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건네는 초록의 대화법

작가 이재형, 최종운

우리는 종종 아름다운 자연과 소통하지 못해 마음으로만 예뻐하고 만다. 병든 자연을 앞에 두고 말 붙일 방법을 몰라 발만 동동 구른다. 자연과 소통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언어를 익혀야 할까? 이재형, 최종운 작가는 자연과 인간의 대화법을 골몰하며 우리에게 자그마한 보따리를 건넨다. 손을 넣어 헤집어 보니 깊고 넓은 소통의 세계가 그 안에 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두 사람이 <GREEN FANTASY>에서 미디어아트라는 이름으로 진솔한 대화법을 제시한다. 두 작가가 건넨 보따리 속에서 우리는 어떤 대화법을 건져 올리게 될까? 자연에 저마다 다른 대화를 시도하겠지만 전시장에 머무는 동안 눈과 귀가 풍요로울 것만은 분명하다.

“다방면으로 사유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면서 

관객들이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최종운(이하 ‘최’) 반갑습니다. 미디어아트와 설치 작업을 하는 작가 최종운입니다.

이재형(이하 ‘이’) 안녕하세요, 미디어아트 작업을 하는 이재형입니다. 주로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미디어아트 위주의 활동을 하고 있어요.

 

코로나19로 전시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요새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작업을 더 많이 하고 있어요. 전시도 웹으로 진행되고 있죠. 웹 작업과 함께 미디어파사드 작업도 하고 있는데요. 최근엔 많은 전시가 코로나19를 주제로 다루고 있어서 희망의 메시지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어요.

저는 요즘 새로운 작업을 위해 리서치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평소에 관심은 있었지만 여유가 없어 수집하지 못한 정보들이 있거든요. 새로운 작업을 탄탄하게 준비하기 위한 기간이라고 생각 중이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두 분이 함께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미디어아트 프로젝트 <GREEN FANTASY> 소개를 부탁드려요.

<GREEN FANTASY>는 인간과 자연의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맞춘 미디어아트 전시예요. 전시 기획을 듣고 ‘미지 세계와의 소통’이라는 테마가 떠올랐어요. 멀리서 바라보고 머릿속으로 상상해 온 세계를 작품을 통해 체험할 수 있도록 해보려고요. 이 관객이 몸소 체험하고 생각해 보는 전시가 될 것 같아요. 좀더 다방면으로 사유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면서 관객이 더 깊게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요. 저는 <GREEN FANTASY> 참여 작가지만, 관객이 제가 의도한 대로 느끼기보다는 스스로 고민해 보며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는 전시가 되길 기대하고있죠.

 

인간과 자연의 커뮤니케이션이 주제인 만큼 ‘환경’이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약 15년 전부터 환경 문제에 대한 작업을 꾸준히 해왔어요. 자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변하고 환경 오염 역시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요. 올해 갑자기 나타난 코로나19도 그렇고, 지구 온난화로 발생하는 대홍수 같은 문제들도 그렇죠. 이런 상황을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어서 환경 문제를 작업에 도입하기 시작했어요. 이번 작업에선 환경 문제를 직접 다루지는 않지만 이에 대해 더 깊이 사유할 수 있을 만한 프로젝트를 해보려고 해요.

저는 미디어 작업을 하면서 기술의 한계점을 깨달았어요. 자연의 아날로그 요소들을 발견하고 매력을 느끼면서, 디지털의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이 한계를 극복하는 데 자연적인 요소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 기술,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건 언제나 제 관심사였기 때문에 작업에 이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우리의 미래가 아름다운 바다와 함께하는 자연이 아니라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전시예요. 미래의 바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음…. 생명이 없는 바다? 극단적인 생각이지만 우리가 빠르게행동하지 않으면 근미래에 비극적인 모습을 맞닥뜨리게 될 것 같아요. 자연은 더 이상 우릴 기다려주지 않거든요.

저는 좀 다른 상상을 해봤어요. 영화 <워터월드> 같은 미래를 떠올렸거든요. <워터월드>는 지구 전체가 물에 뒤덮여 인류 문명이 수중에 가라앉게 되는 영화예요. 이런 재난 상황에도 사람들은 인공섬을 만들어서 새로운 세상을 꾸리더라고요. 이대로 지구 온난화가 가속돼서 해수면이 높아지면 10년 뒤 우리는 <워터월드> 같은 세상을 만나게 될지도 몰라요. 그때 사람들은 높아진 바닷물에 맞춰 배를 띄우고, 사라진 대지 대신 거대한 배 위에 서 새 터전을 꾸릴 수도 있을 거예요. 변화된 자연에 맞춰 적응하고 그 안에서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낼지도 모르고요.

두 분이 전혀 다른 미래를 상상하고 있군요. 이렇게 다른 두 분이 어떤 작업으로 전시를 꾸릴지 더욱 기대되는데요.

