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 M.I.H 프로젝트 예술단

안무감독 김기수, 합창단원 윤영민, 관현악단원 오성광

M.I.H(Made In Hwaseong)는 한 해 동안 움츠러들었던 화성의 예술인들을 응원하고자 만들어진 프로젝트 예술단이다. 화성시에서 관현악단, 합창단, 스트릿댄스 팀이라는 새로운 조합을 이루고, 공개 모집을 통해 곳곳에 흩어진 예술인들을 한데 모았다. 그들이 2020년을 ‘모든 게 생각처럼 되지 않는 해였다.’고 매듭 짓지 않도록, ‘그래도 다시 도전해볼 수 있는 해였다.’고 기억할 수 있도록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세 사람의 눈에는 절망과 희망이 교차했지만 마지막에는 분명 희망이 더 크게 반짝였다. 지금, 그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공연은 어느 때보다 새롭고 간절하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받아들이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죠.
가재가 딱딱한 껍질에서 나와서 다시 더 큰 껍질을 만드는 것처럼요.”

반갑습니다. 세 분 모두 소개 부탁드려요.

김기수(이하 ‘김’) 안녕하세요. 저는 스트릿댄스 팀 안무감독 김기수입니다.

윤영민(이하 ‘윤’) 저는 M.I.H 합창단 알토 파트의 윤영민입니다.

오성광(이하 ‘오’) 저는 M.I.H 관현악단의 타악기 단원인 오성광이라고 합니다.

 

화성시 M.I.H 프로젝트 예술단은 관현악단 42명, 합창단 11명, 스트릿댄스 팀 11명, 행정 보조 6명까지 총 70명으로 구성된 새로운 형태의 프로젝트 예술단이에요. 구체적인 소개를 부탁드려요.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예술인이 무대에 설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다시 춤추고 노래할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젝트 예술단이에요. 관현악, 합창, 스트릿댄스 세 분야로 이루어져 있죠. 약 4개월간 화성시와 화성시문화재단에서 무대를 마련해 주고 기본적으로 일정한 페이를 지급해요. 저희가 최종적으로 달려가고 있는 목표는 11월 28일로 예정된 공연이에요. 파트별 무대와 다 함께하는 무대로 한 시간짜리 공연을 기획 중이에요.

 

이번 예술단은 단원들이 공연 기획부터 방식, 대상 등을 선정하는데 많은 참여를 했다고 들었어요. 특히 어떤 점에 집중하고 있나요?

지금까지 스트릿댄스 분야가 예술단에 속한 적이 없어요. 전국적으로 최초인 만큼, 저희가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준비 과정에서부터 탄탄하게 쌓아가려고 노력 중이에요. 레퍼토리 준비도 중요하지만, 공연 홍보도 중요해요. 평소처럼 작업하되 화성시 내에 좋은 그림이 될 만한 장소에 가서 준비된 안무를 영상으로 촬영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있어요.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SNS를 통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거죠.

합창단 공연도 온라인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적은 인원이지만 최대의 하모니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저희도 지휘자님을 필두로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고 있어요. 저는 댄스 팀과 소규모로 매칭해서 작업 중이고, 코레오그래퍼 (무용의 안무가) 유소정님과 공연을 준비 중이에요. 제가 다루는 타악기는 다른 클래식 악기에 비해 다양한 장르에 쉽게 어우러진다는 장점이 있어서 스트릿댄스 팀과 협업하면서도 힙합 음악에 어울리는 비트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어요. 윤영민 선생님과 샹송 작업도 함께하게 됐고요.

 

샹송이요?

제가 샹송 가수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만약 제가 오페라를 하는데 스트릿댄스와 협업하라고 하면 망설였을텐데 샹송이라는 분야는 좀더 대중적이기 때문에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이게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새로운 걸 시도해 본다는 자체가 의미 있는 것 같아요. 다들 전문가잖아요. 저도 클래식만 28년을 해왔고요. 한 분야의 전문가끼리 협업을 하는 거라서 각자의 매력이 합쳐지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거라고 기대해요.

 

김기수 감독님도 첼로 연주자분들과 공연을 준비하고 계시다고요.

