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는 마음, 돌아보는 오늘

화성시문화재단 시민문화국 독립운동문화팀 이혜빈

드넓고 푸르른 화성 우정·장안의 땅에는 슬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길게 이어 진 31킬로미터 길에 남아 있는 3.1운동의 격렬한 흔적들. 잊히지 않을 그날 을 연구하고 돌아보는 일은 계속 이어진다. 사려 깊은 시선과 꼼꼼하게 기억하 고자 하는 마음이 여기 남아 있다. 소중한 역사를 지켜가는 기록을 살펴본다.

화성시문화재단 시민문화국 

독립운동문화팀 이혜빈

31킬로미터 길 기억하는 역사

오는 길이 참 좋았어요. 자연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보기 좋더라고요. 이곳에서의 근무는 어떤가요?

 

고향이 부산의 시골 동네라 이런 환경에 익숙한 편이지만, 자연에 둘러싸여 있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에요. 화성은 서울과 가깝기도 해서 문화 활동을 하기에도 좋고요. 얼마 전까지 부산의 박물관에서 근무하다가 새로운 지역이 궁금해져서 올해 초 재단에 입사했어요. 화성에서의 생활은 처음이지만 나름대로 적응하면서 만족하고 있어요.

그동안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고고미술사를 전공했어요. 박물관에서 유물을 연구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 일을 해왔죠. 경력을 이어 학예직으로 재단에 입사하게 됐어요. 지금은 독립운동문화팀에 속해서 고증을 통해 복원된 만세길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독립운동문화팀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들었어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기본적으로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과 만세길 전체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일을 해요. 행정 업무를 넘어서 모든 구성원이 학예 업무에 중점을 두고 일하고 있죠. 관련 유물을 기증받고 연구하고 해석하는 작업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화성의 독립운동사를 보존하는 데 힘쓰고 있어요. 역사를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과거를 잘 모르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하고요. 여러 콘텐츠를 만들고 있지만 요즘은 코로나19로 많은 프로젝트가 중단되었어요.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변화를 주고 있는 시점이에요.

작년이 3.1운동 100주년, 올해로 101주년이 되어 많은 행사를 앞두었을 텐데 아쉽네요.

 

맞아요. 우선 독립운동문화팀에서 진행하고 있던 학교연계교육은 진행이 어렵게 됐어요. 만세길 서포터즈 모집도 진행 중이었는데 잠시 멈춘 상황이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새롭게 진행하는 일도 있어요. ‘만세길 해설사 양성’이라는 주제로 만세길 해설사 역할을 해주실 분들을 모집하고 전문 교육을 시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현재는 모집을 마치고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있죠.일반 시민분들이 만세길에 얽힌 역사를 모르고 걸으면 이 길의 소중한 가치가 흐려질까, 하는 걱정에 시작하게 되었어요. 만세길 곳곳의  땅에  담긴  역사적  사실을  해설하고  알기  쉽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분들이 필요했죠. 독립운동문화팀 안에서 직접 수행하는 방법도 있지만 시민에 의해서, 시민이 자체적으로 역사를 돌아보고 해석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많은 시민분들의 참여를 유도했어요.

좋은 취지를 가진 프로젝트네요. 어떤 분들이 지원하셨나요?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지원해 주셨어요. 그 중 해설 관련 자격증을 가진 분들, 관광 분야, 영어 통역 관련 등등 아주 전문적인 이력을 가진 분들도 계셨죠. 해설 경험이나 전문 지식도 중요하지만 저희는 만세길에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으신지, 역사를 돌아보고 전하고자 하는 그 열정에 더욱 집중했어요. 3.1운동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과거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를 잘 헤아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전해 주실 분들을 뽑기 위해 신중을 기하고 있어요.

어떤 분들이 해설을 맡아주실지 기대돼요. 만세길 영상 콘텐츠 도 만들고 있다고 들었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코로나19 때문에  직접  대면하는  행사는  가급 적 피하고 있어요. 그래서 온라인으로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 들고자 영상 제작을 기획했죠. 밖으로 나오지 않고도 만세길을 걷 는 듯한 느낌을 주는 데 주력해서 시나리오도 개발하고 있어요. 만 세길이 개통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카이브 자료가 다소 부족한 데, 이를 채우고자 하는 목적도 있고요. 항공 촬영과 로드 촬영 을 함께 진행하면서 간접적으로라도 만세길을 체험하고 있다는 인 상을 남기려 해요. 아직 시설 면에서 부족한 부분들은 실사 영 상 안에 그림을 삽입해 대체하는 연출도 구성하고 있어요. 다양 한 방식으로 모자란 부분을 메꾸고 더불어 만세길을 조금 더 알 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해요.

