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문화재단 사람들

맑고 깨끗하게, 자신 있게

좌 김지희 우 심유빈

청년들의 시간은 느리고 길게 흐른다. 두 눈이 맑게 빛나는 화성시문화재단의 인턴들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들의 유쾌한 기운을 받아 내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용기를 부리며

나를 지키는 일

만나서 반가워요. 각자 자기소개로 시작해 볼까요?

김지희(이하 ‘지’) 화성시문화재단 지역문화팀에서 ‘김 주임’과 ‘지희 씨’를 맡고 있는 김지희입니다(웃음). 올해 6월부터 근무를 시작해서 벌써 5개월 차가 됐네요. 저는 ‘비대면 예술 키트’를 개발, 운영하는 업무를 지원하고 있어요. 요즘은 화성시 서남부 지역의 여러 장소를 방문해, 키트를 전달하고 있죠.

심유빈(이하 ‘유’) 입사 8개월 차 총무팀 인턴 심유빈입니다. 요즘은 유연근무제 관련 데이터 관리 업무를 진행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인사 발령이 새롭게 나서, 오전에는 새 명함과 사원증 제작 업무로 바쁘게 보내고 왔네요.

 

두 분 다 어떤 계기로 재단에 입사하게 되었나요? 

대학에서 세라믹디자인을 전공했어요. 4년 동안 쓰던 앞치마엔 빨래 한 번 할 새 없이 매일 흙 칠갑이 되어 있었죠(웃음). 전공을 공부하면서 작품 완성이 주는 통쾌함과 해방감도 좋았지만, 부전공처럼 함께 이수한 문화예술학이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죠. 그때 한참 버킷리스트를 쓰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문화재단에서 근무하기’였어요. 때마침 좋은 기회가 있어 지원서를 냈고, 나름 쟁쟁한 경쟁률을 뚫고 재단에 입사하게 됐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영어 학원 데스크 아르바이트를 꽤 오랫동안 했어요. 3년 동안 다양한 직원들의 인수인계를 맡으면서 각자 일을 하는 동기가 다른 것에 호기심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인사 관련 직무에 끌리게 됐죠. 우연히 동탄복합문화센터 도서관에서 지역사회 서비스 인턴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발견했고, 망설임 없이 바로 지원했어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화성에 살았는데 지원 자격이 화성 시민이더라고요(웃음). 저에게는 아주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저에게 문화재단은 늘 신나고 흥미로운 곳이란 인상이 있어 기대가 되기도 했고요.

 

첫 출근 날은 어땠나요?

많이 긴장되고 떨렸어요. 첫 직장 생활이라 많은 상상을 했어요.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도 하고(웃음).

맞아요. 저도 그랬어요.

 

첫 사회생활은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한 느낌이죠(웃음).

맞아요.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보이고 싶어서 눈치도 엄청 봤고요. 게다가 저는 긴장하면 말이 잘 안 들리고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습관이 있어 첫날엔 무조건 다 적어서 외우겠다는 마음으로 출근했어요. 작은 수첩에 무엇이든 받아 적고 집에 가서 복습했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그럴싸한 어른 같아 보이는 옷이 뭘까 며칠을 고민했어요. 결국엔 옷장에서 자주 입던 티셔츠를 입고 첫 출근을 했어요. 가장 편한 옷을 입어야 가장 나다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옷을 입고 제가 누구인지 소개하는 순간이 감동스럽기도 했어요.

입사 후 가장 보람찼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궁금해요.

첫 월급이 통장으로 꽂혔을 때(웃음)? 제가 꿈꾸던 일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성취감에 참 좋았어요.

꼼꼼하게 일 처리를 했을 때 뿌듯함을 느꼈어요. 총무팀 업무가 눈에 띄는 일은 아니지만 회사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반대로 모든 게 처음이라 고민한 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일하면서 힘들었던 일은 되도록 빨리 잊어버리려 하는 편인데, 그래도 떠올려보면 입사 후 첫 출장 날이 생각나요. 면허 딴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초행길인데다 시골길이라 큰 부담이 됐어요. 그래도 이젠 출장 전날 차에서 들을 플레이리스트를 정리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만큼 대담한 운전자가 된 것 같아요.

입사 후 한 달이 되었을 때 임파선염에 걸렸어요. 당시에 코로나가 한참 심하던 시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음 앓이를 많이 했어요. 차라리 임파선염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몸이 아픈 것도 문제지만 다른 직원분들께 피해를 줄까 봐 정말 무서웠어요.

 

힘든 와중에 안식처가 되었던 존재가 있나요?

아무래도 저희 총무팀 선배님들께 많이 의지했어요. 어떻게 보면 하루 종일 저는 안식처에 있는 셈이네요(웃음). 제가 모르는 것들을 계속 여쭤보는 게 귀찮으실 수도 있는데 늘 한결같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세요. 첫 회사 생활에서 좋은 선배들을 만나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매일이 감사해요. 이런 회사 또 있을까요! 

