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숨결로 완성되는 공연예술

김대진 피아니스트

현장의 숨결로
완성되는
공연예술

김대진 피아니스트

AI가 완벽한 음표를 연주할 수 있는 시대, 공연예술의 완성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그 답은 연주자가 무대 위에서 관객의 숨결을 읽는 순간에 있다. 홀의 울림, 관객의 에너지, 그날의 공기를
느끼며 연주자는 템포와 터치를 미세하게 조정한다. 김대진 교수는 이 소통의 과정에서 공연예술이
완성된다고 믿는다. 

백미희(편집실) 사진 최이현(싸우나스튜디오)

오는 7월에 예정된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화성시문화관광재단의 협력 기획 공연을 맡아주셨는데,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

이번 공연은 슈베르트를 중심으로 하는 무대라는 점에서 방향이 분명합니다. 슈베르트는 쉽게 말하자면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를 쓴 작곡가라고 할 수 있죠. 클래식을 잘 아는지와 상관없이, 듣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빠질 수 있는 작곡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클래식은 어렵다’라는 선입견을 조금 내려놓고, 편안하게 감상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클래식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결국 ‘정답’이 있고, 그것을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건 없죠. 음악의 정답은 결국 ‘듣고 좋으면 된다’라는 데 있으니까요.

화성시문화관광재단과의 협업은 처음인데, 어떻게 함께하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작년 8월까지 제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맡고 있었는데, 화성시문화관광재단에서 협업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한예종이 음악을 포함해 다양한 예술 장르가 함께 있는 곳이니, 앞으로 다양한 공연을 함께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취지였죠. 그렇게 MOU를 맺게 되었고, 「작곡가의 초상-슈베르트 스펙트럼」이 처음으로 협업해 선보이는 무대가 될 것입니다. 이번 한 번의 공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향후 더 넓은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김선욱·이진상·문지영·박재홍 등을 길러내는 동시에 피아니스트로서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교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동안 피아니스트로서 연주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고, 지휘도 하고, 행정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해왔지만 그중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교육입니다. 기본적으로 제 역할은 늘 선생이었다고 봅니다. 어느 한순간에 ‘나는 이제 교육자다’라고 바뀐 것은 아니고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생이라고 해서 연주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요. 제 삶은 언제나 여러 역할이 함께 이어져 왔습니다.

오랜 시간 학생들을 가르쳐오셨는데요. 음악이라는 분야의 특성상, 학생들을 가르치실 때 특히 중요하게 고려하시는 요소가 있으신가요?

음악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학생마다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각자의 성향과 필요가 다르므로 지도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학생은 격려가 더 필요하고, 어떤 학생은 새로운 자극을 통해 성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과정을 일종의 ‘맞춤형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음악 전공에는 일정 수준의 재능이 필요하며, 이는 음악적인 감각일 수도 있고 테크닉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학생마다 장단점이 다르므로 무엇을 더 가르치고 어떤 부분을 스스로 깨닫게 할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봅니다.

교수님은 과거 인터뷰에서 기본기를 매우 강조하시면서, 음악적 개성과 창의성의 출발은 곡의 배경을 인문학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연주자에게 음악 외적인 경험은 어떤 방식으로 작용한다고 보시나요?

클래식은 고전문학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단순히 음표만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정신과 사고의 흐름을 이해해야 합니다. 문학과 미술, 철학이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시대를 읽지 못하면 작품의 본질도 놓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황제 협주곡」도 당시 계몽주의 사상을 떠올리며 들어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화려한 협주곡이 아니라, 계몽주의가 중시한 이성과 인간의 주체성, 그리고 시대를 이끄는 힘에 대한 감각과도 연결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따라서 연주자는 음표를 정확히 재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작품이 태어난 시대와 사상까지 함께 흡수할 때 음악을 더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연주자는 작품을 소리로 구현하는 사람이지만, 그 소리 뒤에 있는 시대와 사상까지 흡수해야 음악이 입체적으로 살아납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해석 위에는 어떤 기술적 토대가 필요한 걸까요?

