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베이스X화성
그림을 잘 그려내는 것이 작가의 첫 번째 목표라면, 누군가에게 작품이 닿는 순간을 마련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일 것이다. 이 지점이 작가들에게는 늘 숙제와도 같다. 이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화성시문화관광재단에서는 관내 예술인의 작품을 서울옥션과 연계해 작품 유통 기회를 마련하는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정리 및 인터뷰 차예지(편집실) 사진 김성재(싸우나스튜디오)
‘제로베이스X화성’은 서울옥션과의 협업을 통해 화성특례시에서 활동하는 청년·지역 작가들에게 실질적인 작품 유통 기회를 제공하고, 전시와 경매를 연계한 시장 진입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됐다. 먼저 공모를 통해 권은솜, 김현희, 박나은, 박은주, 서정연, 윤은주, 진현진, 황정경 작가를 선발했다. 이들의 작품을 모아 동탄복합문화센터 내 아트스페이스와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두 차례 프리뷰 전시를 진행했다.
이들 작가의 작품은 서울옥션 온라인 경매 플랫폼을 통해 실제 유통으로 연결되어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지난 7월 23일 진행된 온라인 경매에는 총 116명이 참여했으며 그중 화성특례시 거주자는 11명으로, 지역 기반 작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낙찰 총액은 3,595만 원이며 참여자 116명 이 총 621회 응찰에 참여했다.
이번 사업을 통해 선발된 8명의 작가가 모여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작가들은 이번 사업에 참여하게 된 것과 결과에 만족하며 뜻깊은 경험이었다는 데 마음을 모았다.
황정경 작가는 “재단에서 진행하는 사업이니 믿고 참여하게 되었다”며 경매에 대한 이해나 정보 없이 시작했던 터라 모르는 것도 많았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권은솜 작가 또한 그에 공감했다. 모르는 것이 많아 담당자에게 많이 묻기도 했다며, 경매 사이트의 시스템이 어떻게 운영되고 작가와 작품이 어떻게 노출되는지 배웠다고 말했다.
이번 ‘제로베이스X화성’ 사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지만, 앞으로의 예술가 지원에 있어 재단이 고민해야 할 부분은 여전히 남아있다. 우선 이번 사업은 경매에 앞서 전시를 통해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기간을 두었는데, 전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공간에 대한 고민이 컸다. 어디에 있는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보다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은 없을지에 대한 고민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가 진행된 아트스페이스는 다양한 시민들이 오가는 곳으로, 그만큼 불특정 다수의 시민이 전시를 찾고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반면 외부인의 접근은 쉽지 않은 곳이기에 근처의 대형 병원이나 기업과 연계해 새로운 공간에서 전시를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더해졌다. 또한 사업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번 ‘제로베이스X화성’은 시작가 0원에서 출발해 구매자가 직접 작품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작가로서는 평소 판매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낙찰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
김현희 작가는 “0원에서 시작하는 방식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오히려 너무 비싼 가격으로 책정돼있을 경우 구매자로서는 접근이 쉽지 않기에 장단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다만 적극적으로 홍보가 된다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제 첫발을 내디딘 사업인 만큼 많은 고민을 통해 아쉬운 점을 개선하고 더욱 성공적인 다음 스텝을 내디딜 수 있길 바라본다.
권은솜 <From X to X> , 2024
일상 속 자연을 포착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어무는 초현실적인 회화 작업을 하고 있다.
황정경 <SALT_series no 21> , 2024
우리의 불안과 공포를 몰아내 주는 공작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 최근에는 소금을 재료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담은 작업을 하고 있다.
김현희 <여름밤>, 2022
자연에서 들리는 소리를 이미지로
재해석해 주변의 세계와 소통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박은주 <숲의 서재>, 2020
가족의 사랑을 ‘말’이라는 매개체로
표현하는 민화 작업을 하고 있다.
박나은 <방어기제>, 2025
‘집’을 주제로 사람들간의 관계가 형성되는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진현진 <To Freely Bloom 1>, 2024
‘탑’을 주요 소재로,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전통
재료를 이용해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윤은주 <여름철 한모금>, 2024
카페라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일상 속 쉼, 휴식을 주제로 도시의
여유를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서정연 <도원수호대>, 2025
동양적 유토피아인 ‘도원’을 주제로 삼아 사물과
풍경에 이야기를 녹여내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번 사업에 참여한 여덟 명의 작가들은 모두 화성특례시에 거주하며 이 지역의 로컬리티를 누구보다 면밀히 관찰하는 사람들이다. 이들과 이번 사업 참여소감은 물론, 평소 작품세계와 화성특례시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박은주_
개인적으로 좀 더 발전해야겠다 생각하게 됐어요. 내가 생각하는 작품의 가치와 시장의 평가가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더 노력해야 할까, 근데 또 노력한다고 잘 되는 걸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황정경_
시장에 노출된 거잖아요. 전에는 내가 좋아서 한다는 마음이 좀 있었다면 이제는 외부의 평가를 나와 무관하게 생각할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자연을 주제로 소금을 가지고 물감이나 먹에 섞어 작업하는데, 소금이라는 물질에 대해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했는가 하는 궁금증도 있고요.
