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택근 작가
한 사람이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지난다. 종종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은 그를 한결같은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무얼 찾으려고 매일 같은 길을 지날까. 누군가는 그에게 궁금함 혹은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를 잡아 세워 물었을 때, 이런 대답이 나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한 번도 같은 길을 걸은 적 없습니다.”
안택근 작가는 오산에서 태어나 수원을 거쳐 지금은 화성 보통리 저수지 근처에 터를 잡은 예술가다. 꼭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주변 환경은 한 사람에게 다양한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니까, 그에게 이동의 이유를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이동한 적 없다는 듯 대답한다. “화성, 수원, 오산은 산과 물의 경계로 볼 때 같은 지역으로 보는 것이 마땅해요.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공동체 문화와 환경의 파괴 등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지요. 지금은 행정 지역이 각각 독립해서 구분되었지만, 제가 대학에 다닐 때까지 화성과 오산은 하나였어요.” 지도상에 표시된 경계선이 아닌 자신에게 설득력 있는 기준으로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 땅을 이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는 화성과 오산, 두 도시를 넘나들며 유년 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굳이 따로 나눠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첫 작업인 ‘장자의 꿈’ 시리즈는 대학 졸업 후 용주사와 융건릉을 오가는 길에 마주친 ‘기안리 공동묘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어려서부터 소풍, 천렵, 낚시 등을 하던 곳에서, 그가 세상에 내놓을 이야기의 단초를 발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신기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고향은 어디일까.’ 그런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그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기가 어려우니 말이다. “특별히 구분하여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요. 제 일상이 화성이고 화성이 제 삶이에요.”
지금 그의 작업실이 위치한 보통리 저수지는 화성 안에서 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된 곳 중 하나다. 저수지 자체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며 물과 나무, 숲이 만든 풍경은 도시 안팎의 사람들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했다. 용주사, 융건릉 등의 관광지도 몫을 더했다. 자연스레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개발자들이 몰려들면서 풍경은 점점 더 기괴해졌다고 작가는 말한다. “인문적, 자연사적 주거 환경이 파괴되고 무분별한 공장지 조성이 이루어졌어요. 국가의 도시 정책 문제점을 드러내는 지역이 된 거죠. 그러다 보니 자연에 기반을 둔 제 성향상, 제 작품도 자연스레 이 지역의 환경 변화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어요.”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지켜보려는 그가 자주 찾는 곳은 앞서 말한 보통리 저수지와 태봉산이다. 그곳의 꽃(식물)과 죽은 나무들을 소재로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심리 변화를 들여다보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고, 또 숲을 찾아가는 그 자체가 작가에게 큰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태봉산을 찾는다. 감정 변화에 따르기보다는 찾을 때마다 바뀌고 있는 계절을 바라본다. “일일이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꽃을 촬영하고 기록하죠. 꽃이나 동식물이 사라지면서 새로운 종이 나타나기도 하고 서식지를 넓히기도 하는데, 그런 변화와 인간의 심리 변화가 어떻게 연관 맺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해요. 그 과정이 저의 삶이자 작업이기 때문에 앞서 말한 곳들이 일상의 장소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작가의 말을 떠올리며 태봉산을 오르는 길은 낯설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산이어서 그랬던 것만은 아니었다. 빼곡한 나무들과 거기에서 나는 소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할 숲의 순환이 나를 포함한 주변의 인간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해서 낯설었다. 나무와 내가 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끈으로 서로 균형도 잡고 먹을 것을 나눠 먹고 있다면 어떨까. 그런 동화 같은 생각도 해봤다. “숲을 걷는다.” 이 문장의 주체는 주로 걷는 사람이다. 길은 무대고 누구에게나 같은 길이었다. 하지만 나무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면. 그때의 길은 단순히 ‘지나치는’ 의미를 넘어선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 즉 생명을 소중히 받드는 모심의 마음이 필수 준비물이에요. 복장은 되는 대로 입고요.” 숲을 찾아가는 내게 작가가 일러준 말이 생각났다. 우리는 주체가 아니고 그저 각자의 준비물을 챙겨 길에 들어서는 것 아닐까. 주변 환경이 주체고, 그것은 우리의 태도에 따라 들려줄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통리 저수지와 태봉산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한 점’을 물었을 때 그는 ‘아무 언덕에서’라는 대답을 했다. 일몰이나 일출을 구경하는 것도 아무 언덕에서, 계절의 인사를 받는 일도 아무 언덕에서. 해가 질 무렵이면 일몰을, 일찍 일어난 아침이면 일출을 보러 가라고 말한다.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는 자각과 발견할 줄 아는 감각을 가진 이에게 당장 서 있는 장소와 시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때 자연은 움직인다. 앞서 말했듯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다. 끌어당기기도 하고 직접 다가오기도 한다. 한 장소를 매일 찾는 사람에게 왜 같은 곳을 반복해서 방문하냐고 물어보는 일은, 그 장소가 자연일 경우에는 어색한 질문이 된다. “오늘은 또 무엇을 봤습니까?” 오히려 이런 질문이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태봉산을 한참 걷다 내려와 저수지 근처에 차를 세웠다. 검색해 보니 일몰 시간은 7시 16분이었다. 내가 있는 곳에서 분천리 쪽으로, 해는 태봉산 능선 너머로 사라질 예정이었다. 작가의 지침에 따라 반나절을 보내는 동안, 내가 스스로 가보지 않을 곳에 있었다는 생각에 기분 좋은 웃음이 났다. 잠시 다른 사람이 돼 보는 기분.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더욱더 선명하게 하는 일이었다.
화성 출생. 중앙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2002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이후 5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화성과 수원에서 주요 작품 활동을 해 온 작가는 특히 자연과 인간의 관계 맺음에 질문하는 작업을 선보였으며, 현재도 4년째 ‘홀로움: 미스매치’라는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