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의 숲을 유영하는 자유주의자

만욱 작가의 방

콧수염 난 신부와 직립 보행하는 개, 네온사인 같은 정글의 무표정한 고릴라, 퍼즐 같은 나무판에 구겨진 듯 웅크린 여인. 화려하나 어색하고 불편한 그녀의 작품은 그래서 더 기묘하고 그러기에 더 마음이 쓰인다. 내가 그린 그림 한 점 갖는 게 소원이던 회사원 박경화에서 전시회와 라이브 페인팅, 설치미술을 넘나드는 작가 만욱이 되기까지, 그녀는 마음 가는 대로 그리고 더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회화의 세계가 거부한 날 것의 형광으로 자신의 세계를 지어 올린 자유주의자, 만욱 작가의 방을 찾았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서양화가 만욱입니다. 본명은 박경화예요. 전업 작가로 활동한 지는 10년쯤 됐어요. 그전엔 미술에 대해 전혀 모르고 공부한 적도 없는 직장인이었죠. 사회학을 전공하고 영상 편집을 했는데, 반복되는 작업이 너무 지겨웠어요. 그러다 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내가 그린 그림 한 점 갖는 게 소원일 만큼요. 어느 날 디자이너가 낙서처럼 그린 그림을 봤는데 그게 어찌나 부럽던지. 무작정 미술학원에 갔고 거기서 만난 선생님이 독립해서 만든 작업실에 합류하게 됐어요. 저 같은 비전공자 4~5명이 매주 일요일 모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림을 그렸는데, 돌이켜보면 그때 선생님이 일종의 실험을 한 것 같아요. 미술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우리가 자유롭게 상상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유화나 판화 등 거의 모든 재료를 경험할 수 있게 했죠.

그렇게 그림에 빠져들다 보니 작정하고 6개월쯤 그림으로 놀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 두고 함께 그림 공부하던 친구들과 동대문에 작은 작업실을 얻었죠. 과제를 하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종이나 천, 악세서리 부자재 등으로 뭔가를 만드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그림책 일러스트 일을 하게 됐는데,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 그림을 수정하는 게 갈수록 갑갑하고 괴로웠어요. 그러려고 그림을 배운 게 아닌데 싶고… 마흔을 앞둔, 혼란스럽던 그때 하와이와 일본으로 꽤 오랜 여행을 떠났고, 비로소 내 안의 나를 찬찬히 그리고 또렷이 돌아보게 됐어요. 그때 그린 그림들로 «아줌마! 왜 혼자 다녀요?»란 독립출판 에세이를 내기도 했죠. 한국에 돌아온 후엔 쭉 전업작가의 길을 걸었고, 지금까지 20차례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했어요. 레지던시 작가로도 활동했고요. 일본에 갔을 때 지원한 <도쿄 디자인 페스타>에서 라이브 페인팅을 처음 했는데 그때 기억이 너무 좋아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라이브 페인팅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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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작업을 하나요?

지금은 11월 초에 하는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6월에 했던 <개 걔 계, 함께 살기>에 이어 올해 두 번째 개인전인데, 연계해서 독립출판물이나 도록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올 초엔 화성시문화재단 참여예술가로 선정돼 지원을 받으며 <2021 어반 브레이크 아트 아시아>에 참여했어요. 작품 판매 금액 전액을 작가에게 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는데, 대형 그림 한 점이 팔려서 정말 기뻤어요.(웃음) <화성예술플랫폼>의 참여 작가로도 활동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놀랐어요. 서로 소통하며 저마다 다른 그림을 완성해가는 과정이 정말 즐거웠어요.

