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즐거움의 관계

DJ SEFO, 싱어송라이터 미지니

DJ SEFO와 싱어송라이터 미지니는 직업을 선택할 때 자신이 아닌 남을 먼저 생각한 보기 드문 이들이다. 직업을 고르는 기준은 바로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일 것. 목적이 확실했고 수단은 무엇이든 상관없었기 때문에 여러 갈래의 길을 고민했다. 그렇게 선택한 음악은 다행히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었다. 고맙게도 타인뿐 아니라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주기도 했 다. 2020년 10월 말, 그들의 넘치는 에너지가 화성 시민들에게 가닿았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무엇이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화분》 독자분들께 소개를 부탁드려요.

DJ SEFO(이하 ‘세’) 안녕하세요, DJ SEFO입니다. 디제잉을 하고 있습니다.

미지니(이하 ‘미’) 저는 즐거움을 노래하는 아티스트 미지니입니다.

 

디제이와 싱어송라이터에게 공연은 빼놓을 수 없는 삶의 활력일텐데, 요즘 공연하기에 여의치 않은 상황이에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다행히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뮤지컬에서 여주인공 ‘초희’ 역을 맡아 매일 열심히 연습 중이에요. 故 김현식, 유재하, 김광석선생님의 노래로 채워지는 뮤지컬인데요. 뮤지션 초희가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지쳐 음악을 포기할까 고민하다가 세 분의 가객과 판타지로 만나게 되면서 성장하는 내용이에요. 대학로에서 12월 4일부터 내년 1월 3일까지 공연하는데, 상황이 안 좋으니 걱정도 되고, 보러 오시라고 말하기도 죄송스럽네요. 그래도 방역을 철저히 한다고 하니까 적은 수의 관객분들이라도 들러주시면 어떨까 생각해요. 그 외에 버스킹은 겨울이라서 거의 끝났고, 방과 후 학교에서 아이들 레슨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공연을 못 해서 다른 일에 집중하는 중이에요. 앨범 작업도 하고, 세포 엔터테인먼트 소속사 아티스트들 관리도 하죠. 스튜디오사업도 확장하고 있어요. 원래 오산과 병점에 스튜디오가 하나씩 있었고, 지금 여기 수원 스튜디오는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었어요.그리고 코로나19 덕분에 아주 열심히 육아 중이에요. 아이가 작년 12월에 태어나서 할 일이 많아요(웃음).

 

화성시문화재단의 ‘찾아가는 공연장’ 팀으로도 활동하고 있죠?

네. 찾아가는 공연장은 매년 재단의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팀들이 화성시 전역에서 1년 동안 거리 공연을 하는 것인데요.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시민 여러분을 많이 찾아 뵙지 못해서 아쉬워요.

학교에도 가고 호수공원도 가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공연해요. 올해 한 번 공연하려다가 갑자기 비가 와서 취소되었지만요(웃음).

저는 아침 7시에 동탄역에서 출근하시는 분들을 위해 공연했어요. 역 내 플랫폼이었는데 다들 바쁘게 지나가느라 청소해 주시는 분들, 관계자분들을 관객 삼아 노래했어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목 풀고 현장에 가서 세팅하고 몸은 고단했지만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10월 말에는 재단 홍보 영상으로 동탄호수공원에서 래퍼 슬리피씨와 함께 ‘기분탓’이라는 곡을 공연했다고요.

재단에서 DJ SEFO와 래퍼 슬리피 씨와 협업을 하자는 연락을 받았을 땐, 제가 주로 어쿠스틱 음악을 하다 보니 ‘디제이랑 나랑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살짝 들더라고요.

저는 편곡을 담당했는데, 일단 무슨 노래가 됐든 EDM으로 잘풀어봐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사실 이번 작업은 편곡이라기보다 매시업에 더 가까워요. ‘기분탓’에 어울리는 노래를 맞물려서 틀었거든요. 매시업 할 때는 두 곡의 코드나 무드가 비슷해야 해요. 잔잔하게 가다가 갑자기 ‘콰과과광!’ 하면 안 어울리잖아요(웃음). 셋이 현장에서 처음 만나서 리허설로 호흡을 맞추고 공연을 했어요. 미지니 님도 원곡의 보컬 파트를 너무 잘 소화해 주신 것 같아요.

DJ SEFO

현장 분위기도 무척 좋아 보이던데, 소감을 들어보고 싶어요.

공연 준비하는 과정에도 사람들이 많이 몰렸어요. 카메라도 많고 뭔가 세팅이 되어 있으니까 ‘뭐야, 뭐야.’ 하시더라고요. 특히 어머님들이 많이 멈춰서 기다려 주셨어요. 최근에 코로나19 때문 에 공연에 목말라 있다가 오랜만에 탁 트인 자연에서 공연하니 좋더라고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것도요.