연주자의 가장 밑바탕에는 반복 훈련을 통해 쌓아 올린 기본기가 필요합니다. 공연예술은 정해진 날짜, 장소, 시간에 단 한 번의 기회로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스포츠와도 비슷하죠. 기회는 단 한 번뿐이기에 기본기와 훈련, 규율, 정신력이 필수입니다. 인문학적 해석도 기본기 그 위에 쌓이는 것이지, 기본 없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수님은 스스로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하다’와 ‘만든다’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선수와 코치의 차이라고 설명하고 싶네요. 무대 위에서 직접 연주하는 사람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고, 학생을 지도하면서 그들의 음악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죠. 결국 둘 다 음악 안에 있지만 역할이 다릅니다. 그라운드 안에서 뛰는 선수와 밖에서 전략을 세우는 코치의 차이라고 보시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연주자 김대진도 궁금합니다. 완벽한 연주보다 더 중요한 ‘무대의 순간’이 있다면 어떤 순간일까요?

무대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의 연속입니다. 홀의 울림, 피아노의 상태, 조명, 관객의 분위기까지 모두 영향을 줍니다. 연주자는 그 순간의 공기와 관객의 에너지를 느끼고, 거기에 맞게 자신을 조절해야 합니다. 그래서 무대 위의 음악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그날 그 자리에서만 생기는 영감과 즉흥성이 살아 있는 예술입니다. 완벽한 재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순간에 ‘관객과 어떻게 소통하느냐’입니다.

최근 AI가 많은 영역을 대체하며 음악에서도 점점 정교한 연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인간 연주자가 끝까지 지켜야 할 ‘근본’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AI가 할 수 있는 능력 자체는 부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공연예술은 작품을 재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날의 현장에 맞춰 적응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현장의 분위기는 매번 다릅니다. 홀의 울림이 건조한 날도 있고, 젊은 관객들이 에너지를 뿜어내는 날도 있습니다. 연주자는 무대에 서서 관객의 숨결, 공기의 흐름, 홀의 반향까지 느끼며 그 순간에 맞는 미세한 조정을 해야 합니다.

같은 곡이라도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템포를 살짝 늦추거나, 터치의 무게를 바꾸거나, 강약의 균형을 재조정하는 그런 판단과 반응이 공연예술을 완성하는 과정입니다. AI는 완벽한 음표 재현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무대 위에서 관객 한 명 한 명의 시선과 호흡을 느끼며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살아 있는 소통은 불가능하죠.

다만, AI가 좋은 공연예술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겠죠. 예를 들자면, 곡에 따라서 조명을 바꿔준다든가 이런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식으로요. AI와 기술을 현명하게 이용하면 공연예술을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공연예술의 본질, 그 순간의 생생한 소통은 인간만이 할 수 있습니다.

화성시문화관광재단 × 한국예술종합학교 협력 기획 공연
<김대진 with Rising Artist> 공연 정보

  1. 일시: 2026. 7. 11.(토) 17:00 / 2026. 12. 12.(토) 17:00
  2. 장소: 반석아트홀
  3. 가격: 전석 3만 원
  4. 대상: 초등학생 이상 관람가
  5. 관람 시간: 약 120분(인터미션 포함)
  6. 문의: 1588-5234

수많은 가르침과 무대를 통해 오랜 시간을 쌓아오신 지금, 교수님께서 궁극적으로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저도 콩쿠르 입상자를 많이 배출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한국 예술계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있죠. 콩쿠르는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기 색을 잃고 ‘콩쿠르 스타일’에 맞춰가는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결과보다 자기 음악을 찾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생들이 외부의 기준에 맞추기보다, 자신의 색과 주관을 분명히 지닌 연주자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는 학생 고유의 색을 찾는 방향으로 교육의 방향을 찾는 데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음악이 어떤 의미가 되었으면 하시나요?

세상에는 정치나 경제처럼 어쩔 수 없는 분열이 생기는 분야들이 있죠. 하지만 예술에는 사람을 연결하는 힘이 있습니다.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결국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1980년대, 제가 81학번이던 시절에는 사소한 일에서도 자주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유학을 갔을 때는 유명 연주자를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큰 감명을 받았죠. 제 선배님은 프란츠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감상실에서 들으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깊은 감동을 받으셨고, 그 윗세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악보를 한 번 직접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고 말씀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경험들이 너무 당연하고 쉽게 주어지다 보니, 예전만큼의 강렬한 감동을 느끼기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음악이 건조해진 사회 속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무뎌진 감동을 다시 일깨우는 영양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움직이고 공감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지금 시대에 음악이 지닌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요?

<화분>Vol. 70

에디터 ***

포토그래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