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가장 자유로운 언어

트럼펫 연주자 윱 반 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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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자유로운 언어

트럼펫 연주자 윱 반 라인

네덜란드에서 온 재즈 트럼펫 연주자 윱 반 라인(Joep Van Rhijn)은 특유의 서정적인 음색으로
듣는 이의 마음에 감동을 선사한다. 인터뷰 전에도 녹음에 한창이던 그는 성실한 음악가이면서
동시에 관객들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무대를 만들고 싶은 로맨티시스트다. 올가을 열릴 <2025
화성재즈페스티벌>에 서는 그를 만났다.

차예지(편집실) 사진 김성재(싸우나스튜디오)

음악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네덜란드 북쪽에서 태어났어요. 네덜란드에는 마을마다 윈드(관악)밴드가 있어요. 취미로 할아버지도 아이들도 같이 즐기며 악기를 배울 수 있고 합주도 할 수 있어요. 그렇게 음악을 시작했는데, 제가 살던 마을에는 트럼펫 연주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트럼펫을 연주했어요.
어머니가 재즈 음악에 관심이 있으셔서 어린 시절 재즈를 가끔 들을 기회가 있었고, 저도 재즈를 좋아하게 되어 배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던 지역의 선생님은 클래식 전공이어서 처음에는 클래식밖에 선택지가 없었어요. 그러다 16살에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갔을 때 학교 재즈 밴드에서 연주하게 됐어요.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와서는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그때부터 재즈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왜 재즈였을까요?

클래식은 규칙이 많고 기술적으로 악기를 잘 다루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처음에는 재밌지만 배워갈수록 아쉬운 부분이 있어요. 좀 더 자유롭게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솔로로도 활동하시고, ‘라임(LIME)’이라는 팀을 이끌고 계시기도 합니다. 라임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작년에 라임이라는 팀을 만들었어요. 제가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는 콘트라베이스, 피아노, 트럼펫 이렇게 셋이 트리오로 많이 활동했어요. 그러다 피아노나 기타와 같은 코드 악기 없이 멜로디 중심으로 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라임’은 단어부터 신선한 느낌이 들고, 그래서 새로운 음악을 하겠다는 뜻을 담았어요. ‘Lyrical, Improvised, Music, Ensemble(서정적인, 즉흥적인, 음악, 앙상블)’의 약자이기도 해요. 라임은 플루겔혼, 테너색소폰, 콘트라베이스, 퍼커션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여기서 확장된 버전인 ‘LIME XL’은 플루트, 트럼펫, 트롬본, 드럼이 더해져 에너제틱하고 풍성한 사운드가 특징입니다.

윱 반 라인의 음악적 특징이나 소리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걸 제 입으로 얘기하는 게 쉽지 않은데(웃음), 리뷰를 보면 소리가 따뜻하다는 표현이 자주 보여요. 저는 복잡한 사람이 아니라서 테크닉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듣기 좋은, 블렌딩이 잘 된 음악을 하는 게 특징이에요. 재즈 역사에서 생각하면 뉴욕의 역동적인 느낌보다 캘리포니아의 부드러운 스타일이요. 최근 몇 년 동안은 플루겔혼도 많이 연주하고 있는데 플루겔혼의 음색이 다른 악기들과도 잘 어우러져서 마음에 들어요.

그런 정서가 듣는 이에게 잘 전달되는 것도 중요할 텐데, 공연할 때 어떤 부분을 신경 쓰시나요?

공연은 우리끼리만 하는 게 아니고 관객들도 다 같이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오픈 마인드로 함께 분위기를 느낀다고 생각하고 연주해요. 특히 재즈는 공간과 분위기에 따라 연주도 많이 달라져요. 작은 재즈클럽이라면 듣는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연주자를 서포트하는 느낌이 있잖아요? 제 음악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서 특별히 어떤 레퍼토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멘트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관객들과 소통하면서 공연합니다.

3월에 나온 앨범 ‘Between Fact & Fiction’은 어떤 이야기와 음악을 담고 있나요?

