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중들은 소유가 아닌 경험을 원한다

경험소비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는 이유

이제
대중들은
소유가 아닌
경험을 원한다

경험소비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는 이유

흔히 소비라고 하면 상품을 구매하고 소유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소비는 그 차원을 넘어선다. 구매와 소유는 소비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거기서부터 파생된 다양한 경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덕현(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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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TAR(지스타) 2025’ 현장 모습 ©G-STAR TV

그들은 왜 현장에 모였을까

지난 11월 13일부터 16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G-STAR(지스타) 2025’에는 전국의 ‘게임 덕후’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코스튬을 차려입고 모여들었다. 평범한 복장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많은 코스어(코스튬 플레이어, Costume Player)들이 모인 이 행사는 게임 캐릭터들의 축제 그 자체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속 캐릭터들이 현실로 걸어 나오는 경험을 이들 스스로 갖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코스어들은 길게 줄지어 서서 함께 사진 찍기를 원하는 게임 덕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게임 속 포즈를 취하며 행사장을 활보했다. 행사가 끝난 후 행사장 밖에서도 그 코스튬 그대로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는 그들에게 이 경험의 여운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지스타 2025’에 모여든 게임 덕후들은 아마도 이미 저마다의 게임 타이틀을 구매한 소비자들일 게다. 물론 이 국제적인 행사에는 새로 소개되는 게임을 먼저 접해보기 위해 찾아온 이들도 적지 않겠지만, 이미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고픈 이들도 많다. 코스어가 되어 현장에 나온 이들도 그렇고,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게임 속 세계를 현장에서 만끽한 이들도 그렇다. 이들에게 소비는 단순한 소유의 개념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세계관을 공유하며 새롭게 이어지는 다양한 경험들까지가 ‘찐’ 소비다. 그러니 어찌 보면 세계관이 살아있는 소비란 끝이 있을 수 없다. 이들은 그 세계관이 펼쳐진 곳이라면 어디든 언제든 달려갈 것이니 말이다.

이것은 현재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이른바 ‘경험소비’가 과거와는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이 물품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이들의 소비는 물품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 물품이 가진 이야기, 취향은 물론이고 철학, 가치관 등을 공유하며 그 세계관을 구현해 낸 다양한 경험과 시간 그리고 기억들까지가 이들이 소비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G-STAR(지스타) 2025’에 입장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 ©G-STAR TV

그들은 왜 굿즈를 사기 위해 발품을 팔까

최근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통해서도 이 경험소비는 폭발했다. 이미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싱어롱 상영회’라는 이름으로 극장에서 개봉된 작품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이들이 원한 건 단지 그 영화의 콘텐츠적 소비가 아니라, 그 영화를 함께 보며 노래 부르는 ‘경험의 공유’였다. 그 순간을 기억하고 기록(사진이나 글을 SNS에 남기는 식으로)하는 경험을 소비하는 것. 이것이 이미 콘텐츠를 접했던 이들조차 극장으로 다시 모여들게 하고 이른바 N차 관람(하나의 작품을 여러 번 관람하는 것)을 하게 만든 이유다.

또 이 영화로 인해 엉뚱하게도 국립중앙박물관이 오픈런 사태를 겪게된 것 역시 경험소비 트렌드 때문이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까치 캐릭터를 모티브로 한 굿즈를 사기 위해 관람객들이 몰려든 것. 국립중앙박물관의 사례처럼 최근 들어 굿즈 비즈니스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그 이면에 깔린 것이 바로 경험소비에 대한 욕망이다. 굿즈는 물론 상품으로 소비되지만, 거기에는 상품 그 이상의 의미가 담긴다. 호랑이와 까치 캐릭터가 달린 키링을 구매하는 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콘텐츠의 일부분을 나의 일상으로 가져오는 경험이다.

최근 들어 새로운 덕질 문화로 떠오른 ‘예절 숏’을 떠올려 보라. 여행지에서 혹은 식당 등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굿즈 또는 포토카드를 놓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이 독특한 덕질 방식은 캐릭터와 일상의 경험을 공유하고픈 새로운 소비문화가 아닐 수 없다. 이제 굿즈 소비자들은 캐릭터와 공유한 경험들을 SNS에 올리는 것까지를 하나의 소비로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표출하는 행위로서의 소비다.

흔히 이러한 소비를 우리는 덕질 혹은 ‘팬덤 소비’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취향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현시대의 새로운 욕망이 담겨있다. 정체성이라고 하면 우리는 주로 ‘주어진 정체성’을 떠올린다. 예를 들어 국가나 인종, 민족, 나이, 성별, 언어, 빈부 같은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정체성이 그것들이다. 보다 주체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길 원하는 현시대에는 ‘주어진 정체성’만큼 ‘선택하는 정체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 내 취향을 저격하는 것 혹은 나아가 내가 공감하는 철학이나 세계관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좋아하고 그 세계관을 나의 정체성으로 선택한 팬덤은 그래서 저 ‘주어진 정체성’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국가와 언어, 성별, 나이 등이 하등 상관없이 K-팝 팬덤이라는 취향 하나로 묶이는 것이다.