‘G선상의 아리아’라는 곡으로 준비 중이에요. 스트릿댄스는 부드럽게 움직이거나 터프하게 움직이기도 하거든요. 부드러운 움직임에는 현악기가 아주 잘 어울려요. 들리는 음에 집중하면서 몸으로 아름다운 첼로 선율을 표현하려고 해요. 이전에도 현악기와 협업한 경험이 있는데 저희가 기존에 해 온 공연보다 반응이 더 좋더라고요. 조합이 새로우면서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으니까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협업도 예술단 내에서 충분히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성사된 거죠. 다행히 예술단 운영 팀장님과 저희가 생각하는 방향이 비슷해서 빨리 추진되고 있는 것 같아요.

 

세 분 모두 새로운 도전에 적극적인 편 같아요.

예전부터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 8분 동안 아예 노래를 틀지 않고, 공간의 진동과 들숨, 날숨 호흡을 통해서만 춤을 추는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이게 말이 되느냐, 음악 위에서 몸으로 행위를 하는 사람이 댄서인데….’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밀어붙인 공연인데 아직도 그 작품이 아주 좋은 평가를 받고 있거든요. 보통 스트릿댄스라고 하면 4분의 3박자 음악에 맞추려고 하는데 그걸 걷어내는 순간 더 재미있어져요. 보는 관객도 작업하는 댄서들도 마찬가지죠. M.I.H 자체가 그런 취지로 만들어진 거라서 즐겁게 작업하고 있어요.

저도 새로운 작업을 좋아해요. 공연계의 진행 방식이 정말 많이 바뀌었잖아요. 오케스트라에 객원 연주자로 나가 공연을 했을 때도 올해는 관객이 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바뀌어가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 녹음하고 연주하고 촬영하고 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계속 공부하고 도전하고 있어요.

저 역시 이미 샹송을 통해서 클래식 음악의 틀을 깨트려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도전에도 열려 있어요. 전혀 다른 분야와 어우러지며 교류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뜻깊은 인연이고, 앞으로 M.I.H를 통해서 또 새로운 변화를 찾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합창단원 윤영민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을 가까이 보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면요?

가장 인상적인 건 댄스팀의 작업 속도예요. 에너지가 넘치고 추진력도 무척 강하더라고요. 클래식 분야에만 있다 보면 조금 수동적인 태도를 갖게 될 수 있거든요. 다른 장르의 예술에 비해서 자신을 나타내는 데 약한 면도 있고요. 댄스팀 작업은 확실히 시각적인 자극이 크다 보니까 그런 부분에서 차이를 느꼈던 것 같아요. 같이 연습하면서 좋은 쪽으로 자극받고 있어요.

아무래도 저희는 표현이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편이에요. 요즘에는 대학에 춤 관련 학과가 있고 석박사 과정까지 밟을 수 있지만, 최근에 생긴 개념이죠. 물론 기본을 다져야 하지만 춤이라는 건 즉흥적인 매력이 크거든요. 지금 공연하는 프로 댄서들도 취미로 시작해서 전문가가 된 분들이 많아요. 아마 그래서 능동적인 태도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 같아요.

 

의견 조율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현악기나 관악기는 스트릿댄스 팀과의 협업이 신선할 거고, 그만큼 만들어나가는 부분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저는 타악기를 다루고 있고 댄서들에게 익숙한 힙합 비트로 작업하다 보니 의견을 조율하는 데 어려움은 없어요. 댄스팀과 협업할 때는 전자 드럼 패드와 마칭 스네어라는 행진용 큰 북을 써요. 마칭 스네어는 큰 관악 밴드에서 쓰이는 악기지만 지금은 힙합 비트에도 많이 쓰여서 택했고, 스틱을 던지고 받고 돌리는 기술인 스틱 트릭이 댄스와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준비하고 있어요.

 

M.I.H의 특징 중 하나가 20~30대 신진 예술가들 위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에요. 또래들과 작업하면서 좋은 점이 많을 것 같아요.

가장 좋은 점은 하나의 큰 관계망이 형성됐다는 거예요. M.I.H 단원 모두 화성시 안에 거주하고 있지만 지인과 동반 지원한 사람들 말고는 클래식하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모르는 사이가 대부분이에요. 댄스팀과 합창단과 협업하는 것도 새로운 관계망이라고 할 수 있고요. 이 안에서 여러 갈래로 가지가 나서 현악기 연주자 중에서는 벌써 새로 팀을 이룬 분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벌써 새로운 팀! 빠르네요. 김기수 감독님이 속한 ‘갬블러크루’가 최근까지 서울시 대표 비보이단으로 활동한 걸로 알고 있어요. 이런 경험이 M.I.H 스트릿댄스 팀 안무감독을 맡게 된 데에 영향을 미쳤나요?