저는 아무도 없는 회사에 혼자 앉아있는 순간이 좋아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야근을 하다가 잠깐 테라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멍하니 앉아 있던 적이 있어요. 그때의 시간이 마음 깊이 남아 있어요. 어떤 곳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에 회사라는 공간이 포근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꼭 한 번씩은 늦은 밤까지 회사에 머물고 싶어져요.

 

입사 초기에 상상하던 ‘나’의 모습이 있나요? 회사 안에서 어떤 모습이고 싶었는지, 각자 품었던 바람이 궁금해요.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를 줄인 신조어)’이라는 말이 있어요. 무엇이든 똑 부러지게 잘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그런데 처음부터 모든 면에서 유능할 수 없는 거잖아요. 요즘은 처음엔 당연히 서툴다는 걸 받아들이고 열심히 배우려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정말로 제가 바라던 모습과 가까워지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해요. 초반에 막내, 인턴, 신입을 무기로 재단선배님들께 참 많이 여쭤본 것 같네요.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요.

저는 사실 기대하는 바가 없었어요. 목표를 정해두고 이루지 못하면 저 자신에게 너무 실망할 것 같아 일부러 더 기대하지 않으려 했어요. 그저 지금 제 모습 그대로 지켜갈 수 있길 바랐어요. 가지고 있는 것은 그대로 펼쳐내고, 채울 수 있는 것은 넘칠 만큼 담을 수 있는 시간이길 바랐죠. 한편으론 어떤 일을 하게 돼도 그저 행복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던 것 같아요.

두 분 다 상상하던 바를 이룬 것 같네요. 지금까지 회사 생활을 하며 변화한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처음 하는 사회생활을 상상하면서 늘 두렵기만 했어요. 그런데 막상 경험해 보니 이곳도 다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웃음). 그동안 너무 지나치게 겁먹었단 생각이 들어요. 절대 못 해낼 것 같던 일들을 해내면서 용기 부리는 법을 배웠어요. 

사소하지만 가장 달라진 점은 아침해를 맞이하는 태도예요. 세라믹을 배우며 옹기장이로 살 땐 밤을 새면서 불규칙한 일상을 살았거든요. 지금은 해가 뜨기도 전에 블라인드를 올리는 아침형 인간이 되었어요.

 

화성 시민으로서, 그리고 화성시문화재단의 일원으로서 화성이라는 도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청년의 시선으로 훗날 이 도시를 상상해 본다면 어떨까요?

화성은 제가 머물던 도시 중에 가장 정의할 수 없는 곳 같아요. 어느 동네는 옛날 그대로에 머물러 있는 것 같고, 또 어떤 곳은 게임 속 가상 현실처럼 번지르르하거든요. 일맥상통하진 않지만 같은 범주에 속해 있는 화성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무궁무진한 곳으로 더욱 성장할 거예요.

화성은 산과 바다, 도시까지 어떤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올인원’ 도시예요. 최근엔 해외에서 화성시를 세계의 유망한 도시 중 하나로 꼽았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으니, ‘국제 스마트 에코’ 도시라는 타이틀이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거듭날 거라고 생각해요.

 

호기로운 질문을 던져 볼게요(웃음). ‘청년에게 첫 회사 생활이란 ○○○다!’.

3분 57초다! 대부분의 유행가는 꼭 아슬아슬하게 4분을 넘기지 않잖아요. 저는 그게 꼭 청년인 우리의 시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완성까지의 준비 과정을 담아낼 만큼의 여유로운 시간은 아니지만 결과의 잣대를 들이밀기에 부족한 시간은 결코 아니죠. 마치 회사 생활 안에서 우리들의 시간이 3분 57초 같아요.

‘도르래’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도르래는 힘의 작용 방향을 바꾸거나 좀더 작은 힘으로 물체를 이동시키기 위해 사용된다고 해요. 첫 회사 생활을 하며 예상치 못한 꿈을 가지게 될 수도 있고 또 원하던 것을 이루어 더 큰 목표를 세우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죠. 첫 회사 생활은 청년에게 도르래 같은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끝으로 먼 미래에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언젠가는 여성 작가들의 창작 과정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줄수 있는 후원 기업을 만들고 싶어요. 재능이 있지만 도움받을 곳이 없어 꿈을 포기하는 친구들을 자주 봤어요. 각자가 가진 재능을 한데 모아 놓고 다양하게 멋진 작업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단체를 운영하고 싶어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제 성공이 가장 시급하겠죠. 언젠가 꿈을 이룰 날을 위해 이곳저곳에서 노력하고싶어요.

실은 아직 뚜렷한 꿈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걱정이에요. 지희씨의 꿈이 멋지게 들리네요(웃음). 그래도 지금, 오늘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분명 기회를 잡을 거라고 생각해요. 현재를 잘 살면서 정답 없는 미래를 상상하는 순간이 설레기도 하고, 앞으로 어떤 꿈을 가질지 무척 기대하고 있어요.

글 김지수

사진 강현욱 장소 협조 카페 쉬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