만세길을 알리고 다듬는 일은 단순한 업무를 넘어 특별한 가치 를 남겨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도 많은 깨우침을 얻고 있어요. 먼저 역사를 바라보 는 시선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는 고고학 을 공부하면서 되도록 사실과 반증, 유물에 남겨진 흔적을 바탕으 로만 해석하는 일에 집중해 왔어요. 고증이라는 작업 자체가 사실 만을 기반하여 해설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죠. 그런데 만세길 을 공부하면서 3.1운동의 역사를 감정적인 부분을 모두 배제하 고 해석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지나간 일로 여기 며 객관적으로만 바라보기엔 아직 이 땅에 살아 있는 반증과 역사 가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물론 감정에 빠져 편중된 해석을 하 면 안 되겠지만 조금 더 그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재현하면서 당 시 독립운동가분들의 마음을 잘 전할 수 있는 표현을 깊이 고민하 게 됐어요. 단순히 사실만을 나열하기를 넘어서 과거의 먼 역사 를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방식을 찾으려 애쓰는 과정을 거쳤죠. 고 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역사와 과거 를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가지면 좋을지 한 번 더 생각하는 중요 한 계기가 됐어요.

무거운 역사를 전하는 일에 부담감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무척 컸어요. 실제로 안내 책자를 작성하면서 단어 하나하나 에 신중을 기했거든요. ‘가장’, ‘특히’ 같은 역사적 사실을 강조하 는 용어를 쓸 땐 더 확실한 반증이 필요했기 때문에 자료를 연구하는 작업이 더 오래 걸리기도 했어요. 감정적인 지점을 배제할 수 는 없었지만 사실만을 바탕으로 표현을 조정해야 하는 부분도 있 어서 어려운 상황도 생겼어요.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 더 욱 집중했죠. 부담감이 몰려오면 물론 힘들기도 하지만 꼭 필요 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더 확실하고 진실된 자세로 역사 를 전할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역사인 만큼 만세길을 알리는 과정에서 아쉬운 점들도 생 길 것 같아요. 보충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화성의 만세길 개통이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시설과 환경적으 로 개발이 부족한 부분들이 있어요. 시내와 떨어진 곳에 위치해 서 교통 입지적인 부분에도 아쉬움이 있고요. 그래서 더 다양한 의 견을 제시하는 과정에 돌입했어요. 현실적으로 시행이 어려운 점 이 있기도 하지만 역사를 잊지 말자는 마음으로 다가가려 해요.

앞으로 재단에서 맡고 싶은 다른 일이 있나요? 

 

시민들과 함께하는 작업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어요. 방문자센 터의 작은 전시 공간을 꾸밀 때도 제암초등학교 아이들의 작품으 로 채우면서 보람을 느끼기도 했는데요. 혼자서 진행하거나 팀 내 에서 하는 업무도 좋지만 더 넓은 환경에서 다양한 시민분들과 함 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활동에 눈이 가요. 더 따듯하고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꿈꾸고 있어요.

만세길 사이의 집

차병혁(1889. 12. 11.~1967. 2. 4.)은 우정·장안 지역의 3.1운동 당일,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며 운동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만세 시위가 일어난다는 정보를 듣고 마을의 이장이자 8촌으로, 한마을에 이웃한 차병한과 함께 아침 일찍 장안면사무소로 갔습니다. 차병혁은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 장안면사무소에 신발을 신은 채 들어가 ‘사무 따위는 보지 말고 빨리 나와서 만세를 불러라.’라고 시키고 면장과 면서기들을 끌어내 시위에 참여시키는 등 만세 시위에 앞장섰습니다. 이후 차병혁은 우정·장안 지역의 3.1운동 주도자로 체포되어, 징역 3년 형을 확정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정부는 차병혁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차병혁의 생가는 화성 지역 독립운동가의 생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입니다. 차병혁은 3.1운동에 참여하고 서대문에서 옥고를 치른 이후 집으로 돌아왔고, 해방 이후까지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현재는 기와집 행랑채가 남아 있어,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차병혁 생가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버들안길 44-7

글 김지수

사진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