일상적인 것이 특별해지는 순간 예술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선보일 미디어아트의 이름은 ‘갤럭시’예요. 이 작업은 제 소소한 취미인 ‘별 보기’에서 시작되었어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광활한 우주를 상상하며 작업한 거죠. 우주는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예요. 우주를 배경으로 지구는 티끌만 한 존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더 작은 미물이겠죠. 이런 개념을 토대로 생각을 넓혀 나가는 작업이 될 거예요.

저는 이전부터 해오던 ‘페이스 오브 시티’ 작업의 연작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페이스 오브 시티’는 인공지능 프로젝트로, 도시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요. 하나의 사회 이슈를 테마로 삼고 SNS에서 등장하는 언어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하죠.그 자룟값의 내용을 얼굴 표정으로 전시하는 작업인데요. SNS 유저들이 살고 있는 장소를 토대로 지역감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사회 이슈에 대한 지역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어요. 이번 전시에서는 환경을 테마로 두고 진행해 볼 예정이죠.

 

‘페이스 오브 시티’에 대해 좀더 여쭤보고 싶어요. SNS 언어를 어떻게 표정으로 바꾸는 건가요?

작업 설치에 앞서 인공지능을 단어와 문장으로 학습시켜요. 긍정과 부정을 기준으로 삼는데, ‘나는 학교에 간다.’는 문장을 예로 들어볼까요? 어른이 이 문장을 본다면 대부분 긍정적으로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학생들은 부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겠죠. 이처럼 하나의 단어나 문장을 세대별로, 성별로, 지역별로 나누어 무작위로 학습시키는 거예요. <GREEN FANTASY>에서 인공지능은 SNS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환경 관련 문구를 판독하고 긍정이냐 부정이냐에 따라 얼굴 표정을 달리할 예정이에요. 환경 문제에 있어선 아마 슬픈 표정이 대부분일 것 같은데요. 모두 슬픈 표정이더라도 남녀노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표정을 보는 것도 재미있겠죠. 그걸 지역이란 단위로 묶으면 또 새로운 결괏값이 도출될 거고요. 어떻게 하면 인공지능을 웃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는 장이 되면 좋겠어요. 그 안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거고요.

 

최종운 작가님은 일상에, 이재형 작가님은 사회 이슈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주로 작업의 영감을 어디에서 받고 있나요?

보통은 일상에서 얻어요. 평범한 일상 중에도 새로운 경험이 찾아오곤 해요. 그 과정에서 제 뇌리를 자극하는 이미지들을 모아 차곡차곡 저장해 두죠. 그러다 어느 순간 그것들이 서로 융합되는 시기가 찾아오는데요. 그때 하나의 형상으로, 개념으로 툭 떨어져 나온 것을 핵심 삼아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저는 작업할 때 해온 걸 반복해서 보여주기보다는 서툴더라도 새로운 형식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해요. 설사 기존 작업의 연장선이 될지라도 또 다른 방식에 도전해 보는 거죠.

저는 예술이 할 수 있는 사회적인 기능성에 대해 고민해요. 예술을 무가치한 사치품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예술이 사회적인 측면에서 부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회·경제 부분에서 생기는 문제 중 일부는 기계적인 접근에서 야기되곤 해요. 인간적인 부분이 결여되어 삐걱대는 거죠. 그 틈을 감성으로 메워 매끄럽게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역할을 예술이 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사회 이슈를 테마로 작품을 만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해결책까지 제시하고 싶어요. 추상적인 감성들을 모듈화해서 기능적으로 활용하도록 만드는 거죠. 이런 사회적인 기능성이 예술품의 희소성보다 더 의미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최종운 작가님은 이번 전시에서 빛과 소리의 공감각적인 체험을 제시하신다던데, 작품을 좀더 소개해주세요.

이번 작업에선 신비로운 우주에 상상력을 더해보려고 해요. 저는 이 작업을 구상하면서 인류 역사의 위대함을 느꼈어요. 동시에 초라함도 느꼈고요. 방대한 우주 안에서 지구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으면서 범우주적으로 봤을 때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겠단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사사로운 사건들, 아옹다옹 싸우는 일들이 아주 작게 느껴졌거든요. 이번 작업에서 소리는 교감의 시작점이 될 거예요. 관객과의 교감, 오브제와의 교감, 그 시작에 소리가 있는 거죠. 이번 작업에 활용하는 소리는 제가 직접 채집하고 녹음했어요. 한 호흡으로 바람을 불어서 녹음했는데요. 사실 우주에는 공기가 없기 때문에 소리가 전달되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이런 소리가 날 것’이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마치 우주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작품을 표현할 계획이에요. 녹음된 소리는 전시장을 계속 맴돌 거고요.

