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과 ‘공존’하는 것들

당신은 누구와 함께하고 있나요?

언젠가부터 이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고작 몇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19 상황이 1년이 훌쩍 넘도록 계속되면서 우리의 익숙한 일상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그토록 별것 없다 느꼈던 일상 속 하나하나, 그리고 나와 함께하고 있는 모든 것이 더욱 애틋하고 소중하다. 화성인들은 이 시기, 누구와, 또는 어떤 것과 함께 공존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당신은 누구와 함께하고 있나요?
여러분이 ‘공존’하고 있는 사람, 동물, 식물, 사물 등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덕녀|주부

전 세계인의 공통 가족 스마트폰

나에게는 남편이 있다. 나에게는 아들도 둘씩이나 있다. 그런데 이들 생명체와는 또 다른 가족이 존재한다. 전 세계인의 공통 가족 스마트폰! 그 작은 네모의 존재감이란 온 집안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묵직하고 방대하다. 나는 모르는 게 있으면 스마트폰에게 질문을 하고 궁금한 게 있어도 스마트폰을 재촉한다. 그러면 스마트폰은 짜증도 내지 않고 화도 내지 않고 답을 내 앞에 대령한다. 이러니 나는 스마트폰을 사랑할 수밖에… 덕분에 책과는 담을 쌓고 있는 중이고 가족들과의 대화가 삼분의 일로 줄어들어도 크게 아쉬움을 못 느끼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그런데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고 귀하게 대접한다. 남편도 그러는 눈치다. 서로 또 다른 자식을 키우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내 감정을 갈팡질팡하게 하는 모순을 동반하는 걸 알면서도 나는 오늘도 아침 첫인사를 스마트폰에게 하고 잠자리 들기 전 마무리 인사도 스마트폰에게 한다. 진짜 가족인 것처럼 말이다.

김정순|회사원

희망을 품은 작은 화분들

우연한 기회에 요양병원 카페에서 근무한 지 4년째를 맞고 있다. 내 나이도 적지 않아 불편하신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남의 일 같지가 않고 머지않은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해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 자주 있다. 꽤 큰 규모의 요양병원에서 운영하는 카페 겸 매점은 환자, 보호자, 간병사들의 편의를 돕고자 간단한 의료소모품, 간식류, 음료 등을 취급한다. 평소에는 가족 간 면회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주말이나 휴일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장소지만 코로나 때문에 외부인 출입이 끊긴 요즘은 무척 한가하다. 내가 근무하는 이곳이 삭막한 병원생활에 지친 환자들, 그들 곁에서 밤낮을 같이하며 생활하는 간병사들이 편히 오갈 수 있고 그들의 마음속 쉼터가 되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은 어느 날 작은 화분 하나로 시작되었다. 비록 자신들의 몸은 늙고 쇠하고 병들어 쭉정이만 남았어도 작은 화분에서 생명을 이어 나가는 초록 잎을 보며 희망을 갖고 행복해하는 그들의 모습은 나를 더없이 뿌듯하게 한다. 휠체어를 끌어 그 앞에서 사진을 요청하는 분도 있다. 떨어져버린 잎새 자리에 어느새 새로운 싹이 돋듯이 우리네 인생도 그러했으면 하는 바람들을 간직하고 계신 걸까?

김정순

여상희|영어강사

항상 함께하는 우리 가족

오늘도 사랑하는 내 남편 그리고 내 딸과 함께하며 웃기도 울기도 화가 나기도 행복하기도 한다. 없으면 살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된 내 가족! 오늘도 감사합니다.

최선영|주부

사랑스러운 우리 딸

“엄마, 내가 하늘나라에 있을 때 엄마를 어떻게 찾았는지 알아? 내가 망원경으로 이렇게 보는데 엄마가 보였어. 그래서 엄마한테 내려갔지. 딱 내 엄마라고 생각했어.” 나도 몰랐던 탄생의 비화를 들려주는 여섯 살 여자아이와 마흔 두 살 엄마, 우리는 (아직까지는) 베스트 프렌드다. 매일매일 사랑한다는 말도 하는 참 달달하고 낭만적인 꼬마 아가씨다. 또 어느 날 마트 가는 길 육교 아래에선, 엄만 계단으로 가고 자기는 다른 길로 올라가겠단다. 그런 일이 처음이라 위에서 만난 후 무섭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엄마 생각하면서 올라오니까 하나도 안 무서웠어.” 라고 말한다. 아이들 감성에서나 나올 수 있는 이야기에 주책맞게도 자주 뭉클함을 느낀다.