박나은_
화성특례시 안에도 이렇게 다양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경매라는 걸 사실 말로만 들어봤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몰랐는데, 실시간으로 가격이 매겨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세상이 있구나라는 걸 새롭게 알게 됐죠.
윤은주_
작업실에 대한 고민이 커요. 레지던시 같은 게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시 안에는 한 군데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근데 거기도 진입장벽이 좀 있어서 작가들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좀 더 많이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황정경_
문화재단에서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 주시지만 사실 작가가 작품을 판매에 연결시키는 게 되게 어렵거든요. 그래서 판매 루트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준다면 감사할 것 같아요.
김현희_
바다와 습지가 있는 지역이라 그런 부분을 많이 탐구하고 싶어요. 그리고 동탄은 아파트가 많은 지역이지만 공원도 많아요. 멀리 가지 않고도 접할 수 있는 자연이 있다는 게 특징인 것 같아요. 다양한 소리가 혼합되는 곳이죠.
진현진_
용주사에 있는 오층 석탑을 용주사 창건 설화를 담아 작업한 적이 있어요. 이 지역에는 문화유산이 정말 많잖아요. 그래서 가봐야 할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아직 많아요. 융건릉은 정조의 효 사상을 중심으로 다룰 수 있고, 제암리의 경우는 희생이나 의지와 같은 키워드를 담아 표현할 수 있겠죠.
권은솜_
저는 특히 동탄을 보면서 ‘길들여진 자연’이라는 말을 생각해봤어요. 자연이 남아있지만, 한편으로 정말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가 있고, 자연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개발하는 모습들이 저한테 영감을 줘요.
박나은_
그림을 그릴 때 환경적인 특징도 중요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의 특징도 중요하게 보거든요. 신도시 근처엔 아이들이 많지만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연령대가 달라지죠.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제 작품의 주요 주제인 ‘집’으로 형상화한다면 한 집 안에 여러 가지 모양의 창문이 있는 모습일 것 같아요.
박은주_
17년 정도 여기에 살고 있는데, 여기서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것을 지켜봤어요. 그러다 보니 주변을 볼 때도 아이들을 위주로 시선이 가요. 아이들이 많은 지역이니 모든 가정에 행복과 사랑이 가득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란도나 호접도 같은 그림이 어울릴 것 같아요.
서정연_
제가 곰돌이를 그린 건 제 유토피아를 흡수할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해서였어요. 그리고 그걸 전달할 때 장벽을 낮출 수 있는 게 귀여움이라고 생각한 거죠. 귀여움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잖아요. 조선만의 미감이나 정서를 곰돌이로 담으면 아이들은 물론 부모님들도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요
윤은주_
최근 봉담읍에 있는 박봉담 카페를 갔었어요. 커피와 전통주, 스마트팜까지 함께하는 곳이더라고요. 건물도 전통과 현대가 함께 있는 느낌이고요. 아주 인상 깊어서 그 공간을 어떻게 그릴까 연구 중이에요.
황정경_
서해로 가는 길이 이미지적으로 많이 와닿아요. 도시에서 논밭과 바다로 이어지는 모습이요. 특히 제부도는 바닷길이 막히는 시간이 있잖아요. 그러면 오롯이 자연만 남는 시간이 되죠. 아파트에만 살면 자연에 대한 생각이 잘 안 드는데 이곳은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도 그런 곳이 보이니 새삼스레 우리와 자연이 서로 잘 살펴야 하는 관계라는 게 느껴지
더라고요.
박은주_
민화를 고리타분한 그림이 아니라 서양화 못지않은 회화로 인정받을 수 있게 이끌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진현진_
전통과 문화가 계승될 수 있도록 과거와 현재를 이어줄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윤은주_
꾸준히, 앨리스 달튼 브라운처럼 86세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건강하게 그림 그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서정연_
저는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 치유 받거든요. 제 그림을 보시는 분들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김현희_
‘김현희 작가 그림을 보면 편안하다’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주변의 나무, 풀의 소리를 들으면서 편안함을 느낄 때처럼요.
박나은_
재밌는 작업을 하는 작가로 남고 싶어요. 그리고 개인전을 열 때마다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요소가 있게 하는데 그런 방식으로 계속 소통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권은솜_
자연의 다양한 장면과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고, 오래오래 작업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황정경_
어디서 읽은 문장인데 ‘개인 서사의 중요한 점들이 어느 순간 연결되어서 하나의 자존을 이루는 별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저 역시 개인적인 경험을 담아 작업하지만 그게 지속되어 하나의 자존적인 별을 이루고 그렇게 되면 작업 안에서도 어떤 본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작가가 되면 성공한 게 아닐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