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툰_글·그림 언널브(@un.nerve)
글·그림 언널브(@un.nerve)
나는 종종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것들에게 돌아가곤 했다.
음악도 그랬다.
아주 오래간만에 최신 음악 차트를 열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는 어떤 것들인지,
또 내가 유행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가볍게 확인해 보고 싶어서였다.
곧이어 차트 맨 위의 1위 곡을 재생해 본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몇 초쯤 흘렀을까.
리듬도, 멜로디도, 가사도 귓속 깊이 닿지 못한 채
귓바퀴 언저리만 괜히 간지럽히고 스쳐 지나갔다.
실로 잘 만들어진 노래라는 건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이유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부터 나는
‘차트 1위’라는 이유만으로는 노래를 찾아 듣지 않게 되었다.
유행의 흐름에서 제법 멀어졌다는 게 확실해졌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조급해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나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듯,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이는 일에 조금 더 까다로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결국, 늘 듣던 귀에 익은 노래들을 찾아간다.
몇 년을 들어도, 몇 시간을 한 곡 반복한다 해도
좀처럼 질리지 않는 나만의 리스트가 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알게 된 노래, 애절한 라디오 사연 뒤에 흘러나오던 노래,
길을 걷다가 우연히 귓가에 들어온 노래 등등.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던, 다시 듣고 싶은 노래들이 모여있는 리스트.
계절에 따라, 장소에 따라, 혹은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나는 그때마다 필요한 노래를 자연스럽게 꺼내 듣는다.
여름 끝자락의 아침 바람이 부쩍 서늘해질 때면
어떤 노래는 공허한 마음을 채워 주었고,
파도가 느리게 밀려오는 겨울 바다 앞에서는
쓸쓸함을 조금 더 깊게 느끼고 싶어 잔잔한 노래를 틀었다.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던 순간에는
간절한 가사 한 줄이 나를 붙잡아 주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시간들에 익숙함을 덧대며 살아왔으며,
노래는 내 인생 사이사이에 꽂혀 있는 책갈피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 갈피를 따라 언제든
원하는 계절로, 그리운 장소로, 특정한 기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잊고 지냈던 감정들을 다시 읽어 내려가듯
찬찬히 되짚어 볼 수도 있었다.
넓게 소비하고 빠르게 지나치는 것보다
이미 좋아하는 것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일.
그것이 내가 무언가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오늘도 자연스레 익숙한 노래를 하나 꺼내 재생한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며 햇볕이 살짝 따가워지기 시작한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수년째 들어 온 가사와 멜로디 속에서 나는 이상하리만치 편안해진다.
노래가 흐르는 동안 나는 과거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진다.
작년 이맘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같은 노래를 듣고 있으면서도
조금은 다른 마음가짐으로 계절을 지나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 해도 노래는 변하지 않는데
그 노래를 듣는 나는 계속해서 변해 간다.
그래서 나는 익숙함 속에서 매번 새로운 나를 만나기도 한다.
익숙한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습관은
변화를 거부하려는 까다로운 고집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나를 만들어 온 시간을 쉽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아쉬운 마음들을 대하는 하나의 방식에 가깝지 않을까?
새롭고 멋진 것들은 앞으로도 계속 쏟아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붙잡으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대신 오늘도 이미 알고 있는 가사를 흥얼거리고
변함없는 멜로디에 고개를 까딱거리며
지나온 나의 시간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화분> Vol.70
에디터 ***
포토그래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