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와 문화예술의 공존법

모두가 주인이 되어 화성이라는 예술작품을 함께 만들어야 (글 추미경)

 


어떤 곳보다 역동적인 화성, 그러나 복잡한 도시의 마음

지금, 화성시는 한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 중 하나이다. 인구감소를 넘어 지역소멸에 대한 위기의식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화성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대표
적 도시이다. 제부도, 궁평항, 고정리 공룡알 화석산지를 포함한 천혜의 자연환경, 사도세자와 정조를 모신 융건릉을 비롯한 유려한 역사자원 등 주어진 도시여건도 좋다. 여기에 신도시가 연
속적으로 개발되면서 역동적 에너지가 끊임없이 보태지고 있다. 화성은 외적 성장세만 보면 부러움을 살만한 도시이고, 제조업과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경제적으로도 탄탄한 곳이다.
하지만 화성시의 외연적 팽창이 오롯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도시의 확장은 새로운 중심지를 형성하면서 활력을 가져오지만 동시에 지역 내 다양한 층위의 격차도 만들어낸다.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새로운 화성시민은 선주민과 이주한 주민들 사이의 차이와 소통의 이슈를 불러오기도 한다. 시민들이 공통으로 인지하고 있던 화성의 오래된 정체성 너머에서 내 삶의 방식이 달라지
고 낯선 이웃을 새롭게 맞이하는 동안 동네와 지역의 문화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래서 화성시민의 마음은 복잡해지고 있다. 마치 한국사회가 압축적으로 경제 성
장을 이루어내고 선진국이 되었지만 그에 수반한 후유증이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이슈로 등장하는 것처럼 화성시에는 빠른 성장세에 뒤따르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도시계획을 짜는 것이 바로 문화도시 조성계획이다.

도시 내면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의 힘, 문화의 확산이 필요한 때

도시의 풍경은 눈에 보이는 시설이나 장소, 거리 등의 ‘물리적 풍경’만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고 사용하고 누리는 예술인과 문화관련 종사자를 포함한 시민, 기업, 행정조직 등 도시에 살고 있
는 다양한 개인, 공동체, 조직의 ‘마음 풍경’도 담고 있다. 그래서 도시에는 행복과 불행의 풍경, 다채로운 욕망과 탐욕의 풍경, 재화와 가난의 풍경, 고유함과 획일화의 풍경, 참여와 배제의 풍
경, 자유로운 상상과 오래된 관습의 풍경 등 수만 가지의 모습이 공존한다. 우리가 어떤 도시를 방문했을 때, 혹은 그곳에 살고 있을 때 우리의 일상적 감각이 향하는 지점이 그 도시를 지배하
고 있는 풍경이다. 그리고 나와 우리도 함께 그 풍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화성시는 현재 어떤 풍경을 주로 보여주고 있을까? 우선 화성시가 고유하면서도 다채롭고, 자유로운 상상이 넘치고 그래서 시민들의 참여가 도시 곳곳에서 활발한 특별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금방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화성시의 아름답고 독특한 도시풍경을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도 않다. 화성시는 모든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자연생태, 역사
문화 자원과 무형의 가치들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매우 역동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성의 아름다운 도시풍경은 화성이 품고 있지만 잘 드러내지 못한 무수한 가치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고, 외부로부터 주어진 역동성을 도시의 내면으로 어떻게 전환시키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아직은 불투명한 어떤 미래임에는 틀림없다.

도시의 지역가치를 생동하게 하고 외피가 아니라 내면을 풍요롭게 하는데 있어 예술의 힘은 강력하게 작용한다. 광주 지역문화의 주요 아이콘으로 잘 알려진 대인예술시장(2009~현재)은 90년대 이후 택지개발과 지구단위 아파트 개발이 대규모로 진행되며 광주가 팽창할 때 전통시장과 같은 과거 도심의 상징이었던 곳의 의미와 쓰임이 무너지면서 시작되었다. 도시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던 시장의 위기에 가장 먼저 공감한 이들이 예술가들이었고, 그들이 시장으로 들어가 삶의 공간에서 예술하기를 확장하고 상인들과 협력하면서 대인 별별 예술야시장이라는 로컬 씬(Local Scene)을 만들어내었다.

