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을 이야기하는 미술관

시각예술 기획자의 전시 이야기

장한나, 뉴 락 연구기록, 2022, 종이에 드로잉, 피그먼트 프린트, 단채널 비디오, 수집된 플라스틱, 혼합재료, 가변크기 ⓒ 예술의전당

장한나, 뉴 락 연구기록, 2022, 종이에 드로잉, 피그먼트 프린트, 단채널 비디오, 수집된 플라스틱, 혼합재료, 가변크기 ⓒ 예술의전당

탄소중립을
이야기하는 미술관

예술가는 시대의 현상을 발견해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대중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이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는 문화예술의 역할이기도 하다. 인류는 기후 위기에 직면했고,
예술가들은 침묵하지 않고 재능을 발휘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예술의전당에서는 작가 10명이 ‘탄소중립’을 주제로
설치 및 미디어아트를 선보였다. 시각예술 기획자의 시선에서
어떠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는지 들어본다.

<내맘쏙 모두의 그림책>전, 2022, 전시장 철수 전경 ⓒ 이준호

<내맘쏙 모두의 그림책>전, 2022, 전시장 철수 전경 ⓒ 이준호

말로만 ‘환경’을 외치는 시대가 아니다

“학예사님, 이번 전시 주제는 탄소중립으로 하시는 게 어떨까요?”
예술의전당과 한국전력공사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전시를 만들기 위해 모인 회의에서 나온 한전 담당자의 질문이었다. 두 공공기관이 만나 응당 ‘탄소중립’이라는 시의성 강한 주제를 채택하는 것에 대해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기획자로서는 굉장히 난감했다. 전시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거대한 폐기물이 만들어지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전시를 위한 구조물들은 모두 탄소 배출을 통해 만들어지며, 보통 한 번의 전시 이후 폐기된다. 때문에 전시를 준비하며 동료들과 우스갯소리로 ‘탄소중립 전시를 하려면 전시를 하지 않는 게 맞는 것 아닐까’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미술이 사회에 주는 영향과 역할이 있기에 폐기물이 다량으로 나오는 전시의 특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주제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앞섰다.
미술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주제, 매체 등이 변화한다. 때로는 시대의 변화에 한 걸음 앞서가기도 한다. 인권, 인종, 종교, 전쟁 등 인간 사회의 여러 문제를 앞장서서 이야기하며 문제를 각인시키고, 때로는 해결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산업화 이후 인간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시작되면서 ‘자연’, ‘환경’이 점점 작품의 주제로 부각되었고, 최근 미술계의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았다. 미술의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은 ‘환경’은 작품과 전시의 주제로만 존재했다. 하지만 더는 말로만 환경을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실행에 옮겨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런 시대의 흐름 속에 전시가 열렸다.
<영원의 시작 : ZERO>는 예술의전당과 한국전력공사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전시로 10팀의 작가가 예술로 보여주는 탄소중립 전시이다.
전시는 처음 ‘영원의 시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출발했다. 이후 더 직관적인 단어를 더하기 위해 탄소중립, 넷 제로Net Zero의 ‘ZERO’를 부제로 붙여 전시명을 확정 지었다.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전시를 제작하는 데 있어 가장 주안점을 둔 점은 자원의 최소화였다. 최소한의 자원을 사용하고, 재활용이 가능한 자재를 사용해 전시 종료 후 배출되는 폐기물들을 최대한 줄이기로 하였다. 그렇게 기존 전시 구성에서 만들어온 언어들 위에 자원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모든 구성을 맞추어 기획이 시작되었다.