엄마를 생각하며 올라오니까 하나도 안 무서웠다는 이 아이를 위해 내가 더 강해져야겠다고 생각했던 그즈음에 어린 딸이 둘이나 있는 동갑내기 사촌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 여름방학이면 옛날 우리 집 대청마루에 모기장을 쳐 놓고 <전설의 고향>이나 <오멘> 같은 영화를 함께 봤고, 어른들의 키 재기 요청에 만나기만 하면 키부터 재야 했던, 그저 수줍게 잘 웃던 어린 날의 그 애가 눈에 아른거려서, 그 시절의 우리 나이만큼 자란 그의 큰딸이 병원에 있는 아빠를 만나고 집에 돌아가면 며칠 운다는 얘길 들어서, 사촌과 그의 가족들이 느낄 진통, 고통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기에 나는 고작 이런 이유로 슬펐다. 딸에게 엄마의 사촌이 아파서 슬프다,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난다고 말했더니, 여섯 살 베프가 그게 왜 슬프냐고 묻는다. “은솔인 사촌 언니가 아파서 못 보게 되면 안 슬프겠어?” 물으니 “난 안 슬플 것 같아. 그냥 보고 싶을 것 같아.” 예상치 못한 그럴싸한 대답에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왔다. 사촌은 얼마 전 가족, 친척, 친구를 하나하나 만난 후 우리 곁을 떠났다. 남은 아이들과 올케가 안쓰럽고 너무나도 짧은 인생이 서글프기도 했지만, 나는 그 애가 더는 아프지 않게 된 날로 기억하기로 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던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주위에서 일어나고, 그들의 남겨진 어린 자녀에 감정이입이 되면 평소엔 마음 한쪽에 잘 숨겨놨던 불안감과 슬픔이 툭 하고 튀어나온다. 다행히도 딸의 통통한 볼과 반달 눈웃음, 오물오물 먹는 입술 등 온갖 것이 사랑스러워 금세 괜찮아졌지만, 그럼에도 이 사건은 여러 날 동안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편이라고 자신하며 살아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연이어 겪고는 인생무상 아니냐며 삶의 의미에 대해 결론을 못 내리고 있으니 친한 지인이 대신 결론을 내려줬다. ‘그냥 하루하루를 잘 살다 보면 그게 내 삶의 의미가 되어 있겠지.’ 라고. 그 순간 마치 처음 알게 된 내용인 것처럼 답답함이 풀렸다. 지인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아이가 다 클 때까지 건강하게 몸 관리 잘하고, 줄 수 있는 만큼 사랑을 주고, 함께 추억을 쌓으며 주어진 하루하루를 잘 살다 보면 만약 우리 딸에게 어떤 일이 닥친다 하더라도, 우리가 함께 쌓은 추억과 받은 사랑을 자양분 삼아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속 불안감이 89% 정도는 사라졌다. 사랑스러운 우리 딸, 엄마가 많이 사랑한단다.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로 자라렴.

양혜민|주부

우리 아들의 사랑으로 자라나는 식물들

우리 아들의 유치원에서는 가드닝 수업을 한다. 덕분에 종종 집으로 식물들을 데려오곤 하는데 초봄에 유치원에서 데려온 아몬드페페와 남천나무는 내가 지금까지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잘 키우고 있는 식물들이다. 매번 식물을 데려오면 오래 못 가 금방 죽고는 했다. 그래서 식물 키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이 데려온 이 아이들은 지금도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지난번에는 토마토 모종을 심어와 열심히 물도 주고 분갈이도 해줘서 열매 맺는 모습도 보았다. 함께 토마토를 따면서 수확의 기쁨도 누리고 아들이 안 먹던 토마토도 한 입 먹어본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아들의 화분들이라 생각하니 실망하지 않게 잘 키워야한다는 책임감이 더해지고 더불어 아들의 관심과 사랑이 있어 그런지 아주 잘 자라고 있는 식물들. 앞으로는 또 어떤 식물들을 데려올까 궁금해진다.

박승희|주부

자연과 함께, 가족과 함께

나는 자연과 함께하고 있다. 많이 바뀌어 버린 일상 속에서 코로나 블루로 갑갑한 집을 나와 뚜벅뚜벅 걷다가 발이 멈칫! 고개를 들어 바라본 자연 풍경은 나를 붙잡는다.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짜증내고 잔소리해도 다 들어주고 힘든 회사 생활까지 묵묵히 해나가는 남편, 호되게 혼내도 잠들기 전 입을 쪼옥 내밀고 뽀뽀해달라는 딸. 시원한 바람, 아름다운 노을, 멋진 나무, 당연하게 느꼈던 모든 것에 감사와 소중함을 느낀다.

박승희
‘PEOPLE’은 주제와 관련된 독자들의 이야기를 담는 코너입니다. 글 또는 그림, 사진과 함께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다음 호 PEOPLE 독자공모는 화성시문화재단 공식 블로그를 통해 공지할 예정입니다. 선정되신 분들께는 화성시문화재단의 특별한 기념품과 함께 《화분》 지면에 이야기를 실어드립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