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또렷해지는 시기

글 임현진(뉴스레터 12월호 칼럼)

축제가 또렷해지는 시기

 

긴 침잠의 시기가 끝나고 다시 축제들이 돌아왔다. 이전과 같은 모습을 하고 반갑게 만나게 되는 축제도 있었고, 호흡을 다시 고르며 재정비를 하고 새 모습으로 나선 축제도, 이전과는 다른 동력을 찾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축제도 있었다. 올해 마주했던 몇몇 축제들을 돌아보자.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게 축제가 존재하는 이유와 동력이 무엇인지 다시금 짚어본다.

 

축제와 지속가능성

 

많은 축제들이 올해의 기획을 소개하며 ‘지속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담아냈다. 지난 5월 개최되었던 ‘수원연극축제(수원문화재단)’는 환경과 기후변화에 대한 예술가들의 접근을 소개하며 바람컴퍼니의 ‘두 개의 길’과 극단 문의 ‘피, 땀, 눈물’을 선보였다. 과거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으로 사용되었던 경기 상상캠퍼스와 부속실험 목장이었던 현 수원탑동시민농장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반영했던 두 작품은 실험 목장에서 살았던 존재들의 이야기를 내밀하게 전달했다. 더불어 축제의 푸드 트럭 구역에 ‘트래쉬버스터즈’의 다회용기 수거 시스템을 도입하여 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이는 등 축제의 운영의 차원에서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실천을 담아냈다.

 

6월에 열린 ‘의정부음악극축제(의정부문화재단)’는 올해 축제의 주제를 ‘거리로 나온 음악극, 지구를 노래하다’로 삼았다. 이러한 축제의 주제와 기획에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총 감독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기존의 방식을 넘어서서 음악, 거리예술, 환경예술, 지속가능성 분야의 전문 감독을 위촉하였는데, 이 중에서도 ‘환경예술’과 ‘지속가능성’을 장르 기반의 전문가들과 동등한 위치에 배치함으로써 지향점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극단 즐겨찾기의 ‘빅 웨이브’를 비롯하여 상상발전소의 ‘지구를 지켜라’ 등의 작품이 공연을 통해 축제의 주제를 담아냈고, 특히 유상통프로젝트는 시민 참여의 방식을 통해 제작한 작품 ‘정크 오케스트라’는 축제의 개막을 장식했다.

 

이 밖에도 많은 축제들이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축제의 기획과 운영 방식을 바꾸어냈는데, 불필요한 제작물의 최소화, 프로그램북 등 홍보물의 디지털화 등을 실천하는 경향을 살필 수 있었다. 축제가 지속가능성을 선택하는 것이 선택지로 남지 않고, 적극적인 전략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한 해였다. 의정부음악극축제는 이러한 접근을 두고 ‘환경과 기후변화의 이슈를 문화로서 인식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축제의 새로운 파트너십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피스트레인 사무국)’은 민간의 기획자들을 중심으로 2018년 시작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 축제로 자리 잡았다. 코로나19가 지속되며 축제의 정상적인 개최가 어려웠던 시기를 지나 올해 다시금 철원군의 곳곳을 무대 삼아 자유로운 음악의 장이 열렸고, 이를 오랜 시간 기다려왔던 뮤지션들과 관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진하게 축제를 즐겼다. 마지막 날에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축제의 열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축제는 도리어 큰 에너지를 모았다.

 

지난 몇 년간 강원도와 철원군이 주요 후원처였던 시기를 넘어서서 피스트레인은 축제의 이해관계자를 확장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피스 부스터즈’라는 이름의 후원 캠페인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통해 축제의 후원자들을 모집했다. 공공기관이 중심이 되어 축제의 개최 가능 여부를 결정하곤 했던 과거의 구조를 벗어나 축제가 새로운 성장 모델을 찾고 관객-소비자의 개념을 넘어선 파트너십을 구상하는 것이다. 민간 주체가 중심이 되는 축제의 재정 자립 시도이자, 축제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실험이다. 이러한 구조의 실험은 오랜 시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추구해왔던 바와 같다. 축제를 후원하는 것은 축제를 아끼는 이들이 많아지는 일, 축제를 통해 행복했던 이들, 축제와 함께 성장한 이들이 다시금 축제의 주인이 되는 일이다.

 

연구실, 제작소로서의 축제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올해 예술감독의 선임과 함께 축제의 방향성을 새로이 정립했다. ‘예술과 기후위기’, ‘국제교류의 새로운 이동성’, ‘예술의 다양성과 포용성’, ‘예술과 기술’, ‘지역성과 초지역성’ 등의 다섯 갈래가 축제의 방향을 소개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기존의 축제가 완성된 형태의 공연예술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면 올해의 축제에서는 작품의 제작 과정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부터, 소개하는 작품들의 맥락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하고 환류하는 워크숍 페스티벌 등 기획의 방식을 다각화했다. 예술적 완성도와 작품 고유의 미학을 놓지 않으면서도, 예술을 통해 동시대의 이슈들을 밀도 있게 다루어내고자 하는 축제의 의지가 담겼다.

 

‘포항거리예술축제(포항문화재단)’는 지난 5년간 지역 공동체와 쌓아왔던 관계와 신뢰를 내공으로 삼아 포항의 신중년들과 함께 작품 ‘조금씩 천천히 움직일께’를 제작했다. 축제가 작품의 제작과 초연을 리드하는 일은 최근의 축제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던 터라 지역과 예술계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기존의 축제가 시민들이 관여하고 참여하는 방식을 단순히 ‘시민참여형 공연’으로 포지셔닝 했다면 포항거리예술축제는 시민들의 서사가 중심에 놓이게 하는 워크숍과 리서치를 중심으로 작품이 창작될 수 있는 과정을 설계했다. 생애 주기의 전환점에 놓인 이들의 위태롭고도 아름다운, 진솔한 이야기가 축제를 통해 관객들을 만났다.

 

좋은 축제는 물처럼 흐르며 변화하고 발전해나간다. 좋은 축제는 예술가와 스태프, 관객과 이웃, 도시와 지역을 성장시킨다. 좋은 축제는 존재하는 이유를 지속적으로 생각하며, 용기 있는 선택을 통해 동시대에 말을 건다. 다가오는 축제들을 기다리며, 고군분투했던 축제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글 임현진

 

독립 기획자. ‘서울아트마켓’ 협력 감독이자 ‘포항거리예술축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도시·공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여러 축제, 예술단체들과 함께 작업한다. 대표 작업으로 <창작랩 프로젝트 이야기 北>, <비오는 날이면, (파전이 생각나)>가 있다. 공연을 하며 만난 세상을 이야기하고, 재미난 질문들을 찾아내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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