몇 년 동안 피아니스트 조윤성 씨와 같이 작업하고 있어요. 이번 앨범도 같이 했고요. 저는 원래 앨범을 만들 때 노래를 만들고 모아서 앨범을 내는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타이틀을 정하고 콘셉트를 만든 다음 그에 어울리는 곡을 작곡했어요. 앨범 이름이 ‘사실과 허구 사이’라는 뜻이잖아요. 음악을 할 때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 나누는 감정이 있는데 그건 ‘사실’, ‘팩트(Fact)’로 정의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 마법 같은 순간을 ‘Fiction’이라고 표현해서 둘사이의 여백을 담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노래 제목을 네덜란드어로 많이 지었어요. 그렇게 한번 해보고 싶기도 했고, 공연할 때 할말이 별로 없으면 뜻을 설명 해줄 수도 있고요. 하하. 첫 번째 곡인 ‘Vergane Glorie’는 네덜란드어로 ‘사라져간 영광’이라는뜻인데 문 닫은 놀이공원이나 무너진 성, 노인의 주름진 피부 같은 사라져가는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조윤성 피아니스트를 비롯해 여러 악기나 장르와 협업하기도 합니다. 연주자에게 협업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재즈 연주자들은 서로 끊임없이 반응을 주고받습니다. 저에게 협업은 음악으로 나누는 대화이기도 해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하나의 곡을 가지고 해석하는 것도 달라서 재밌어요.

작곡할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저는 주로 피아노로 작곡을 시작합니다. 피아노나 트럼펫으로 즉흥연주를 하면서 영감을 얻어요. 또 아이들과의 추억, 아름다운 풍경, 다른문화를 겪어보고 만나는 것이 큰 영감이 됩니다.

향남에서 진행되는 <2025 화성재즈페스티벌>에서는 어떤 무대를 준비하고 계신가요?

이번에는 제 팀 라임과 함께 공연할 예정입니다. 라임의 레퍼토리도 보여드릴 것 같고, 제 앨범에 있는 곡도 새롭게 해석해서 몇 개 할 것 같아요. 많이 아시는 재즈 곡들도 연주하고요. 아름다운 멜로디가 많은 무대가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재즈가 어렵지 않다는 걸 전달하고 싶어요. 세련되지만 어렵지 않고, 에너지가 가득하지만 과하지 않은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관객분들도 박수 치고 춤도 추면서 함께 즐겨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요즘 SNS의 시대가 되면서 긴 호흡의 예술을 경험하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데 이번 축제를 통해 창의적인 음악들도 충분히 쉽게 다가올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동탄에 연습실을 두고 계신데요.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지역일까요?

이 연습실을 사용한 지는 1년 반 정도 됐는데, 저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연습실 바로 근처에 있어요. 애들도 자주 놀러 오고, 제가 음악을 하니까 자연스럽게 애들도 밴드를 하고 싶어 해서 프로젝트 밴드를 하나 만들었어요. 8번 정도 함께 수업했는데 연주를 꽤 잘해요. 재즈곡도 연습하고, 마인크래프트에 나오는 노래 ‘Steve’s Lava Chicken’도 연습해요. 마을 축제에서 공연도 할 예정이에요. 이렇게 스튜디오 주변에 있는 많은 것에서 영감을 얻어요.

가을은 재즈의 계절이죠. 이 계절에 추천하고 싶은 음악이 있을까요?

가을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곡들이 있습니다. ‘Autumn Leaves’, ‘Autumn in New York’, ‘’Tis Autumn’ 같은 곡들요. 개인적으로는 조빔
(A.C. Jobim)의 보사노바 곡 ‘Portrait in Black and White’이 가을과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이 곡은 쳇 베이커(Chet Baker)가 도쿄에서 녹음한 버전이 있는데,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에 녹음한 연주라 더 특별합니다.

인터뷰 2 - 6 큐알

쳇 베이커(Chet Baker)가
연주한 ‘Portrait in Black and White’

<화분> Vol.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