제 그림을 보신 분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건 형광색, 그리고 사람 같은 동물, 무표정 등이에요. 제 작품의 아이덴티티이고 곧 주제이기도 한데, 사실 작가가 되기 전부터 형광색을 정말 좋아했어요. 머리를 노란색으로 염색하고 옷이며 모자, 가방까지 형광색을 입고 걸치는 건 작품을 떠나 오래된 취향이기도 하죠. 그러다 형광색이 작품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건 동물원의 동물이 시작이었어요. 코끼리 뒤에 코끼리가 그려져 있고 플라스틱 나무가 서 있는데, 그건 결코 코끼리를 위한 게 아니거든요. 동물이 사는 공간이 관람자를 위한 장치로 꾸며진 걸 최대한 이상하고 불편하게 보이고 싶었어요. 자연물엔 없다고 생각해 형광색을 가져왔고, <북극곰아 웃어봐> <가짜 정글에 진짜 고릴라> 등의 작품으로 표현했죠. 사실 전 회화작가들이 형광색을 전혀 쓰지 않고 심지어 배척한다는 걸 작가가 된 후에야 알았어요. 저를 이상하게 본 것도 당연했네요.(웃음)

이후엔 동물은 물론 기계(사물)까지 포함한 비인간종과의 함께 살기를 고민했어요. <결혼식>이 대표적인데 강아지처럼 길들여진 여우와 사이보그, 젠더가 없는 신부가 한 가족처럼 등장해요. 때론 사회가 정한 틀과 고정관념에 구겨 넣듯 맞춰 살아야 하는 인간의 삶을 나무 판넬의 퍼즐 같은 조각으로 표현하기도 했어요. 작품 제목은 역설적으로 <옳은 자세>로 지었죠. 모른 척 외면하고 살지만 사실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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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작업실은 어떤 곳인가요?

여기 작업실은 2019년 10월에 왔어요. 화성시 동탄산업로에 있는 빌딩인데 층고가 높고 위치와 임대료도 적당해 결정했죠. 100호짜리 큰 작품을 하다 보니 그림을 자유롭게 세우고 옮길 수 있는 작업실이 필요했거든요. 높은 층수에 한 면이 통유리 창으로 되어 있어 밖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가끔은 창밖을 멍하니 보거나 엉뚱한 생각에 빠져 시간을 보내기도 하죠.

그러다 생긴 특별한 인연도 있어요. 작업실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넓은 공터에 개 한 마리와 새끼들이 사는 거예요. 지금은 빌딩이 많이 들어섰지만 그땐 허허벌판이었거든요. 따로 주인이 있는 것 같진 않고 주변 컨테이너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사료를 주는 것 같았어요. 덕분에 울타리 아래 구멍을 파고 들어온 어미 개와 새끼가 배를 채우곤 했죠. 자꾸 보다 보니 마음이 쓰여 컨테이너에 사람이 없는 명절엔 제가 사료를 주기도 했고요. 그러다 새끼들이 점점 커서 보호소로 옮겨졌는데, 어미 개는 또 새끼를 낳고 또 낳으며 그곳을 떠나지 않았어요. 그 사이 하루가 다르게 건물들이 들어섰고, 개와 새끼들이 살 공간은 점점 줄어들었죠. 전에 없던 빌딩들이 원주민을 밀어내는 느낌? 그러면서 제 작업실을 돌아보니 작품 수가 늘수록 제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개나 나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거의 매일 보는 공터의 개를 동영상으로 찍어 기록하기도 했는데, 나 역시 인간세계에서 배척당한 개를 작품에 이용하려고 한 게 아닌가 싶어 결국 소재로 삼진 않았어요. 그럴 때 예술이 참 쓸데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내가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는게 동물의 현실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까 하는 회의감, 제가 비겁하게 느껴졌고 죄책감도 들었죠. 그건 <유기된 적 없는 유기견> 같은 작품으로 표현됐고, 동물보호소에서 유기견을 입양하는 걸로 이어졌어요. 인간과 동물, 사이버 세계를 넘나드는 관계 속에서 늘 혼란스러움을 겪고, 의문과 자책, 성찰을 통과하는 과정이 작품으로 고스란히 옮겨지곤 해요. 이런 생각이 멈추지 않는 한 저의 작업은 계속될 것 같네요.

글 최현주

사진 남윤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