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악기 연주자 진유영

마음을 노크하는 소리의 시간

소리가 꺼진 노래방 기계 앞에서 노래의 진행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가사를 보며 리듬과 소리를 상상했던 어린 소녀가 있었다. 그 아이는 클래식 타악기를 전공하고 현대음악을 배우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 외롭고 힘든 이방인의 삶을 마치고 우리가 잃어버렸던 내면의 소리와 함께 돌아온 진유영 타악기 연주자. 그를 따라 낯설고 신기한 현대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마음을 노크하는 소리의 시간

안녕하세요 연주자님, 먼저 자기 소개를 좀 부탁드릴게요.

저는 클래식 타악기를 기반으로 현대음악을 하고 있어요. 현대음악 중에서도 주로 하는 것은 뮤직테아터(Musiktheater)라는 분야입니다. 연주할 때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어느 정도 액션과 함께 연주하는 것을 말해요. 그리고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곡을 쓰면 협업해서 초연을 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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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테아터는 일종의 퍼포먼스가 있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맞아요. 행위예술, 퍼포먼스쪽으로 가까워요. 아방가르드하기도 하고.

공연 영상을 찾아보고 모노드라마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연주를 하면서 그 소리에 감정을 실어 몸과 표정으로도 표현을 하시더라고요. 특히 <이방인의 일기장>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작품은 저의 독일생활을 갈무리하는 공연이었어요. 2013년부터 작년까지 거의 7, 8년을 머물렀거든요. 제 이야기를 엮을 수 있는 작품을 고른 거라 아마 더 그렇게 느끼셨던 것 같아요. 저는 소리로 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목적 달성을 한 것 같네요(웃음).

특히 마지막에 쓰다듬는 장면은 치유하는 것 같았어요. 작가님이 그동안 힘들었던 자신을 정성스럽게 쓰다듬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실제 그런 느낌으로 한 건데 잘 봐주신 것 같아 고맙습니다.

타악기는 남성적인 악기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첫 시작은 초등학교 고적대에서였어요. 전학을 가서 적응을 못하고 있으니까 선생님이 한번 해볼래 하신 거죠. 아직 어려서 타악기를 권하신 건데, 나중엔 행진곡의 똑같은 리듬만 하니 좀 지루해서 그만 뒀어요. 그러다 중학교 때 공부는 아닌 것 같고(웃음) 다시 하고 싶어져서 예고로 진학했어요. 아버지가 해병이셔서 어릴 때 작은 도시에 살았는데 엄마와 클래식 공연을 엄청 보러 다녔어요. 그런 영향도 많이 받은 거 같아요.

활동이미지3-(사진-손정천)

소리에 민감한 편이신가요?

소리에 민감한 건 제 기질인 것 같아요. 성격적으로 굉장히 예민하거든요. 남들이 그냥 흘려 듣는 소음을 하나의 ‘소리’로 듣고는 해요. 그리고 그런 소리에 감동을 받아요. 그 대신 어떤 소리는 평범한데 듣기 힘들어요. 창문 닫는 소리 같은 거. 이런 사람이 엄청 큰 소리가 나는 타악을 전공했으니 아이러니하죠(웃음). 그래서 지금은 그 중에서 가장 작고 섬세한 소리를 계속 연구하는 것 같아요.

연주하시는 모습을 보면 악기를 치고 때리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노크하는 느낌이 들어요. 존중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 말이죠.

타악기를 배울 때는 연습을 혹독하게 했었어요. 악기를 사정없이 찢어져라 두들겨 패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죠. 악기는 도구일 뿐이고, 나는 이 악기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독일에 유학 가서 처음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너무 와닿았어요. 독일은 타악기에 정말 거의 다 동물의 가죽을 쓰는데요 교수님이 이걸 만져보라고, 다 살아 있는 생명이었다, 우린 이 악기들에 대해서 정말 리스펙트, 존중을 해야 한다, 그러시는 거죠. 악기를 존중하지 않으면 좋은 소리가 나올 수 없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닫게 되었어요.

타악기 연주자이기도 하지만 특이하게 본인을 ‘쓰레기 소리 수집가’라고도 소개하시더군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가요?

독일에서 정신적으로 엄청 힘들었을 때 한국에 잠깐 들어오게 되었어요. 유럽에서 활동하던 앙상블의 정말 중요한 공연을 앞두고 있던 때라 마음이 바쁘고 복잡했죠. 그런데 병원에서 갑상선암이라는 거예요. 처음엔 빨리 수술 받고 가서 공연준비를 해야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그 힘든 순간에 우연히 길에 죽어 있는 매미를 보았는데, 그때 제가 저 스스로를 너무 오랫동안 버리고 살았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어요.