덕분에 오랜만에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날도 춥지 않았고 관객분들도 꽤 많이 함께해 주셨어요. 참, 슬리피 씨는 라디오를 통해 많이 접해서 얼굴이 익숙하지는 않았는데 너무 잘생기시고 키도 크셔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오랜만에 근질근질하던 몸이 풀렸을 것 같아요. 세포 님은 디제이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원래 직업군인이었어요. 해병대 부사관 출신이죠. 군에서 중사로 있을 때 디제이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전역했어요.

 

해병대 부사관이라니 특별한 이력이네요.

전공은 조선학과예요. 배 설계하는(웃음). 전공과 다른 일을 해도 그동안 배워둔 여러 가지 일들이 다 도움이 되더라고요.

 

원래 음악을 좋아한 거예요?

그건 아니에요. 다만,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그런 일이 뭐가 있을지 찾아 왔던 것 같아요.요리를 할까, 목수를 할까, 아니면 용접을 해볼까 고민했어요. 무엇이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10만 명의 관객이 모인 해외 디제이페스티벌 영상을 보게 됐어요. 디제이가 음악을 트니 사람들이 너무 즐거워하는 거예요. 그때 이거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겠다 싶었어요.

 

처음에는 거리 공연으로 시작했다고요.

옛날에는 클럽도 많이 다녔는데, 제가 담배를 안 피우고 술도 잘 안 하다 보니 담배 냄새 배는 게 싫더라고요. 저는 자연을 좋아해요. 그래서 실내보다 야외를 택했고 길거리로 나갔죠. ‘돈 못 벌면 어때? 길에서 공연하다 죽지, 뭐.’ 이런 마음이었어요. 진짜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다들 그렇지 않나요?

 

글쎄요(웃음)…. 쉽지 않은 마음가짐이죠.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전역하기 한 달 전에 메르스가 터져서 잡혀 있던 공연들이 다 취소됐어요. 현실이 그렇더라고요. 예술가들에게는 공연계 비수기인 1, 2월이 가장 힘든 시기인데, 그 시기가 오니 집에만 있게 되고 멍해지고 미래가 걱정되더라고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유아 체육 강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디제이도 강사도 사이드 잡으로 생각하고 쭉 병행해 보자는 생각으로요. 겨울이 올 때마다 힘들었지만 강사일을 하니까 좀 나았어요. 그러다 2017년에 ‘세포 스튜디오’를 차렸는데 인테리어 사기를 당해서 디제이로 모은 돈을 다 날려 버리고…. 우여곡절이 어마어마하죠(웃음). 무너질 뻔했지만 잘 버틴 것 같아요.

싱어송라이터 미지니

미지니 님 역시 밴드 ‘오유아이’의 보컬을 시작으로 꾸준히 활동 을 이어가고 있어요. 뮤지션 생활을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지 궁 금해요. 

제가 충남 아산 인주면 공세리 출신이에요. 앞에는 파밭이 펼 쳐져 있고 뒤에 산이 있는 시골이죠. 실용음악을 전공했지만 학교가 지방에 있어서 서울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어요. 한 교수님이 저에게 본인이 운영하시는 학원의 실장 겸 전임보컬 트레이너로 일하는 게 어떠냐고 제의를 주셔서 졸업하자마자 서울에 올라왔어요. 졸업 공연을 함께 한 친구들이랑 다 같이 올라와서 ‘오유아이’를 결성했어요. 주로 클럽에서 공연을 했는데 홍대 클럽이 어려워지면서 하나둘 문을 닫고 저희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더라고요. 모두 고민이 많아지면서 한두 명씩 떠나고, 어쩌다 보니 저만 남게 되었어요. 친한 지인에게 거리 공연에 관련된 국가 지원 사업을 소개받았고, 그렇게 거리 공연을 시작하게됐죠. 솔로 앨범도 내고요. 지금은 고향 친구들과 ‘햇바라기’라는 어쿠스틱 팀을 만들어서 두 가지를 병행하려고 해요.

 

음악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있을 것 같아요.

세포 님과 비슷해요. 즐거움을 주는 것! 저는 어릴 때 꿈이 개그우먼이었어요.

어, 저도 중학교 때까진 그랬어요!

정말요?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도(웃음)…. 그런데 친한 친구가 “너 노래 잘하잖아. 노래 한번 해봐.”라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가 학교 다닐 때 모든 축제에 저를 내보냈어요. 옷가지며 뭐며 다 챙겨 주면서요. 귀가 얇아서 그쪽으로 진로를 틀었죠. 개그우먼이 아니라 뮤지션도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걸 느끼면서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전공까지 이어지게 됐어요. 

 

미지니 님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며 가장 많이 본 이미지가 기타를 들고 거리에 있는 모습이에요. 버스킹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 같아요.

좋아해요. 클럽 안에서 공연을 하면 주로 아는 사람들이 찾아와요. 재미있는 상황이 일어날 확률이 낮죠. 그런데 거리 공연은 불특정 다수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거잖아요. 더 많은 사람에게 제가 가진 에너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제일 좋은 점인 것 같아요.