굿즈는 그래서 그저 단순히 팬들을 위한 상품이 아니라, 그들이 선택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어째서 덕질을 하는 이들이 한정판 굿즈 하나를 사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걸 감수하는가가 이해된다. 그 굿즈는 물론이고 기다리는 경험까지가 모두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출연진에 열광하는 팬들 ©인스타그램 @kpopdemonhuntersnetflix

선택하는 정체성, 취향 중심으로 묶이는 새로운 소비자들

바로 이 ‘선택하는 정체성’으로서의 취향을 중심으로 경험소비를 하려는 소비자들은 과거 전통적 개념의 소비 패턴을 뛰어넘는다. 예를 들어 과거 마케팅 이론에서 고소득층이 럭셔리 문화를 향유하고 저소득층이 대중문화를 소비한다거나, 20대는 진보적이고 60대는 보수적이라는 식의 세대 구분에 의한 소비 분석은 이 새로운 소비자들에게는 그다지 유효하지 않다.

앞서 예로 들었던 ‘지스타 2025’ 행사장의 이색적인 풍경이 그렇다. 막연히 게임은 젊은 세대의 전유물일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 행사장에는 중장년들도 적지 않았다. 게임이라는 하나의 취향으로 묶여 있을 뿐, 세대 구분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걸 그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신드롬으로 인해 남산 성곽길이나 경복궁에서 인증 숏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인들이 찾을 것 같은 공간에 외국인들이 앉아 있고, 우리도 잘 입거나 쓰지 않는 한복과 갓을 외국인들이 입고 쓰고 있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그건 국가나 언어의 차원을 뛰어넘어 자신의 취향을 선택해 그것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드러내려는 새로운 소비자들의 등장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선택하는 정체성으로서의 취향 소비, 경험소비는 ‘가격의 장벽’ 또한 무너뜨린다. 점심으로 간단하게 라면을 먹고, 후식으로는 비싼 마카롱을 사 먹는 이른바 ‘가심비’ 소비의 등장이다. 일상은 검소하게 생활하다가도 자신의 취향을 저격하는 경험에는 값비싼 지출을 마다하지 않는다. 매달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1년에 한 번 럭셔리한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적지 않고, 아낀 돈으로 값비싼 공연에 돈을 쓰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들은 일상적인 생필품이나 관심이 없는 영역에서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다가도, 자신이 가치를 두고 있는 특정 경험 영역인 여행, 공연, 미식, 덕질 등에서는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취향을 기준으로 초저가와 초고가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소비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아날로그 경험과 불편함의 역설

경험소비의 또 한 측면은 갈수록 디지털화되면서 비슷비슷해지는 경험들(비대면)과는 다른 나만의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욕망과도 연결되어 있다. 디지털 문화란 ‘복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누구나 쉽고 값싸게 경험할 수 있지만, 고유성이나 개성을 찾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 반작용으로 경험소비의 가치가 커지게 된다.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만 열면 똑같은 음원을 무한 반복해서 들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콘서트장을 찾게 된다. 현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일회성의 음악은 복제된 음원이 줄 수 없는 나만의 시간과 기억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뮤지컬에서 시작해 연극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공연 팬덤의 급증과, 거의 1년 내내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 열풍은 이러한 경험소비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저마다의 취향으로 현장을 찾은 관객들은 그곳에서 겪은 자신만의 경험을 SNS를 통해 공유한다. 복제된 경험만 수용하던 단계에서 이제 자신만의 경험을 생산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증표가 된다. 복제 같은 편리성을 추구하는 기술들이 지워버린 고유한 경험을 오히려 불편함을 감수함으로써 되찾으려는 역설적인 소비 방식도 등장한다. 음원 대신 발품을 팔아 LP를 사서 듣고, 스마트폰 대신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인화하고, 어찌 보면 고행에 가까운 걷기나 마라톤에 도전하는 일련의 선택들이 그것이다.

한때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건 무엇을 소유했는가였다. 노력에 의해 얻어진 것들도 있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주어진 것들도 적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것을 어떤 이들은 아무 노력 없이 갖고 태어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주어진 소유가 과연 그가 진정으로 어떤 사람인가를 나타낼 수 있을까. 가진 게 아무리 많아도 진정성 없는 삶이 얼마나 많은가. 반대로 가진 건 없어도 충분히 충만한 삶 역시. 그래서 우리는 현장을 찾아 나서고, 굿즈를 사서 가방에 달아 그 세계관과 철학을 공유하려 한다. N차 관람을 하며 함께 나누는 경험을 기억하고 기록하려 한다. 때론 그 경험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상관없다. 소유 그 자체를 넘어서는 진정성 있는 경험들만이 이제는 나를 드러내고 규정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경험소비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는 이유다.

<화분> Vol.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