권은 시비우 국립극단 라두 스탄카(Radu Stanca)의 대표작 <파우스트>였다.
공연장의 모든 장소를 활용하고, 배우와 관객들이 하나 되는 경험은 그 어디에서도 느껴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일상 속 거리 무대가 되다

시비우 국제연극제는 82개국이 참여하여 830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진행 했다. 축제 기간 동안 5,000명 이상의 예술가 및 관계자가 참가했고, 하루 평균 100,000명이 방문했다.
연극, 무용, 서커스, 오페라, 뮤지컬, 음악, 거리극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아우르며 방문객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시비우 시내의 역사 문화자원을 그대로 활용하여 축제와 공연을 진행한 것은 이번 연극제의 주요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유서 깊은 장소의 독특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모습은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공연장소들은 대부분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여 관객들의 편의성을 더했다.
시비우 대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진 다양한 공연 공간들과 유적지, 주택, 식당, 사람들까지 어우러진 모습은 이번 축제의 묘미 중 하나였다. 관객이 모두 착석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연극제의 세심한 배려, 어떤 공간에서든 열정적으로 무대를 보여주는 예술가들, 공연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뜨거운 성원을 보내는 관객들이 어우러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이상적인 축제의 방향을 보여주었다.

이번 시비우 국제연극제는 예술과 인간, 그리고 도시가 하나 되는 감동의 순간들을 선사하며,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시비우에 위한 성당(Holy Trinity Roman Catholic Church)에서 공연한 포르투갈 팀의 <파두 아나 핀할> (Fado cu Ana Pinhal)
역사문화자원을 그대로 활용하여 축제와 공연을 진행한 것은 이번 연극제의 주요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유서 깊은 장소의 독특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모습은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가능성의 장, 시비우 국제공연 예술마켓 SIPAM

혁신기술의 촉매제로서의 문화유산관광 포럼(Cultural Heritage Tourism as a catalyst of innovative Technology)

시비우 국제공연예술마켓(Sibiu International Performing Arts Market)은, 시비우 국제연극제의 한 부분으로 예술가, 관계자, 기관, 단체, 제작자들이 만날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서로 교류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
축제 첫 개최 4년 후인 1997년 시작되어 매년 다양한 문화단체들이 이곳에서 잠재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호텔 안의 홀에서 진행 되었는데, 많은 사람이 홀 입구에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본 사람부터 예전에 만났던 오랜 친구까지 눈을 맞추며 근황을 묻는 것을 보며 국제적인 행사에서는 이 행사에 참여하는 것만이 아닌 그 이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국제 문화 교류의 장으로서의 역할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비뇽 페스티벌, 에든버러 페스티벌, 맨체스터 페스티벌 예술감독들이 선정한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포럼을 통해서는 현재 예술계의 다양한 제작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주최 측의 요청으로 재단이 운영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시설 등을 소개했다. 시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활동에 중점을 둔 화성시문화재단의 발표에 많은 관계자들이 재단 사업의 다채로움이 인상 깊었다고 전해 왔다.
출발 전에 가졌던 ‘루마니아의 시비우라는 낯선 땅에서 화성시문화재단을 소개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은 마켓 프로그램 참석자들을 보며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이 도시에, 이 행사에 화성시문화재단을 소개한 것에 그치지 않고 이 축제와 연관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이 축제만이 아닌 세계적 행사, 기관, 단체의 관계자들에게 재단을 알리고 그들과 네트워킹하며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 이곳이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 경험 이다.
앞으로 화성시문화재단의 이름으로 국제 문화 교류가 이루어지게 된다면 이곳에서의 경험이 작은 씨앗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숙한 축제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참여자들

루마니아 시비우에서 열린 올해의 국제연극제는 ‘Friendship’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세계 각국의 예술가와 관객들이 모여 다양한 공연과 문화 교류의 장을 마련했다.
그 중심에는 시비우 시민들과 자원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따뜻한 배려가 있었다. 시비우 시민들은 축제를 통해 도시를 찾은 관람객 들에게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소개했다. 거리 곳곳에서 펼쳐진 공연마다 시민들과 관람객들이 함께 어우러져 축제를 즐겼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으며, 거리 공연 때문에 불편한 상황이 생겨도 시민들은 오히려 공연을 함께 즐기며, 진정한 축제는 시민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시비우 국제연극제는 단순한 문화 행사가 아닌,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특별한 장으로써 지역사회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시민들과 자원봉사자 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축제를 운영하는 모습은 지역 공동체의 힘을 보여주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루마니아의 지방 도시에서 ‘그들만의 축제’가 아닌 ‘모두의 축제’를 만났다.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소통하며 연결되는 문화, 자부 심을 가질 수 있는 문화적 자산을 만들어 가는 일이 우리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할 목표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