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리천에서 아이가 자란다

시민 에디터가 생각하는 함께 걷는 일

ⓒ 화성시

혼자 걷는 길과 함께 걷는 길의 풍경은 다르다. 매일 아이와 오산리천 산책에 나서는 시민에디터는
순간순간의 예쁨을 공유하며 한 뼘 성장한 아이의 모습을 목격한다.
오산리천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기 위해 오늘도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아이 덕에 시작한 산책

우리 가족은 올해 2월 화성으로 이사를 왔다. 오랫동안 일산에서 살다가 갑자기 화성으로 이사를 온 탓이었는지 예민한 첫째는 한동안 적응을 하지 못했다. 새롭게 옮긴 유치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이틀에 한 번씩 전화가 왔다.
“아이에게 조금만 주의를 줘도 책상 밑에 들어가서 울어요. 갑자기 공격적인 행동을 해요. 아무래도 또래 아이보다 말이 현저하게 느린 것 같아요.”
나는 첫째를 데리고 소아정신과를 찾았고, 아이가 또래보다 언어 능력이 1년 6개월 정도 뒤처졌다는 검사 결과를 듣게 됐다. 그렇게 첫째는 언어치료를 시작했고 치료사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바깥 활동을 통해서 아이의 욕구를 풀어주라는 숙제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발길이 닿는 대로 걷고 또 걸으며 아이와 대화하려 노력했다.

짙은 초록빛을 품고 쑥쑥 자라는 오산리천 들풀처럼,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랐다

원래 나는 웬만하면 집에서 나오지 않는 집순이다. 분리수거를 하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지 않는 한 집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말이 느린 것도 공격적인 행동이 반복되는 것도 모두 내 탓 같아서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하루에 1만 보는 거뜬히 걷는 만 보 아줌마가 됐다.
우리가 다니는 수많은 길 중 나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대형 마트를 끼고 있는 오산리천이다.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여섯 살 네 살 남매의 에너지를 감당하기에 적당한 길이기도 해서 자주 가곤 한다. 길 중간에는 작은 하천이 흐르고 가는 길목에는 펜스가 높게 쳐진 농구장에 작은 운동기구까지. 짧은 길에 있을 건 다 있는 나름대로 알찬 구성(?)의 길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내어준 편안한 길

오산리천에서 보낸 우리의 여름은 그야말로 뜨겁고 습했다. 머리카락이 다 젖을 만큼 하천을 따라 걷고 뛰며 메뚜기, 잠자리를 잡고 펜스가 둘러싼 농구장에서 공을 튕기며 첫째는 자신의 여섯 번째 여름을 이겨내고 있었다.
오산리천 주변에서 자라고 있는 풀들은 3월만 하더라도 키가 발목에 닿을 듯 작았지만, 6월이 되자 무서운 속도로 자라기 시작했고, 어느새 아이들의 키를 훌쩍 넘을 만큼 커져 버렸다. 화가 나면 무조건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질러댔던 첫째는 여름을 지내면서 어느덧 “엄마 내가 할 말이 있어요. 지금 기분이 안 좋아요”라며 자신의 감정을 천천히 말로 하기 시작했다.
킥보드를 타고 오산리천을 정신없이 달리는 아이들을 쫓아가다가 문득 생각에 잠긴다. 같은 꽃이라도 어느 꽃은 꽃송이가 손톱만 한 것도 있고, 또 어떤 꽃은 송이가 500원 동전만 한 것도 있다. 들꽃들도 뿌리를 내린 곳에 따라 제각기 자라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 자로 잰 듯 똑같이 자랄 수 없지 않은가. 조급한 마음으로 치료 센터에만 의지하며 아이가 빨리 나아지길 바랐던 나의 조급함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여름과 함께 짙은 초록빛을 품고 쑥쑥 자라는 오산리천 들풀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랐고, 잘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오늘도 아이들과 오산리천을 걷고 탐방한다. 조경이나 자연경관이 아름답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흔하디흔한 하천길이지만 우리 가족이 화성에 터를 잡은 후, 마음을 내어준 편안한 길이기에 특별하다. 완벽한 문장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첫째가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다. ‘행복하다, 슬프다, 서운하다, 울고 싶다’ 등의 감정 표현도 곧잘 한다. 내일은 또 어떤 말을 꺼낼지 기대가 된다. 오산리천에서의 가을과 겨울 풍경이 기대되는 것처럼 말이다.

글 장수정(2023 《화분》 시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