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2021년 6월호 칼럼 / 글 이덕규
흐린 날 병점 간이역에 멈춰선 화물열차가 제풀에 길게 울어 젖히면, 황구지천 변을 따라 곧장 서쪽으로 십 리 들판을 달려온 그 기적 소리를 소 풀 뜯기는 한 아이가 찬물에 풀리는 국숫발처럼 맛나게 받아먹었습니다. 낡은 버스는 사정이 좋아야 하루에 두 번 들어왔습니다. 화성군 정남면 괘랑리 85번지, 그나마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언제 버스가 들어올지 기약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버스가 왜 안 들어오는지 따져 묻지 않았습니다. 전깃불이 없어서 캄캄했지만, 어두울수록 눈빛들은 반짝였습니다. 장꾼들이 새벽밥을 해먹고 두세 시간을 걸어 수원장이나 오산장이나 발안장을 보러 다녔습니다. 특별한 볼 일이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네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땔나무를 하고 풀을 베고 김을 매고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농번기에는 서로 품앗이를 했습니다.
한 여름 긴 해가 넘어가고 노을 잔영이 깔리는 마당 평상 앉아 먹는 저녁밥이 달그락달그락 화목했습니다. 쌀과 보리가 섞인 밥에 오이생채를 넣고 강된장에 비벼 열무김치를 얹어 굵은 멸치를 넣은 애호박찌게와 먹는 밥은 구수하고 달콤했습니다. 그 재료 하나하나가 집 주변 전답에서 수확하고 발효시킨 것들이었습니다. 장독대는 어머니가 가장 소중하고 신성시 하는 공간입니다. 대를 물려 내려온 키 큰 장독들이 즐비한 그곳은 늘 정갈하고 경건했습니다. 어쩌다 식구 하나가 먼 길을 떠나면 어머니는 맑은 정화수를 그 큰 장독 위에 떠놓고 치성을 올렸습니다. 한 가족 먹을거리의 기본 단위였던 장독대 신령에게 집 떠난 자식 밥 굶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 소박한 의식이었습니다.
거래는 대부분 곡물이나 가축들을 시세로 환산해 지불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백미 한 가마니의 가치는 실로 컸습니다. 안 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쌀로 돈을 사고 잡곡으로 물품을 사던 그때, 달걀로 공책과 연필을 바꾸었고 형제들 머리 깎은 삯은 일 년에 한번 보리쌀로 건너갔습니다. 물목이 단출한 보따리나 좌판이 마실방 툇마루에 펼쳐지면 팥 한 되에 나이롱 양말 여섯 켤레, 들깨 두 되에 쫄쫄이 바지 두 벌, 양은 그릇 열두 개에 서리태 네 되, 남도 꿀 됫병들이에 수수 한 말, 어쩌다 통 크게 쌀 한 말이 장남의 두터운 잠바와 맞바꿔졌습니다. 짐승들도 물목 중에 하나였습니다. 외양간의 송아지와 마루 밑에 강아지와 울 밑에 돼지 새끼들과 봄 마당에 그득한 닭과 노란 병아리들, 때가 되면 할아버지는 그 마당식구들 먹이부터 챙겼습니다. 제삿날이면 닭을 잡았고 설날엔 온 동네가 구수한 시래기 순댓국과 돼지고기를 먹었습니다. 나머지 짐승들은 일 년에 한 번 ‘가리내 장터’에서 이웃 동네로 팔려가고 그 덕으로 똘똘한 자식 하나가 상급반으로 진학했습니다.
오일에 한번 서는 장날은 만물이 세상에 나오는 날이었습니다. 없는 게 없었습니다. 상점이나 노점에서는 돈 거래보다 현물 거래가 더 많았습니다. 닭 오리 강아지 염소 장목수수빗자루 싸리비 지게 바수구리 삼태기 망태 멍석 덕석 도리깨 갈퀴 등 각종 연장자루와 억센 손이 꽉꽉 조여 만든 수제 생필품들이 장마당에 즐비했습니다. 고무신과 장화 때우는 신기료장수들 사이로 밑천 하나 없이 순전히 입으로만 손님을 끌어 모으는 야바위도 섞여 있었습니다. 바꾸지 못했거나 팔지 못한 물건들은 파장에 양조장집으로 몰려와 막걸리 잔술에 넘기거나 다음 장날까지 맡아두었습니다. 장꾼들 손에 자반 한 손이 새끼줄에 매달려 흥얼흥얼 돌아가던 파장의 이슥한 길이,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 까지 부르고 매번 다시 돌아가 부르는 재당숙의 골백번 으악새로 휘영청 밝았습니다. 돈 셈보다 물물 흥정이 빨랐던 그때, 불과 반세기 전의 화성의 ‘오래된 미래’였습니다.
갑년(甲年)을 맞은 화성 토박이가 그리 멀지 않은 시절의 사무치는 풍경들을 한 번 돌아보았습니다. ‘산업화’라는 말이 돌기 시작한 이후로 저 아름다운 풍경들은 거의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개발’과 ‘발전’의 그늘 아래로 숨어버린 저 열등한 존재들이 왜 오늘 다시 간절하게 보고 싶어지는 걸까요, 나는 이제 낡고 뒤처진 사고방식을 빗대어 말하는 ‘전근대적’이라는 용어를 더 이상 쓰지 않습니다. 근대 이후 강력한 자본의 엔진을 장착하고 초스피드로 달려온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글 이덕규(시인, 사단법인 경기민예총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