본인을 돌보지 못하고 살아온 시간들 말이군요.

그랬던 것 같아요. 제 마음의 소리를 제가 들어주지 않았던 거죠. 그전까지는 목표만 보고 나를 갉아먹는 방식으로 달려 왔었거든요. 여기서 브레이크를 걸어야겠다 했죠. 그러면서 ‘버려진 물건들의 소리를 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어떤 쓰레기들이 악기로 변신했을까요?

이 쇠붙이는 공사장에서 버린 것에 구멍만 뚫어서 매단 것이거든요. (두드려보며) 이런 소리에 감동 받는 거예요. 쓸모가 없어져서 버려진 것이지만 악기로 쓸 수는 있으니까. 또, 저희 외할아버지가 이것도 악기인 것 같다고 저에게 선물로 주신 것도 있고, 여기 큰 조개껍데기도 있어요. 원래는 안 그랬는데 아프고 나서 아빠랑 손 잡으면서 산책을 했거든요. 지금은 또 안 그러는데(웃음). 그때 하나씩 주워서 만난 물건들이에요. 언젠가 저 물건들을 연주 안 해도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싶어요. 빨리 닳아 없어졌으면 싶기도 하고요.

저 사물들과 대화하는 게 치유이고, 그 치유가 언젠가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신 거죠?

네, 맞아요. 저는 항상 제의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공연을 하거든요. 저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요즘 많이 쓰는 말로 나의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애도랄까요

네 그렇기도 하죠. 위로하고 떠나 보내는 의식인 거죠.

이번에 화성시문화재단과 함께 <화성예술플랫폼> 오픈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하셨어요.

열 분 정도가 이 작업실에 오셨어요.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 성인 참가자들과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를 했거든요. 제가 하는 작업들에 대해서 설명도 많이 해드리고 또 질문도 많이 해주셨어요. 밥벌이가 되느냐 하는 질문도 있었는데 저는 그 질문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웃음). 4시간 정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었어요.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어떤 것이 있나요?

어떤 분이 소리를 들으면서 본인의 어렸을 때 기억이 떠오른다고 하셨어요. 저는 그 말씀이 참 감사했어요. 음악을 머리로 이해하고 자꾸 분석하려는 분들도 있는데요, 이 분은 그런 자세를 풀고 그냥 몸에 그냥 들리는 대로 받아들이고 느끼신 거죠. 몸에 힘을 빼고 그냥 들으면 쓰지 않던 다른 감각이 열리거든요. 저는 제 음악이 명상음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른 어떤 분은 처음엔 되게 좀 팔짱 딱 끼고 그런 자세로 계셨어요. 그런데 하시면서 점점 몸을 앞으로 쑥 기울이면서 나도 이렇게 재미있게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럴 때 정말 보람이 느껴지시겠어요.

맞아요. 다른 건 몰라도 이제 그 시간 이후로 이 분들이 소리를 그냥 듣지는 않는다 하는 건 제가 확실히 장담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저기 있는 저 선인장도 혹시 악기의 자격으로 있는 건가요?

네, 맞아요. 존 케이지란 음악가가 알려준 건데요. 선인장 위에 마이크를 붙이고 털을 하나씩 튕기면 정말 재미있는 소리가 나거든요. 제가 도레미파 음정을 다 찾았어요. 공연할 때 청중들이 제일 신기해하는 거예요. 소리를 정말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미지의 소리를 발견하는 탐험가 같기도 하고요. 어떤 사물로부터 소리를 뽑아내는 그 순간 내면이 풍성해지고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소리를 ‘낸다’가 아니라 ‘뽑아낸다’고 표현하거든요. 이렇게 손으로 쭉 뽑아내듯이요(웃음).

소리를 정말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미지의 소리를 발견하는 탐험가 같기도 하고요.

어떤 사물로부터 소리를 뽑아내는 그 순간 내면이 풍성해지고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소리를 ‘낸다’가 아니라 ‘뽑아낸다’고 표현하거든요. 이렇게 손으로 쭉 뽑아내듯이요(웃음).

사물에서도 소리를 뽑아내지만, 사람들의 내면에서도 자신이 몰랐던 소리를 뽑아내시는 거 같아요. 저도 여기서 소리를 들으니까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여지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어떤 계획이 있으세요?

11월쯤에 흙으로 하는 공연을 선보일 것 같아요. 타악기는 물성에 따라 흙, 나무, 가죽, 금속 등으로 나뉘는데 이 소재별로 시리즈를 하고 싶거든요. 첫 시작으로 흙의 생명력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해서 일단 3명의 작곡가에게 곡을 부탁한 상태예요. 호기심을 가지고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글 김은주

사진 김영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