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인 영감을 발현하고 사색의 깊이를 더하는 공간

김주은의 방

김주은 작가는 삶 속에서 얻은 영감을 구체화하고 실제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것을 특정한 기법과 도구로 한정하지 않는다. 때로는 오브제로, 때로는 조각과 회화, 조각으로 표현하며 팔색조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구현해낸다. 그의 작업 공간도 그렇듯 풍성한 색감 이면에 다면적인 구조로 이뤄져 있다. 생동하는 개성과 내밀한 사색이 공존하는 공간, 바로 김주은의 작업실이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설치미술과 조각, 회화 등 두루 작품활동을 하는 김주은입니다. 저는 시각미술에서 중요한 ‘이미지’를 가지고 실험하기를 좋아해요. 단지 시각적으로 보이는 이미지 자체라기보다는 실재와 인상(印象), 개념과 오브제와 같은 미술철학을 저만의 것으로 해석하고 시각화하는 작업을 주로 하고 있죠.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 그 철학들을 증명하고, 실제 작업으로 풀어 보았을 때 문제를 발견하고 수정하는 것을 즐깁니다. 주로 입체적인 양감을 가진 오브제를 이용한 설치작품을 작업하고 있어요. 또 전체 작품을 풀어나가기 위해 드로잉, 판화, 회화, 도자기 등을 부수적인 재료로 사용합니다. 제가 오브제를 사용하는 이유는 첫째, 일상에서 만나기 쉬운 물건이라는 것과 둘째, 같은 물체이지만 작가의 상상력을 만나 또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오브제만의 매력을 느껴 많은 작업에 두로 사용하고 있답니다.

제가 화성시민을 비롯한 관객 분들과 만나게 된 계기는 이번에 처음으로 실시한 2022년 신진예술가 자립지원 공모에 선정된 덕분이었어요. SNS 알림 설정에 ‘화성시문화재단 예술지원’을 등록해 두었는데, 2022 신진예술가 자립지원 공모가 떠서 지원한 것이 덜컥 선정된 것이죠. 이전에는 예술그룹 ‘용도변경展(서울)’, 프로젝트 그룹 ‘아트젤리(화성)’로 활동하며 혼자 전시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한 명의 작가로 당당히 자립하게 됐죠. 선정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가족들의 인식입니다. 화성시문화재단의 행정적인 지원과 함께 재료·공간대여·홍보 등 제가 전시를 할 수 있도록 후원을 해주는 것들이 많아요. 즉, 취미로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활동한다는 것을 인정받게 된 거죠. 저 스스로도 예술인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게 된 것도 달라진 것 중 하나입니다. 지난 10월에 선보인 <아우라: 가깝고도 먼 것> 전시 이후에는 작품에 대해 감명 깊었다는 관객 평도 받고, 처음으로 작품 판매 문의도 와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당신은 어떤 작업을 하나요?

저는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문화에서 태어나고 자라왔기 때문에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기독교 교리와 그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제 세계관에 담아낼 수 있도록 노력해왔습니다. 예술관에 있어서는 독일의 예술가 요셉 보이스( Joseph Beuys, 1921~1986)와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미쉘 푸코의 책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시각예술을 하는 제게 ‘나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내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에 대한 고찰을 하게 했고, 작가로서 이미지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를 하도록 했습니다. 요셉 보이스의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는 말은 예술과 삶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작가의 삶 자체가 예술작품임을 인식하는 그의 생각을 잘 드러냅니다. 요셉 보이스의 작품 <7000그루의 떡갈나무>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저는 ‘시각예술은 시각적으로 시사점을 던져야 한다’라고 생각했던 저의 고정관념을 깨트렸습니다. 비로소 저는 시각적으로 연연하기보다는 예술가로서 삶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내가 본 것과 보여주고 싶은 것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부분에 집중하게 됐죠.

작품 작업을 살펴보면, 제 생각이 작품에 잘 담아내는 것을 우선하고 세부적인 부분은 잘 챙겼는지, 관객이 작품을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를 고려합니다. 관객이 제 작품을 보며 ‘누구든 내면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고,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어떤 사람은 그것이 삶의 양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이미지에서 나타날 수 있는데요. 그것이 발현되는 모습은 모두 다르고 다양하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작업실은 어떤 곳인가요?

제가 화성과 연을 맺게 된 것은 2018년의 일로, 서울에서 화성으로 이사를 온 이후 작업공간과 주거공간을 함께 사용하며 이곳에서 계속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이른 아침 시간에 작업을 하는데, 엄마로써 또 아내로써의 역할을 하기 전, ‘김주은’이라는 사람에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고,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하면서 작가로써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좋기 때문이에요. 제 작업실의 특징은 빛이 강하게 들어오는 공간과 그늘이 지는 공간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빛이 들어올 때 작업하는 것을 선호하는 저는, 밝은 작품의 경우 빛이 들어오는 핑크색 책상에서 대부분 작업합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거나, 관념적인 작품을 할 때는 그늘이 지는 나무 책상에서 작업하고 있죠. 한 사람 안에서도 각기 다른 내면이 있듯이 작가로써의 저도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떠한 작업 스타일에 국한하지 않고 그날그날의 감정, 생각 중에 제가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데에 가장 맞는 책상과 공간을 이용해 작업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이렇게 독립된 공간을 가지게 됐지만, 서울에서 살던 시절 저의 작품 환경은 불안정한 부분이 많았어요. 대학을 막 졸업한 작가에게 전시 공간을 빌려주는 곳이 없어서 친구들과 함께 ‘용도변경展’이라는 그룹을 만들고 홍대입구와 한남동 등의 주차장 공간을 2시간씩 빌려 게릴라성 작품을 전시하고 철수하는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전시를 지속해서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후 친구들과 저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현실적인 삶을 살게 됐죠. 그런데 화성에 와보니 현실의 삶을 살면서도 예술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이 놀라웠어요. 생활예술도 예술의 한 범위로 인정받으며 여러 지역주민들과 향유할 수 있게 지원하고 돕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사람들 안에 있는 창조본능을 깨울 수 있는 질 좋은 여건을 만든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 그것을 화성시문화재단이 하고 있었죠. 저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보고, ‘지역사회의 예술가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람이 어떠한 공간에 사는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가짐도 바꿀 수 있게 한다는 점이 참 신기했어요.

저는 요즘 ‘작품으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연결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표현하고 싶었으나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이 성숙하지 않아서, 과거의 내가 빈칸으로 남겨두었던 작품들을 하나둘씩 채워보고 표현해보며 20대의 불안으로 가득했던 저에게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나름의 창작 활동을 시작해보세요. 육아 또는 생계로 잠시 예술을 놓게 된 분들이라면 더더욱 포기하지 말고, 저처럼 한 번 문을 두드려 보면 좋겠습니다.

글 이종철

사진 남윤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