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좋은 우리 음악

화성시 예술단 국악단 예술감독 김현섭

좋은 사람,
좋은
우리 음악

화성시 예술단 국악단 예술감독 김현섭

우리 음악, 국악은 멀고도 가까운 존재다. 지켜야 한다지만 정작 잘 알지는 못하는 존재.
그런 이들에게 국악을 접하는 단 한 번의 경험이 생긴다면 많은 게 달라질지 모른다.
어느 찰나의 경험으로 국악을 사랑하게 되어 이제는 국악을 짓는 사람이 된 김현섭 감독처럼.

차예지 사진 김성재(싸우나스튜디오) 장소 협조 카페사월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왜 국악이었는지 궁금해요.

어릴 때 앞집 누나와 친하게 지냈었는데, 우연히 그 누나가 동요 ‘나비야’를 피아노로 치는 걸 듣게 됐어요. 그때부터 음악을 찾아 듣고, 악보를 찾아 연주하기 시작했죠. 초등학교 때 서울시 영재로 발탁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울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피아노 콩쿠르에서 여러 번 수상하면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었는데 집안 사정으로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음악 선생님의 권유로 피아노과 진학을 준비하게 됐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게 됐어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음악인데 그 음악적 호흡에 꽂힌 거예요. 그 곡이 슬기둥의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였어요. 새로운 음색과의 만남 이후로 진로를 바꾸게 됐어요. 나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고 싶다는 마음과, 라디오를 통해 접한 국악기의 진한소리. 그 둘이 만나 국악 작곡을 시작하게 됐어요. 이는 저한테 너무나 신선하고 행복한 충격이었습니다.

원래 하던 것에서 벗어난 색다른 도전이었겠네요. 국악을 작곡하면서 어려움에 부딪친 적은 없었나요?

작곡가로서 또 예술가로서 살며 마주하는 매 순간이 새롭고 쉽지 않아요. 작품 속에서 힘들어하지만 동시에 행복해하는 제 모습을 발견해요. 예술은 완전함을 추구하지만 불완전으로 끝나요. 그래도 모든 경험은 마음이 담긴 소리로 발현되죠. 그렇기에 작곡가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저는 ‘타인의 인정이 아닌 직접 부딪히며 배운 모든 소리는 나의 ‘소리 언어’가 된다’고 말해요.

고민을 담아 곡을 만드는 데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잖아요. 국악에 관심이 없거나, 혹은 우리 것이니까 반대로 이미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죠.

저는 이런 비유를 해요. 우리가 어릴 때는 나물 반찬을 잘 먹지 않잖아요. 어른들은 이게 얼마나 귀한 건 줄 아느냐 하지만 어린 저한테는 그게 강요 같았거든요. 지금은 나물 반찬 없어서 못 먹어요. 그러면 분명 어떤 계기가 있었을 거란 말이에요. 나물을 다시 먹게 된 특별한 경험이. 강요가 아닌 경험을 제공해주면 자연스레 관심이 생겨요.

국악에 관심이 없고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럼 이걸 없애도 괜찮나요? 하고 물으면 그건 아니라고 해요. 우리의 전통이니까. 그럼 들으시겠냐고 물으면 그건 또 싫대요. 하하. 근데 그런 사람들이 국악에 관심을 가질 단 한 번의 계기를 만들어주는 게 예술가들의 숙명이겠죠. 그렇기에 많은 예술적 시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림 킴이나 송소희와 같이, 국악적 요소를 재해석한 음악가들이 주목받는 모습도 보입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음악에 열광하는 경향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21세기 들어 예술의 장르나 경계를 구분 짓는 벽은 모두 허물어졌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방금 업로드한 음악을 지구 반대편에서도 들을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예술이라는 언어를 가지고 누군가와 소통하고자 하는 시도를 누구도 나쁘게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저는 칠판 긁는 소리를 좋아하거든요? 잘 때 자장가처럼 틀어두고 잘 정도예요. 이처럼 예술은 즐기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이고 거기 진심이 담겼다면 모든 예술은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최연소 국악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하셨는데요. 그간 어떠셨어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연주하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지가 중요해요. 단원들과의 호흡도 중요하고요. 인터뷰 전에 식사를 하고 왔는데, 단원들과 모여서 커다란 양푼에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어요. 저희 분위기가 정말 좋거든요.

감독은 갯벌 속의 진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빛나려고 하지 않고, 함께 마음과 소리를 나누는 단원들을 빛나게 해주는 게 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좋은 관계 속에서 좋은 음악도 나오겠네요. 공연을 준비 중이시죠?

8월 14일 <화음(華音) Ⅰ_화성을 노래하다>를 보여드릴 예정이고요, 9월 17일에는 <화음(華音) Ⅱ_화성을 연주하다>를 준비 중입니다. 8월 공연은 국악의 3대 성악 형태인 민요, 판소리, 정가를 보여줄 수 있게 기획했습니다. 9월 17일 공연에서는 국악계에 계신 원로 작곡가들을 모시고 국악의 정수를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전통 음악의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묘미를 선사하고 싶습니다.

본인만의 음악 철학이나, 제자들을 가르칠 때 꼭 전달하고자 하는 게 있나요?

제 은사님께서 저에게 ‘좋은 음악을 하려면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좋은 사람이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선 다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본인에게 솔직한 것이 좋은 사람이 되는 첫 번째 조건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음악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해요.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예술을 하지 말고 자아 성찰을 통한 나만의 소리 언어를 찾으라고 얘기합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때, 가장 나다운 음악이 나올 것이고 그것만큼 본인에게 진실한 음악은 없을 거라 확신합니다.

제 작곡 발표회 제목이 ‘현섭하다’예요. 처음에는 주변에서 자기애가 너무 강한 거 아니냐며 우스갯소리를 했는데, 이제는 저를 대표하는 고유명사가 됐어요. 가장 나다운 음악은 나에게 진솔한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예술이란 시대를 반영했을 때 생명력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시대란 사회적 의미와 동시에 예술가 본인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자신만의 시공간 속에서 가장 솔직한 나를 담는 예술이야말로 생명력 짙은 예술이라 생각합니다.

<화분> Vol.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