 

이번엔 이재형 작가님께 여쭤볼게요. ‘페이스 오브 시티’ 작업은 실시간 프로젝트이다 보니 데이터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도출될 것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저도 어떻게 나올지 몰라요(웃음). 이번 작업은 빅데이터 개념일 수도 있지만, 집단 감성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결괏값을 가지고 올 것 같아요. 한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여러 계층을 통해 지역을 대변하는 작업을 의도하다 보니 우연성이 작용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인공지능 작업도 결국엔 완전한 리얼리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공지능이 언어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기준도 개발자가 세우는 거라서 개발자가 관여한 작업인 거죠. 다만 저는 공신력 있는 데이터가 아니라 SNS를 활용함으로써 좀더 진솔한 정보들을 수집한다는 데 의의를 두려고 해요. 일련의 규칙이 있는 데이터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열 려 있는 데이터를 활용하여 알레고리를 발견하는 게 유의미하다고 봐요.

어느 예술이나 그렇지만 특히 미디어아트는 해석하기 나름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 만큼 관객의 반응도 다양할 것 같은데요. 특히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었다면 들려주세요.

개인전 <This is Orchestra>를 진행할 때 나이가 지긋한 관객을 만났어요. 전시를 무척 좋아하시는 분이었죠. 그때 제게 “이 음악을 들으면서 작품과 함께 전시장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하셨는데, 정말 기뻤던 기억이 나요.

제가 그간 해온 작업은 사이즈가 크고, 색감이 화려하고, 감각이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프로젝트였어요. 그러다 한번은 박정민 작가와 ‘기계 즉흥곡’이라는 작업을 했는데요. 어항 표면에 다섯개의 선을 그리고 그 어항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움직일 때마다 피아노 건반이 소리를 내는 거예요. 여덟 마리 물고기의 움직임에 따라 무작위로 만들어지는 음계를 피아노로 인공지능이 연주하는 작업이었는데, 이 프로젝트에서 처음으로 화려함보다는 서정성에 집중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 관객 반응도 확연히 다르더라고요. 이전에는 ‘예쁘다!’ 하는 반응이었다면, ‘기계 즉흥곡’은 그저물고기를 멍하니 바라보는 반응이 많았어요. 그때 내면적인 깊이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디테일을 만들어준다는 걸 깨달았고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기술을 활용하더라도 전면에 내보이기보다는 숨긴 채로 활용하는게 더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두 분 다 관객 반응에서 작업의 의미를 찾는 것 같아요. 관객들이 <GREEN FANTASY>에서 어떤 느낌을 받길 원하나요?

미디어아트는 작가가 상상한 세상을 경험하는 일이에요. 작업을 직접 체감하고 느낄 수 있다면 더욱 매력적이겠죠. 전시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니 작가의 상상 속으로 초대받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환경 이슈를 테마로 삼았지만, 표정으로 드러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쉽고 가볍게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메시지를 담은 이번 작업을 통해 예술은 어렵다는 장벽이 깨지기를 바라요. 나아가 환경 문제에 따른 표정이 왜 이런 표정인지 생각해 본다면 더욱 좋겠죠. 관객이 사유하고 고민하는 장이 되기를 바라요.

 

<GREEN FANTASY>는 동탄복합문화센터의 새로운 전시 공간은 동탄아트스퀘어 개관전이에요. 동탄에 새 전시장이 생기는 데기대하는 바가 있을 것 같아요.

무척 고무적인 시도예요. 단발성으로 끝나는 전시가 아니라 다양한 전시가 계속 이어질 거라는 뜻이기도 하겠죠. 동탄아트스퀘어가 화성시 미디어아트의 메카가 되기를 응원해요.

동탄복합문화센터에 위치한 장소다 보니 서울로 나가는 것보다 좀더 가볍게 방문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커요. 순수미술이나 미디어아트에 관해 좀더 묵직하고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는 전시장이 되면 좋겠어요. 또한 아이들도 쉽게 오갈 수 있도록 너무 어렵지 않은 공간으로, 의미 있는 전시장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요.

 

마지막으로, 화성 시민에게 <GREEN FANTASY>에 초대장을
보내면서 인사 나눠요!

제 작품의 주제는 우주예요. 그러니까 화성인이라면 이번 전시를 꼭 봐야 하지 않을까요? 화성이 마스MARS니까요(웃음).

많은 분을 초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동네 산책 겸 가볍게 들러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집 앞에서 환경 문제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어떤 울림이 전해지기를 바라요. 또한 이번 전시가 코로나19 상황을 위로할 수 있다면 좋을 거예요. 앞으로 예술이 치유의 역할을 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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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동탄아트스퀘어 미디어아트 프로젝트 <GREEN FANTASY>

 

일시 10월 5일(월)~22일(목)
장소 동탄아트스퀘어
참여 작가 조인트크리에이티브(이재형, 최종운)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공연 일정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글 이주연

사진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