이 프로젝트는 작고 큰 성공, 부침과 실패를 넘나들며 진행되었지만 대인시장이 쇠락한 전통시장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시민들이 즐겨 찾는 수공예 예술야시장이라는 동시대 지역문화의 현장으로 전환시켰다. 또한 예술가와 상인과 시민 판매자의 공동체 난장을 만들었다. 비어가던 점포가 예술로 활성화되면서 상인에게는 예술과 시민의 힘이 시장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예술가들에게는 삶터로서의 지역과 만나고 가치를 함께 만들어가는 경험을 확장하게 했다. 그리고 시민들에게는 시장을 또 다른 차원의 일상문화로 감각하는 계기를 열어주었다. 문화재단과 지자체에게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 지역문화의 다양성을 지속하게 할 정책방향과 지원제도를 실험하고 확장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프로젝트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은 완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속사정에는 어려움과 한계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난한 과정 속에서 광주 지역문화는 다채로워지고 성숙하게 됨으로써 아름다운 도시풍경의 조각을 확장해 가고 있다.

화성시에도 극단 민들레처럼 동네 안에서, 지역 속에서 예술하기를 꾸준히 실천하는 단체가 있고, 개인적으로 지역에 애착을 가진 예술가들이 곳곳에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화성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 새로 이주한 사람들, 일을 위해 타국의 도시 화성으로 들어온 사람들 등 그들의 다채로운 일상이 매일 펼쳐지고 있다. 마을공동체, 청년 네트워크, 사회적 경제를 꿈꾸는 여러 단체들이 무엇인가를 해나가고 있다. 경제적으로 튼튼해지고, 아파트가 연일 올라가고, 늘어난 시민들을 위한 여러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혹시 우리가 화성의 도시풍경을 반쪽의 물리적 요소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화성시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을 도시풍경으로 연결하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닐까?

시민, 예술인, 도시행정 모두가 주인이 되어 연대하고 상생하는 화성을 향해
-시민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로 만들어가는 화성의 도시문화풍경

세계 수십여 도시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도시현상과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제안하고 있는 창조도시의 권위자 찰스 랜드리는 그의 저서 ≪크리에이티브 시티 메이킹≫에서 ‘도시는 살아있는 예술작품’이라고 정의한다. 각자의 우주를 가지고 있는 시민들이 모여 사는 도시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서로 연결되고 의지하며 하나의 유기체처럼 진화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기체와 같이 꿈틀거리는 도시는 시민들의 활기와 공동체적 연대감, 윤리의식, 공공을 위한 상상의 힘을 통해 내면이 튼튼해진다. ≪백범일지≫를 통해 김구 선생이 우리나라의 미래상,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력과 경제력으로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임을 강조할 때 그 문화는 바로 이러한 내면의 힘이지 않을까?

생명체로 도시를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자원은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도시를 말할 때 사람의 이야기를 빼는 경우가 많다. 지역예술정책에서 예술가가 빠지고, 시민문화사업에서 시민이 빠지고, 마을공동체 사업에서 주민이 빠지기 일쑤이다. 행정을 말하면서 행정인력을 빼고 말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주인이기보다는 어떤 대상이나 역할로만 여겨지기 때문에 참여하지만 빠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젠 그 역할을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드러날 필요가 있다. 도시가 커질수록 도시의 생명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도시의 문화로, 풍경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자치와 분권시대가 열리고 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도시의 마음풍경을 만들어가는 주체 그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성 지역사회와 문화예술의 공존은, 도시가 외연과 내면 모두 균형감 있게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 필요한 선택지가 아니라 근간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화성시라는 커다란 무대에 무대장치만 화려하고 배우와 관객이 허술한 공연이 되지 않도록 사람들의 온기와 연대로 가득 채워야 할 시점이다. 화성시가 물리적 도시풍경을 넘어 도시의 마음풍경까지 온전해진 아름답고 특별한 도시의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술적 상상력과 문화적 연대가 화성시민의 생활 속에서 꿈틀거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화성시의 내면을 만들어가는 시민, 예술가, 도시행정이 모두 화성시의 주인이 되어 협력하고 상생하고자 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그럴 때에야 화성이라는 예술작품을 시민들의 다채로운 이야기와 동네마다의 작은 문화실험, 그리고 확장된 도시문화풍경으로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

또한 화성이라는 예술작품의 매력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화성시 사회구조를 다시 발견하고, 사람들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는 방안을 먼저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곳곳에 숨어 기회만 되면 터져 나올 준비가 되어 있는 시민, 예술가, 문화조직, 기업, 행정조직 등 화성시의 모든 주체들의 잠재력을 다시 연결하고 화성이라는 삶의 무대에서 각자가 매력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글 추미경 (사)문화다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