네. 2013년부터 3년간, 2017년부터 3년간 총 6년 동안 서울시 대표 비보이단으로 활동했어요. 그 기간에는 아무것도 신경 안 쓰고 춤만 추면 되니까 너무 좋았어요. 그 전에는 열악한 상황에서 공연을 해왔기 때문에 공연 기획부터 의상, 장소, 또 금전적인 면까지 신경 써야 했거든요. 저는 화성시 주민이기 때문에 혹시 화성에 그런 단체가 생긴다면 꼭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가 다른 댄서들보다 뛰어나서 안무감독을 지원한 게 아니라, 먼저 한 경험을 공유하고 그걸 토대로 리드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화성시에 이런 우수한 예술인들이 있다는 것도 알리고 싶었고요. 오로지 돈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은 드물 거라고 생각해요.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애써 주시니 저희도 적극적으로 예술 활동을 하는 데 중점을 두려고 해요.

관현악단원 오성광

M.I.H에서 여러 가지 온라인 콘텐츠를 준비한다고요. 직접 무대에 서는 입장에서 온라인 공연과 오프라인 공연은 많은 차이가 있을 텐데 어떤가요?

얼마 전에 <화성예술제>에 참여했어요. 무관중 공연이었는데 저희가 습관처럼 관객 호응을 유도하고 있더라고요(웃음). 팀원들 모두 공연해온 세월이 있으니 자동적으로 나온 것 같아요. 공연 중간중간 ‘아, 관객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멋쩍어지죠. 끝나고서 저희끼리 ‘웃프다’고 했어요. 관객이 없는 게 신선하지만 슬프기도 하다고 얘기하면서요.

저는 관객과 아이 콘택트를 하거나 제가 취한 액션에 반응을 받을 때가 참 좋았는데, 관객 없이 노래하려니 허공에 외치는 것 같은 기분이 많이 들어요. 그런 게 많이 어색하고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어서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오면 좋겠네요.

오케스트라 연주도 거의 비대면으로 영상을 촬영해요. 그런데 아무리 좋은 마이크로 송출하고 좋은 스피커로 들어도 사람의 귀로 직접 듣는 것만큼은 못 따라가거든요. 오케스트라 공연을 느끼는 감각 중 청각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음향에 관한 부분이나 관객이 현장감을 느끼기 어렵다는 부분이 아쉬워요. 그래도 요즘 방구석 1열이라고 하잖아요. 현장에서는 멀리서 한 가지 구도로 공연을 관람할 수밖에 없지만 화면에서는 카메라 연출을 통해서 다양한 장면을 즐길 수 있어요. 공연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그런 식으로 아쉬움을 채우면 좋을 것 같아요.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시네요.

생각해 보면 무관중 공연이 처음일 뿐이지 온라인 콘텐츠는 코로나19 이전에도 많이 만들어 왔어요. 카메라를 가상의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춤을 추고, 그 영상을 SNS로 송출하고, 보는 이들은 텍스트로 피드백을 주고요. 저희도 어느 순간 그걸 인지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상황이 바뀌었으니 받아들이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죠. 가재가 딱딱한 껍질에서 나와서 다시 더 큰 껍질을 만드는 것처럼요. 그동안 해오던 방식에 안주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안 받았다는 생각도 들고, 이런 스트레스 덕분에 생각지 못한 멋진 공연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저희가 이 상황을 직접 겪고 있기 때문에 힘들어 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하나의 해프닝이었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더 재미있는 걸 만들기 위해 뜸 들이는 시기라고 여기고 싶어요.

 

무대에 서는 사람 못지않게 오프라인 공연을 그리워하는 관객도 많을 거예요. 많은 이들이 예술을 원하고 찾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만약에 한 끼 먹기도 힘든 상황인데 표를 구해서 공연을 보러 올 수는 없겠죠. 예술이 무조건 우선순위가 될 수는 없겠지만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공연을 안 봐도 그만인 사람, 한 번씩은 보러 가고 싶어 하는 사람, 공연을 통해서 큰 위로와 감동을 받는 사람. 언제 어디서든 예술을 찾는 분들이 있어서 수요가 계속 생기는 것 같아요.

원시시대의 어느 아프리카 부족들이 처음 만났을 때 하는 인사가 ‘당신 부족의 춤은 무엇입니까?’라는 걸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춤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현실 문제와는 별개인 것 같아요. 예술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내면에 장착된 요소 같아요. 앞으로 과학기술이 더 발달할 거고 인간의 감정은 더 메마를 거예요. 예술가들은 공연을 통해 관중들의 정서적 목마름을 채워주고, 반대로 에너지를 받기도 할 거라고 생각해요.