최소한의 구성, 재생과 지속 가능성의 고민

전시 공간 디자인 업체가 섭외되었고 최소한의 전시 구성을 요청하였다. 재활용이 가능한 철제를 사용하여 전시장 가벽이 설치되었고, 작품이 더 돋보이도록 형형색색 페인트로 칠해졌어야 할 벽면도 전시장 원형 모습 그대로 구축되었다. 철제 가벽은 여타 MDF 목재 합판 가벽과는 달리 벽이 시원하게 뚫려 있어 자칫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낮추는 요소가 될 수 있기에 참여 작가님들께 양해를 구해야 했다. 보통의 경우 독립된 본인 만의 공간을 선호하기 마련이지만 거의 대부분 흔쾌히 수긍해 주셨다. 또 몇몇의 가벽과 제작 좌대들은 그다음 이어지는 전시에 양도하여 공간을 재활용했다.
가벽 외 요소들에서 재생과 지속 가능함을 고민해야 했다. 전시장 내부에 들어갈 월 텍스트들은 최소한의 시트지만을 사용했고, 작품 소개 글은 모두 천연 소재 광목 원단에 인쇄하여 조성했다. 또 전시장 외부에 거는 현수막도 친환경 생분해 현수막으로 제작하였다. 폐기 이후 분해가 될 수 있는 소재임에도 그냥 버려지지 않고 재사용될 수 있도록 전시가 종료된 이후에는 현수막 리사이클링 업체에 전달하였다.
이 밖에 체험 공간 등에도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 테이블을 배치하는 등의 노력도 더했다. 특히 고민이 많았던 것은 지류 인쇄물이었다.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많이 버려지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전시 제작 시, 관람객들에게 자료 전달을 목적으로 만드는 리플릿과 전시에 대한 모든 정보가 담겨있는 도록은 필수불가결하게 만들어야 하는 품목이다. 여러 논의 끝에 리플릿의 경우 폐지를 재활용한 재생지에 인쇄하였고, 도록은 최소한의 수량만 친환경 인증을 받은 용지에 인쇄하였다. 소량 인쇄하긴 했지만 전시 종료 후 남은 여분의 리플릿을 보니 QR 혹은 디지털 간행물로 대체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전시를 기획할 때 주제, 예산, 기간 등이 확정되면 이후 작가들을 통해 전시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관람객들에게 보여주는 작품 배치를 구성하여 서사를 만드는 단계로 넘어간다. 본 전시는 크게 3가지 주제로 구성되었다. ‘불편한 진실’, ‘어둠이 짙어진 시간’, ‘새로운 시작’ 우리가 직면해야 할 현실부터 앞으로 열어가야 하는 이상까지 순서대로 구성했다. 첫 번째 섹션인 불편한 진실은 예술가의 시각으로 우리가 직면한 위급한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때문에 탄소중립을 하지 않고 방치했으므로 일어난 일들에 대해 풀어내는 작품들로 구성하였다. 현 상황에 대한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고찰, 그리고 이를 공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설치 작품을 위주로 보여주었다. 두 번째 섹션인 어둠이 가장 짙어진 시간에서는 인구가 급증한 지구에서 인간의 탐욕과 무분별한 사용 등으로 발생한 현재의 기후 위기 상황들을 보여주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 섹션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며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왜 필요한지 깨달을 수 있다. 마지막 섹션인 새로운 시작에서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어느 지점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담긴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땅에 대한 재인식, 서로의 관계를 보듬고 돌아보는 작품들로 구성하였다.
몇몇 참여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전시에서 시사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장한나 작가는 울산 바다에 방문했다가 신기한 물체를 발견한다. 바다에 버려진 스티로폼이 풍화작용을 거쳐 하나의 돌처럼 보인 것이다. 작가는 그 조형물에 ‘뉴 락 New Rock’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생태계에 스며든 뉴 락을 채집하고 연구하는 <뉴 락 연구 기록>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신 생태계>를 통해 뉴 락이 자연의 일부로 생태 공간이 된 모습을 볼 수 있는 수조 형태의 신 생태계 작업과 그 영상을 보여주며 질문을 던진다. 자연은 그 인공물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였지만, 우리 또한 그 뉴 락을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
부지현 작가는 제주도 출신으로 고향 바다에서 영향을 받은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공간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한 설치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궁극공간>은 수명을 다해 더 이상 불을 밝히지 못하는 폐 집어등을 이용한 설치 작품으로 재탄생 되었다. 어둡게 조성된 공간 안에는 오르내리는 집어등과 함께 짙은 안개와 붉은빛이 몽롱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안개가 자욱이 낀 밤바다를 연상시킨다. 작가의 궁극공간 안에서 관람객들은 조용히 머무르며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상에 잠기게 만들었다.
고사리 작가는 실제 농사를 지으며 경험한 자연의 순환 구조를 작품으로 풀어낸다. 이렇게 출품된 작품 <땅의 별>과 <해와 달>은 광목천으로 거대하게 조성된 원형 공간에 절기에 따라 해와 달이 변화하고 반복되는 모습을 담았다. 또한 생의 주기를 다한 후 건조된 식물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공간 안에 매달려 있다. 작가가 의도한 자연의 요소들이 구현된 암실 공간 안에서 자연이 변화하고 반복되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시한다.

시대와 함께 성장한 예술, 변화의 원동력으로

이후 전시장은 루틴하게 흘러간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특히 코로나 상황이 종결됨에 따라 여느 때보다 전시장은 활기를 띤다. 아이들 방학 시즌에 맞춰 블록버스터 전시가 개최되고, 전시는 관람객들을 바쁘게 맞을 준비를 하며 공간을 새롭게 단장한다.
다를 것 없어 보이는 미술관엔 이전과 다른 변화들이 생겼다. 최근 기획에 참여한 <백희나 그림책> 전시에서도 재활용이 가능한 모듈형 가벽과 철제 가벽을 사용하였다. 이제 전시 주제와 무관하게 앞선 전시의 시도들과 쓰임이 이어져야겠다는 의지의 표상일까. 전시 구성 요소들에 변화가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환경을 보호하자고 사용하는 에코백과 텀블러가 과잉 생산되며 환경을 더욱 해치는 것처럼, 탄소중립을 지향하는 전시 역시 이상과 실상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전시는 생각보다 재생 소재를 사용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다. 작품에 온전히 몰입하기 어려운 구조였음에도 작가와 관람객은 기꺼이 이해해 주었다. 전시가 끝나고 얼마가 지난 후,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할 어느 한 지점을 열어나가는데 함께 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런 환경 문제를 다루는 전시와 프로젝트들을 예술의전당 외에 국립현대미술관과 아르코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등 여타 다른 기관들도 이어나가고 있다. 예술은 시대와 함께 성장하며 사회에서 발생한 많은 문제를 가시화했고, 그것은 곧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예술의 행보가 발판이 되어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는 큰 울림이 되었으면 한다.

이소요, 2022, 전시 전경 ⓒ예술의전당

이소요, 2022, 전시 전경 ⓒ예술의전당

고사리, 2022, 전시 전경 ⓒ예술의전당

고사리, 2022, 전시 전경 ⓒ예술의전당

장한나, 2022, 전시 전경 ⓒ예술의전당

장한나, 2022, 전시 전경 ⓒ예술의전당

부지현, 궁극공간, 2022, LED, 집어등, 모터, 포그 머신, 레이저, 가변크기 ⓒ부지현

부지현, 궁극공간, 2022, LED, 집어등, 모터, 포그 머신, 레이저, 가변크기 ⓒ부지현

글 문새날(예술의전당 시각예술부 학예사)

사진 예술의전당 제공 / 참고자료 <영원의 시작 : ZERO> 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