 

세포 님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네요.

저도 그런 이유로 거리 공연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거리 공연하다 보면 변수가 정말 많아요. 관객분이 갑자기 앰프 선을 끊어버린다거나 전원을 팍 빼버린다거나…. 

한번은 취객이 제 기타를 연주해 보겠다고 하셔서 막았더니, 소동을 피워서 경찰을 부른 적도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 불러라!” 하고 소리 지르는 분도 있었죠.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요즘에는 그냥 “좋아하는 곡 뭔지 알려 주시면 제가 다음 주에 연습해서 올게요.” 하고 넘겨요. 사실 다음 주에 공연이 없는데도요(웃음). 그렇게 관객들을 달래는 노하우가 좀 생겼어요.

맞아요. 저는 그래서 거리 공연 경험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해요. 저희 소속사 아티스트들도 대부분 거리 공연으로 시작한 친구들이에요.

 

두 분의 시작점이 비슷하네요. 어릴 적 꿈도, 음악을 하게 된 이유도, 거리 공연을 사랑하는 이유도요.

그러게요. 신기하네요.

그래서 말이 잘 통했나 봐요.

이번 호 주제가 ‘방향’이에요. 지금까지 걸어오며 ‘이 길이 맞을까, 다른 길로 가볼까?’ 생각한 적도 있을 테지만, 조금 흔들리더라도 결국 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고등학교 때부터 10년 정도 음악을 했네요. 사실 중간중간 슬럼프도 오고 그만둘까 생각도 했지만 여기까지 오고 버틸 수 있던 힘은 저에 대한 믿음인 것 같아요. ‘나는 절대 그냥 죽지는 않는다.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이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컸나 보네요. 

그러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서울 와서 슬럼프가 너무 심해서 매일 밤 울고 사람 만나는 것도 무서운 상황이 계속됐었어요. 그걸 극복해낸 게 ‘지난 일에 신경쓰지 않고 다 털어버리자. 정말 힘든 일이 있어도 한 번 울고 잊어버리자.’ 하는 생각을 습관화한 덕분이에요. 그렇게 살다 보니까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거고요.

 

후회한 적은 없어요?

제일 많이 후회하는 건 좀더 적극적으로 빨리, 많은 걸 해보지 못한 거예요. 시골에서 24년을 자랐기 때문에 시야가 좁았어요. 음악 하는 동료들, 프로 뮤지션들을 만날 계기도 기회도 적었죠. 서울에 온 지 6년 정도 된 지금은 시야도, 활동 폭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어요. 대학교 때 더 빨리 시작하고, 회사도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써놓은 곡으로 망설이지 말고 앨범도 낼걸, 하는 생각도 드네요. 하지만 남들보다 늦어도 천천히 가다 보면 같은 곳에서 만나지 않을까요? 늦게 출발한 만큼 체력이 남아 있으니까 꾸준히 가면 되죠. 언젠가는 목표 지점에 도달할 테니까요.

 

세포 님은 과거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사기 당하지 말자? 농담이고요(웃음). 영어를 열심히 해 놓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영어에 서툴러서 해외에서 오는 좋은 기회를 많이 놓쳤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작곡을 좀더 열심히 하라는 말이요.

 

지금까지 음악을 하게 해주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한 가지인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자.’ 그 마음 하나로 이 직업을 계속해 왔어요. 저희 스튜디오가 강남, 홍대보다 2분의 1 정도 저렴한 이유도 예술인들이 경제적인 여건을 생각하지 않고 좀더 마음 편히 연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그것도 사람들을 돕는 일이라고 할 수 있죠. 나중에 또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하는 일들은 모두 놓지 않으려고요.

 

모든 질문이 ‘즐거움’으로 귀결되네요. 앞으로 또 어떤 방향으로나아갈지 궁금해요.

준비 중인 솔로 앨범이 있어요. 원래는 편곡을 편곡자에게 맡겼었는데 이번에는 제가 편곡까지 다 해보고 싶어서 마무리해 두었고, 보컬 녹음만 하면 완성돼요. 완성된 앨범은 내년 초에 낼 예정이고요. 연습 중인 뮤지컬도 잘 끝낼 거예요. 예전 같았으면 12월에 다음 해 계획을 세우는데, 올해는 앞이 불투명한 상황이라서 거리 공연뿐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열어놓고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 같아요.

코로나 때문에 당분간 공연이 없을 것 같아요. 영상 위주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디제이는 다른 아티스트에 비해서 영상을 통해 표현하기가 어려워요. 디제잉은 보고 즐기는 쇼잖아요. 그래서 작곡에 몰두하려고 해요. 새로운 도전도 준비 중이에요. DJ SEFO가 아닌 다른 캐릭터를 탄생시킬 거예요. 저를 드러내지 않고 베일에 싸인 느낌으로 가보려고 해요.

글 이다은

사진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