동감해요. 어떤 분이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제 남은 건 예술밖에 없다고요. 기술력, 산업 모든 게 지금에서 더 나아가면 오히려 불편함을 초래할 정도로 성장해버렸다고요. 사람들이 너무 빠르고 바쁜 사회에 지쳐서 예술을 더 지키려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마음의 병이 있는 친구들이 많아요. 제가 어릴 땐 피아노 학원에서 음악을 배우고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도 미술, 음악 등 예체능 과목을 배웠는데 요즘은 무조건 국어, 영어, 수학 위주잖아요.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예술에 대한 부재 때문인 것 같아요. 그만큼 한 사람의 인격 형성과 건강한 성장에 영향을 끼치는 게 예술인 거죠.

안무감독 김기수

공연 개최가 어려워지면서 공연이 주 수입원인 예술인들의 상황도 많이 힘들어진 걸로 알고 있어요. 영민님을 통해 그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고 싶어요.

맞아요. 코로나19가 시작됐을 때는 조금만 지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지내왔는데 공연이 매번 취소되다 보니 절망감이 들었어요. 수입이 90퍼센트 이상 줄었고요. 점점 우울해지면서 희망도 없어졌어요. 공연히 잡히질 않으니까 연습도 못 하고 허송세월했죠.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라서 고민이 깊었겠어요.

사실 코로나19 이전에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어요. 몇 안 되는 연주들이 취소가 되었으니 상황이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요. 안 그래도 마이너스 인생을 살고 있는데(웃음)…. 가끔 예술을 하나의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너희들이 좋아서 선택한 일이잖아.”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참 속상해요. 예술계도 빈익빈 부익부 구조가 심해서 대부분의 예술인은 코로나19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을 거예요. 이렇게 예술과 현실이 항상 부딪히니까 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지 고민도 자주 해요. 많은 노력과 시간, 비용을 들여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에 대한 보상이 터무니없을 때는 자괴감도 들죠. 그런 점에서 M.I.H는 예술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오아시스 같은 프로젝트예요. 정부 차원의 지원 제도들이 있지만 사실 피부에 잘 와닿지 않거든요. 엄청나게 많은 서류를 작성해야 하고, 다 작성해 제출한다 해도 심사에서 떨어지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M.I.H에서는 예술 활동 지원과 더불어 금전적인 지원을 받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많이 돼요.

 

모두가 힘든 한 해를 보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도움받고 도움을 주며 버텨온 것 같아요. 2020년이 저물어가는 이때, 지난 1년을 돌아보니 어떤가요?

많은 부분이 정지되면서 강제적으로 생각할 시간이 늘었어요. 압축된 스프링 같은 상태로 지내왔죠. 코로나19는 언젠가 종식되겠지만 우리 모두가 이 상황에 대한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완벽하게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지금의 조심성을 유지하겠죠. 올해는 ‘앞으로 더 재미있게 예술을 하려면?’이라는 질문으로 변화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공부하는 해였어요.

이렇게 길게 갈 줄 알았으면 좀더 릴렉스할 걸 그랬나 싶어요. 정말 힘들었지만 한 가지 얻은 건 ‘아, 공연을 못 하니 내가 불행하구나. 이거 없으면 죽겠구나.’ 깨달은 거예요. 물론 마스크를 쓴 상태지만 여러 멤버들과 하모니를 이루는 시간이 기적 같고 귀해요. 이전에는 스케줄에 따라서 움직이고 의무적으로 했던 일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죠.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나를 개발하고 더 좋은 예술로 승화해야겠다고 생각하는 한 해였어요.

코로나19 때문에 몇 달 동안은 기존 수입이 제로였어요. 공연에 설 수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최악의 해라고 생각하면서 버텨왔어요. 그런데 사람은 그런 상황에서도 방법을 찾잖아요. 어렵지만 원래 하던 것과 다르게, 항상 해오던 것들에서 조금 벗어나서, 이게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까 이제는 조금 정리가 돼요. 계속 밟아오던 길로만 갔다면 변화를 모르는 재미없는 클래식쟁이가 되었을지 모르죠. 그래서 올해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도전한 해였다고 생각해요. 지나고 돌아보면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글 이다은

사진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